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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셍셍칩 2021. 2. 12. 23:37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

읽은 기간: 21.02.11~12 / 2일

 


 해리포터 끝내자마자 다음 날 바로 펼쳤는데 왠지 모르게 안 읽혀서 그냥 다시 덮고 일주일 정도 쉬었다. 일부러 작정하고 쉰 건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달까... 그래서 책 한 장 펼치지 않고 지내다 보니 일주일이 흘렀다.
 라고 말하면 내가 평소에 뭐 엄청 바쁘게 산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평소랑 달랐던 건 책을 안 읽었다는 것? 그 외엔 다 똑같았다. 대부분을 누워있거나 앉아있고 컴퓨터를 하거나 영상을 보는, 생산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바로 그 생활. 그래서 최근 일주일 다이어리 일기란에는 한탄과 넋두리로 가득 찼고 이제까지 내가 책을, 아니 책이라도 읽음으로써 결핍의 마지노선을 지켜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마 책이라도 읽으면 나 자신이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조적인 기분에서 (비록 눈 가리고 아웅 식이었지만)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마저 안 하니 진짜 의미 없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 사실을 단기적으로나마 덮어놓아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뭘 시작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단지 새로 시작한 이 책을 이틀 만에 읽어버렸을 뿐. 그래도 더 늦기 전에 2021년 계획을 짜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니 조금 다행이라고 치자.
 구병모 작가님은 교보 e북에서 '아가미'라는 책을 잠시 대출받은 일로 기억에 남은 이름이었다. 그 날 미용실에 빈 손으로 갔다가 지루할까싶어 대출받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몇 장 읽지 못해서 딱히 이렇다 저렇다 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없었다. 하긴 뭔가 기억에 남았으면 '아가미'를 이어서 읽었겠지만. 서두가 길었는데 그냥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처음 알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처음이자 새롭게 알게 된 건 이제까지 이름만 보고 작가님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였다는 거, 이 책이 데뷔작이었다는 거, 문장이 잘 안 읽히는 듯 잘 읽힌다는 거, 그리고 소설도 소설이지만 작가의 말이 인상 깊다는 거.
 이틀만에 읽은 건 현실도피성으로 절박하게 활자를 찾았기 때문도 있지만 이야기가 길지 않고 책이 얇았다는 이유가 더 크다. 장편소설로 분류되긴 하지만 일반 소설책에 비해 얇은 편이었고 특히 최근에 읽었던 해리포터 양장본에 비하면 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최근 계속 외국 서적만 봤더니 번역체에 너무 익숙해졌는지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으니 같은 문장을 좀 버벅거리고 어떤 문장에서는 주춤주춤 진전을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꽤 잘 읽혔고 호로록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책이 얇고 이야기가 짧아도 안 읽히면 답도 없이 늘어지게 마련이니까.
 한가지 더 느낀 건 내가 모르는 단어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물론 대부분 정확한 뜻은 몰라도 문맥상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지만 궁금했기 때문에 종종 멈추고 검색해야 했다. 청소년 도서라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단어들을 다 아는구나... 공부하자 제발... 발전 좀 하자고...
 주인공은 말을 더듬는 열여섯살의 소년이다. 그의 말더듬이 선천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갑자기 발현된 이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러 수작 부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으로 새로 입학한 중학교 선생들 사이에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담임에게 아들이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이야기를 했고 그제야 학교 선생들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는 선생이었다면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던 시기와 말 더듬 증상이 시작된 시기가 전혀 맞지 않다는 것쯤은 알았을 것이다.
 소년의 친어머니는 그가 여덟 살이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2년 뒤 맞선을 통해 두 살짜리 딸이 있는 학교 선생과 재혼을 했고 최근까지 그럭저럭 평범한 가정을 꾸려왔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아동도서 영업직으로 늘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까. 아들이 새엄마와 어떤 사이인지, 가족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소년이 보기엔 아버지가 재혼을 한 이유는 그저 자신의 가정을 이루는데 중요한 구성원으로, 아이의 엄마로, 밥을 해줄 사람으로, 집안일을 해결해줄 사람으로 아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소년의 새엄마인 배선생은 처음엔 소년의 환심을 사려는 듯 보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이 데려온 아들을 못 견뎌했다. 소년은 딱히 새엄마에게 애정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단지 일반적인 관계만을 원했으나 배 선생은 소년에게 더없이 싸늘해져 갔고 그 감정은 점점 심화돼 이젠 증오로까지 느껴지게 됐다. 그리고 그 숨 막히는 몇 년의 시간은 소년에게 말 더듬 증상을 얻게 해 줬고 이제 그는 집에서 배 선생과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늘 귀갓길에 집 앞에 위치한 24시간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가 방에서 저녁을 해결하곤 했다.
 그 빵집은 처음부터 좀 특이했다. 빵집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부터도 이상했는데 낮 시간대엔 십대로 보이는 여자애가 카운터를 봤지만 밤이 되면 홀로 빵을 굽는 젊은 청년 점장이 주방과 카운터를 오가며 영업을 했기에 소년은 대체 저 점장은 언제 자는 건지 늘 궁금했다. 또한 동네 빵집 치고 너무 많은 빵의 종류도, 배송 차량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물건을 실어가는 것도 이상했다.
 어느 날 소년이 빵집에 들러 카운터의 여자애에게 빵의 재료를 물었을 때 점장이 나서서 그 빵 안에는 갓난아기의 말린 간이 들었다느니 하는 요상한 소리를 해대자 소년의 의심은 확신이 된다. 저 남자는 미쳤다. 그럼에도 소년은 매일같이 빵집에 들렀다. 빵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빵이라면 지긋지긋하면서, 다른 방책이 없어 매일 빵집에 들러 매일 다른 종류의 빵을 고른 것이다. 그렇게 그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단골손님이 된다.
 그 일은 배선생의 여덟 살 난 딸 무희에게서 시작됐다. 배 선생의 요구로 자신의 빨래는 따로 해오던 소년은 자신의 빨랫감에 섞여 들어온 무희의 속옷을 발견하는데 거기엔 핏자국이 찍혀있다. 배 선생은 딸을 추궁했고 무희는 자신이 다니는 영어학원의 한 유부남 강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때부터 지루한 싸움이 시작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강사는 이전 학원에서 아동 성추행 전력이 있었고 경력 또한 대부분 거짓이었기에 사건은 쉽게 해결되는 듯했으나 강사가 범행을 부인하고 반복되는 진술 속에서 지쳐버린 무희가 진술을 번복하자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좋은 기억이 아니라며 최대한 빨리 사건을 덮으라고 조언했지만 이성을 잃은 배 선생은 무희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진실을 토해내라고 엄하게 몰아세운다. 그리고 엄마의 폭행을 견딜 수 없던 작은 소녀는 결국 방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의붓오빠를 향해 손가락을 내민다.
 배선생의 분노는 방향을 틀어 소년에게 향했고 그는 그렇게 쏟아지는 폭력과 아버지의 방관을 견디다 배 선생이 경찰에 신고하는 소리를 듣고 도망치듯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배 선생과는 달리 무희에겐 큰 감정이 없었던 소년은 당황하지만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기에 동생을 원망하진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돈도, 휴대폰도, 아무것도 없었고 길을 따라 달리던 그는 무작정 위저드 베이커리로 들어가 자신을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점장은 단골손님을 순순히 주방으로 데려가고 큰 오븐 안에 숨겨준 뒤 뒤이어 방문한 경찰에게 인상착의가 비슷한 청소년이 가게 앞을 달려가는 걸 봤다고 말해준다. 소년이 들어간 오븐은 보통 오븐이 아니었고 오븐을 통과하자 큰 원룸형 공간이 나타난다. 그 안을 둘러보자 여러 가지 실험 도구들이 있었고 서랍장들은 빼곡했으며 한 켠에는 마녀가 등장하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솥단지가 끓고 있었다. 그리고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화스러운 침대가 있었으며 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소년은 빵집이 확실히 신비한 곳이라는 것을, 점장이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채고 서랍장에 다가가 서랍을 열려하는데 시계에 붙어있던 장식인 줄 알았던 파랑새가 날아와 소년의 손등을 쳐낸다. 소년은 파랑새의 색을 보고 새가 낮시간에 가게를 보는 여자애라는 걸 알아챈다.
 처음에 점장은 하룻밤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파랑새의 도움으로 소년은 기약없이 가게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그곳은 소년이 생각한 것보다 더 이상한 곳이었다. 점장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온라인 주문도 따로 받고 있었는데 온라인 주문을 통해 판매하는 상품들은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들과 근본부터 달랐다. 평범한 상품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마인드 컨트롤을 도와준다는 푸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먹이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만들어준다는 시나몬 쿠키, 누군가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다는 프레첼 같이 희한하고 꺼림칙하며 신비로운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소년은 대가 없이 신세를 지는 걸 원치 않았고 결국 사이트를 통해 들어오는 주문의 주문서들을 뽑고 간단한 문의사항에 답변을 다는 등 전반적인 사이트 관리를 맡게 된다.
 신비로우면서도 어떻게 보면 저주나 다름없는 상품들도 팔았기에 사이트에는 이 마법이 분명한 대가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만 구입하라는 경고이자 안내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법을 진지하게 생각할까. 구매자 중 상당수가 가볍게, 또 누군가는 진중하게 생각한 후 상품을 사 갔고 그랬기에 종종 컴플레인이 들어오곤 했다.
 소년이 빵집에서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여학생이 가게로 찾아온다. 여학생은 시험기간에 평소 남몰래 질투하던 친구에게 악마의 시나몬 쿠키를 선물했는데 쿠키를 먹은 친구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바지에 실례를 하고 내신에 중요한 시험을 망친 후 자살을 하자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껴 가게를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여학생의 말에서는 죄책감보다는 자신의 짓이라는 걸 들킬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많이 느껴졌고 점장은 이 모든 건 구매자의 선택이며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처음부터 공지했다고 설명한다. 학생이 점장에게 악의를 드러내며 따지자 점장 또한 학생의 꿈에 평생 그 죽은 친구가 나타날 거라는 악담을 하며 그녀를 쫓아낸다.
 소년이 빵집에 있는 기간동안 가게로 찾아온 온라인 구매자는 여학생뿐이 아니었다. 점장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지만 한 달에 딱 하루 가게를 닫고 24시간 내내 잠을 자야 했는데 그마저도 몽마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수면을 취해야 했다. 파랑새는 소년에게 이런 날엔 점장의 잠을 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하며 소년을 데리고 가게로 나와있었는데 그때 한 여자가 가게 문을 두드린다. 다소 흥분한 상태인 여자는 점장이 없다는 말에 부두 인형 쿠키 재고를 내놓으라고 화를 내고 결국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점장이 가게로 나오게 된다.
 여자는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산 프레첼으로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어 사귀게 되었지만 연인이 된 후 남자는 가슴속 깊숙한 곳에 품고 있던 자격지심을 드러내며 여자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 집착은 여자가 이별을 통보하자 스토킹과 폭력으로 변질됐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여자는 이제 그 남자를 떼어내야 한다며 당장 부두 인형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점장은 그 또한 여자의 선택에 대한 결과물이라며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고 더 생각해본 후 결과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인터넷을 통해 부두 인형을 주문하라고 말한 후 그녀를 돌려보낸다.
 여자를 쫓아보낸 후 점장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을 설친 탓에 자세가 흐트러진 그에게 몽마가 찾아온다. 아름다운 몽마는 점장의 몸 위에 올라타 그의 몸을 포박하고 고통을 주고 있었는데 그 장면을 목격한 소년은 몽마를 말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점장 대신 자신이 그 고통을 감수하겠다고 말한다. 몽마는 소년이 잠들자 그에게로 옮겨와 그를 괴롭혔고 소년은 자신의 끔찍했던 과거로 회귀하여 꼬박 이틀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점장은 마법사의 몸이었기에 몽마의 습격을 받아도 큰 타격이 없었지만 인간인 소년에게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걸 너무도 잘 알았기에 점장은 정신을 차린 소년의 뺨을 때리고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돌아서 소년에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위저드 베이커리 사이트에는 항상 제품 개발 중이라는 태그와 함께 비활성화되어있는 제품이 존재했는데 제품 문의는 일대일 문의로만 받고 있었다. 그 상품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머랭 쿠키인 타임리와인더였고 사실 이미 개발이 끝난 상품이었다. 소년이 머랭 쿠키에 대해 궁금해하자 점장은 짧으면 5분에서 길면 몇 년까지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며 원한다면 누구든 살 수 있지만 위험성이 커 오픈해놓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종종 일대일 문의가 들어왔지만 어마어마하게 책정된 가격을 들으면 누구든 구매의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점장은 누군가의 생사와 관련된 것에는 절대 머랭 쿠키를 쓰면 안 된다며 예컨대 죽은 아들이 죽기 직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다거나 하는 이유라면 모를까 누군가를 다시 살려내 계속 살아있게 하는 것에는 이 마법을 사용해선 안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타임리와인더에는 조건이 붙었는데 만약 시간을 돌려낸다 하더라도 시간을 돌린 당사자도 자신이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을 잊게 되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 설명을 들으면 누구도 타임리와인더를 사려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인터넷에 들어간 소년은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위저드 베이커리의 이름을 발견한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로 친구를 죽게 만들었던 소녀가 인터넷에 자신의 잘못을 쏙 빼고 위저드 베이커리에 대한 악의적인 글을 올린 것이었는데 그 일로 위저드 베이커리는 경찰 수사를 받을 위기에 놓이게 된다. 상황을 인지한 점장은 그 날까지 들어온 주문까지만 받겠다며 소년에게 주문서를 출력하라고 하고 사이트는 임시로 폐쇄하게 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가게를 닫고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소년에게 날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파랑새는 소년에게 과거 점장이 이전 가게를 버리고 이 동네로 이사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해준다. 거기에는 사람을 되살리는 화이트 코코아 파우더가 관련이 있었는데 점장은 많은 생명을 살려오던 중 사람을 살리는 것에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는 파우더를 시험하기 위해 연습용 인간을 구하는데 거기서 '사소한 인간'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그는 죽은지 얼마 안 된 부랑자 시체를 찾아냈고 그의 생명을 살려냈는데 그 부랑자는 살아나자마자 생전에 자신의 사업을 망하게 만든 친구와 와이프, 자신의 두 딸, 그리고 와이프의 새로운 남편을 찾아가 다섯 사람을 실해한다. 처음에 경찰이 찾아왔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경찰이 내민 사진 속 피해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부랑자가 죽인 그의 쌍둥이 딸은 당시 점장이 하던 빵집의 단골이었고 자매 중 한 아이는 점장을 짝사랑 하고 있기까지 했었다. 점장은 자신이 시작한 일이 이렇게 큰 비극을 불러내자 다시는 인간의 생명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쌍둥이 자매를 살려내지 않는 것으로 결과에 책임을 졌다.
  마지막 주문서를 뽑던 소년은 주문서에 적힌 내용을 보고 실소를 터뜨린다. 마지막 주문은 15~20세의 남자 부두 인형이었고 주문자의 주소는 소년의 집주소, 주문자의 이름은 배 선생이었던 것이다. 주문서를 받은 점장은 소년과 똑같이 생긴 부두 인형을 만들어내고 소년은 그 부두 인형을 배 선생에게 직접 배송하기로 한다. 그때 마침 경찰이 가게에 들이닥치고 부두 인형까지 압수당할 상황에 놓이자 점장은 마법으로 경찰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소년에게 타임리와인더를 쥐어주며 도망치게 해 준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간 소년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침대에 앉아있는 무희의 치마를 바로 소년의 아버지가 들추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그제야 어린 시절 엄마가 아버지의 컴퓨터로 무언가를 보다가 황급히 화면을 내린 일과 아들을 발견하고 꼭 껴안으며 오열했던 일, 엄마와 아버지가 심하게 싸웠던 일이며 자신이 엄마에게 버림 받고 며칠째 행방불명일 때 아버지가 신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엄마의 자살이 모두 어떤 연관이 있는지 깨닫는다. 아버지가 무희 사건을 어떤 의도로 덮으려 했는지, 그리고 소년이 배 선생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을 때 왜 그렇게 방관했는지, 그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채고 만다.
 소년을 발견한 무희는 두려움에 떨며 아버지의 어깨를 치고 아버지가 뒤를 돌아 소년을 발견했을 때, 소년의 뒤에는 이미 배선생이 와있었다. 분노한 배 선생은 남편에게 달려들고 무기를 찾다가 눈썹 칼을 손에 넣는데 그때 그녀의 눈에 소년이 들어오고 부자가 동시에 자신의 딸을 능멸한 것이라고 오해해 소년에게 달려든다. 소년은 난리통에 떨어뜨린 타임리와인더 머랭 쿠키를 황급히 집어 들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소년의 미래는 두 가지로 그려지게 된다.
 쿠키를 입에 넣는 데 성공한 소년은 과거 엄마가 죽고 아버지가 재혼을 염두에 두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소년의 할머니는 아들에게 배선생의 사진을 보여주며 재혼을 권하지만 소년은 알 수 없는 끌림에 아버지의 재혼을 반대한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지 않던 아들의 생각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렇게 재혼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소년은 고등학생이 되는데, 소년의 아버지는 1년 전 어린이 캐릭터 박람회에서 어린아이를 범한 것이 탄로 나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의 면회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선 소년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건너편의 웬 빵집에서 점원으로 보이는 소녀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지만 그녀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버스에 올라타 빵집을 바라보는데 소년의 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또 다른 미래는 소년이 쿠키를 먹는 것에 실패한 후 겪게 되는 미래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배선생과의 이혼과 소송으로 탈탈 털린 후 감옥에 가게 되고 배 선생은 무희를 데리고 떠난다. 점장에게 받은 머랭 쿠키는 바스러졌고 부두 인형을 꺼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냉장고에 넣어뒀었는데 소문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냉장고에서 꺼냈을 때 부두 인형의 속이 차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점장은 소년의 부두 인형을 저주인형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소년은 아버지 없이 홀로 살아간다. 말 더듬도 조금씩 호전돼 이제 어느 정도는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은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레스토랑에서 젊은 여자 손님에게 대시를 받으며 작은 머핀을 받는데, 머핀 포장지에서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글자를 발견한다. 같은 이름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빵을 입에 넣은 소년은 그 빵이 자신이 아는 그 빵집의 빵임을 깨닫는다. 소년은 여자에게 돌아가 빵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고 지하철역 앞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나눠준 거라는 대답에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위저드 베이커리로 달려간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그들을 마주하기 위해.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내가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몇 분 뒤, 뚜렷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던 나는 사실 내가 이해한 게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어떤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 작가의 말을 읽었다. 분명 소설은 이야기 속에서 (어딘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걸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작가의 말을 읽으니 그 모호한 경계가 확실해졌다. 

- 그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틀릴 확률이 어쩌면 더 많은. 때로는 어이없는 주사위 놀음에 지배받기도 하는. 그래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소년은 현실에서 도망쳤고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다소, 아니 너무도 비현실적인 마법사와 마법의 세계. 그리고 그곳에서 마법사 제빵사가 자신의 재능으로 인간에게 무언가를 팔고 있는지 보고 마법의 힘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인간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고 얼마나 큰 책임을 지게 되는지 보게 된다. 부작용을 겪고 마법사를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현실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마법의 힘을 이용해 도피하려 했을 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행동은 결국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좀 아이러니 한 것은 주인공 '나'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주인공이 유아 성애자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것도, 엄마의 자살을 목도한 것도, 그것도 모자라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인간답지 않은 새어머니의 무시와 학대 아래에서 보낸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써놓고 보니 더 웃기긴 하는데 주인공의 상황이 10이라고 치면 그중 9.99999는 주인공의 선택이 배제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그 어린아이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마법사는 그런 주인공에게 처음으로 선택의 순간을 쥐어줬고 그 선택으로 소년은 다른 결말을 빚어내게 된다. 많은 걸 바꿀 순 없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꿀 수 있었다. 사실 그걸로 충분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일기장에 쓰려다가 생각난 김에 그냥 여기다 주석처럼 달려고 한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계모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것은 실화일 때도 있고 동화같이 허구일 때도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들로 하여금 우리의 머릿속에 계모 = 나쁨 이라는 등호가 자연스럽게 성립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쁜 계모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그렇게 선호하진 않는다. 이야기일 뿐이라도 너무 자주 노출되면 정말 그런 것처럼 느껴지고 애꿎은 선한 계모들에게 부정적 필터가 씌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현실에서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런 상투적인 포맷에 거부감을 갖는 것 자체가 좀 웃길 지경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이야기가 하려는 말과 같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내 입에 단 것만 취할 수는 없다. 배 선생은 애 딸린 이혼녀였고 그랬기에 재혼 상대의 선택의 폭은  애 딸린 홀아비 정도로 좁힐 수밖에 없었는데, 새롭게 가족이 될 아이에게 진심을 다할 수 없었다면 그런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옳았다. 그녀는 단지 엄마 하나, 아빠 하나에 아이들로 구성된 '평범한' 가족 울타리를 갖고 싶었기에 이 결혼을 선택했을 테지만 그런 이유 하나로 선택하기엔 너무 큰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달까. 결과적으로 그녀는 죄 없는 한 소년을 말더듬이로 만들었고 소년을 매일 바라보면서 본인도 불행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선택한 남편이 자기 딸을 추행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음... 이 책은 2009년도에 출판된 것 같은데 당시는 정말 이랬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당시 사회적 상황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얼추 맞는 것도 같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가 당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경찰의 수사 과정이었다. 비록 의붓아버지였고 숨은 의도가 있는 말이긴 했지만 피해 아동의 어머니에게 괜히 소문나서 여자애 앞길을 망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소름끼치긴 매한가지였다. 그것도 나름의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으니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였겠지. 세상이 좀 변했으면 좋겠다. 조금은 변했겠지. 변했을 거야. 까지 쓰고 끝내려 했는데 최근 큰 파장을 불러왔던 입양아 학대 사건이 떠오른다. 그 작은 아이를 위해 몇 번의 신고가 들어갔지만 출동한 경찰들은 말도 못 하는 작은 아이를 외면했었지. 하...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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