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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셍셍칩 2021. 2. 23. 15:33

「프리즘」

손원평

★★☆☆☆

읽은 기간: 21.02.16~21 / 6일

 

 오랜만에 읽은 연애소설은 또 나를 실망시켰다. 왜인지 남의 연애와 그 감정선을 활자로 마주하면 서사가 진부하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인간이 원체 이기적이라 그런가. 내 일 아니면 공감을 잘 못하는건지, 공감은 하는데 흥미가 없는건지. 연애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없어서 연애소설인 걸 알았다면 피했을 것 같다. 그냥 제목과 표지, 작가 이름 보고 고른 거였는데 역시 로맨스는 그냥 영화로 봐야...
 최근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내가 사는 시대 배경이 주는 안정감은 있었다. 오픈채팅방에서 정모로 만나는 사람들이라던가, 여주인공이 딩크를 고집하는 것들이 실제 현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굳이 이건 대체 언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야? 하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달까. 지금 서울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 현실감있었고 흡수하는 입장에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건 썩 마음에 차지 않아 별점은 안좋게 줬지만 공감되는 문장은 있었다. 어린 시절 포기라 단정지었던 것이 다만 어떤 종류의 수긍이었다는 것. 난 도원처럼 무언가에 열정을 쏟은 적은 없으니 얘기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포기했던 것들이 수긍이었다는 게 마음을 찔렀다. 항상 이렇게 찔려만 하지, 찔려만.
 다시 읽을 거 같지 않으므로 줄거리를 세세하게 써야하나 싶은데 생각해보면 딱히 그럴만한 이야기도 없으니까 생각나는대로 적어보기로 했다. 책 다시 들여다보면서 적을만큼의 애정은 없고 또 다시 내용이 궁금해질 것 같지도 않으니까. (심지어 지금 내 옆에 책이 있지도 않다.) 연애소설답게 주인공으로 네 명의 남녀가 나오고 조연 느낌으로 몇 사람이 더 등장한다. 하지만 큰 틀은 그 네 사람. 도원과 재인, 예진과 호계다.
 완구 회사에서 근무하는 스물 일곱살의 예진은 같은 건물 지하에서 음향감독으로 일하는 도원을 짝사랑 중이었다. 같은 건물이라 알게 된 사이가 아니라 점심시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빈 점포 앞 차양에 홀로 서서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이기에 더 로맨틱했고, 도원의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제나 햇빛이 비추는 13층의 여자와 하루종일 어두컴컴한 지하 남자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듯 싶었다.
 예진은 도원과 따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식사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매일 점심시간 우연인 듯 약속한 듯 마주치면서 조금씩 마음을 키워가는데 어느 날 비어있던 점포가 나가면서 이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자 마음을 숨기지 않고 도원에게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한다.
 하지만 도원은 예진에게 연애감정이 전혀 없었다. 예진의 마음은 이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는 짝사랑이었던 것이다. 도원은 살짝 당황하지만 예진이 구체적으로 목적을 드러내지는 않았기에 그녀와의 식사를 수락했고 이후로도 종종 만나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예진의 싱그러움과 빛나는 밝음은 분명 호감을 느낄 법한 것이었지만 도원은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생각이 없었기에 어느 날 친구의 공연에 초대권을 받게 되자 예진에게 친구를 데리고 와 함께 보자고 제안하다. 그리고 그 날, 오랜만에 재인과 재회하게 된다.
 재인과 도원은 20대 혈기왕성하던 시절 음악을 하면서 같은 무대를 공유하던 사이였다. 도원은 무대 위에서 밝게 빛나는 재인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당시 재인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재인이 연인과 헤어질 때면 도원에게 여자친구가 생겼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인연이 반복돼서 엇갈린 타이밍에 둘은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두 사람에게 모두 상대가 없었을 때, 이제 두 사람이 만날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지만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갔고 여전히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인은 도원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고 둘은 키스를 하게 되지만 더이상의 선은 넘지 않고 친구로 남는다. 이후 재인은 도원보다 먼저 음악을 떠났고 동시에 지긋지긋했던 집에서도 떠나 제빵을 배우러 유학길에 올랐고 돌아와서는 남편 현조를 만나 결혼을 했다.
 재인의 결혼생활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지만 딩크를 합의했던 현조씨가 생각을 바꿔 아이를 원하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이였기에 이별은 간편했고 재인은 이제 홀로 이스트플라워베이커리를 운영하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재인에게도 비밀은 있었다. 헤어진 사이었지만 주기적으로 현조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현조와의 잠자리 후 바로 몸을 일으켜 그의 집을 나오는 게 재인의 철칙이었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환멸을 느꼈지만 그 행동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대신 이런 비밀을 친구의 이이갸인 냥 가게 알바생인 호계에게 털어놓을 뿐이었다.
 호계는 재인의 빵집에서 일하는 알바생이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1학년에 자퇴를 했고 특별히 하고싶은 것 없이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는데 이를테면 지금이 호계 인생의 과도기 같은 것이었다. 호계는 시시때때로 데이트 어플로 여자를 만나오다가 어느 날 잠 못드는 밤이라는 오픈채팅방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정모에 참석하게 된다. 정모 분위기는 누가누가 더 왁자지껄한가를 겨루는 듯 했고 동 떨어진 세계 사람인 냥 자리를 지키던 호계는 한 여자가 다가와 살갑게 말을 거는데도 퉁명스럽게 대꾸하다가 자리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걸던 여자를 발견한다. 여자는 작은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는데 나중에 여자가 내렸을 때 그 자리에는 다이어리만 남아있고 호계는 자신도 모르게 다이어리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며칠 뒤 열어본 다이어리에는 여자의 번호가 적혀있었고 번호를 저장해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보자 거기엔 다이어리 사진이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여자가 명백히 다이어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자 호계는 여자에게 연락해 다이어리를 전해주게 된다. 그 여자가 바로 예진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둘은 비슷한 연배에서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쉽게 친구가 된다.
 예진은 호계에게 자신의 짝사랑 이야기를 털어놓고 호계는 그 이야기를 자신이 알바하는 가게 사장인 재인에게 전한다. 재인과 호계는 생각보다 이상적인 사장과 알바 관계였고 재인은 호계를 통해 듣는 예진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동시에 예진 이야기를 할 때 변하는 호계의 표정에서 호계가 예진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예진은 호계에게 도원이 친구 공연에 지인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며 호계를 초대했고 호계는 그 자리에 재인을 데리고 나간다. 그렇게 해서 도원 앞에 다시 재인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날 그 자리에서 도원의 눈빛을 보고 예진은 단박에 알아챈다. 오래 전 친구라는 저 재인이라는 여자가 도원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이후 도원과 재인은 사귀게 된다. 재인은 이제까지 호계가 해준 이야기 속 여주인공인 예진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예진의 존재가 재인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할 순 없었다. 재인은 자신을 한없이 아껴주는 도원을 유감없이 받아들였고 그와의 관계가 시작되자마자 현조를 정리한다. 하지만 현조의 가족별장에 재인이 20대 초반부터 키웠던 반려동물 두 마리가 잠들어있었기 때문에 도원에게 말하지 않고 현조와 그의 별장을 찾기도 한다.
 한편 호계는 예진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고백한다. 언제나 바쁜 부모님 사이에서 걸림돌이라는 느낌으로 자란 호계에게는 피는 안 섞였지만 늘 자신을 친손자처럼 돌봐주던 유모 할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자 호계는 할머니를 찾아다녔다. 힘겹게 할머니를 찾아낸 호계는 병에 걸려 요양원에 틀어박혀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와 마주하게 되고 그 길로 아버지에게로 가 병원비를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냉철한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갚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돈을 빌려줬고 그 때부터 호계는 부모님에게 정을 떼고 집을 나와 생활해왔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병에 걸려 일선에서 물러나 병원신세를 지게 되자 아머니는 아버지가 호계를 보고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해오는데 호계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가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예진은 같은 고민을 계속 안고 있다는 건 이미 결론을 알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며 조언하고 호계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예진은 연적인 재인의 빵을 좋아했기에 호계를 시켜 종종 재인의 빵을 사먹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자 자신의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에게 고백해온 남자와 큰 고민없이 사귀기 시작한다. 호계는 예진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자신이 유일하게 열중할 수 있는 것인 그림작업에 열중해 있던 어느 날 완성작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호계를 만나러온 예진에게서 연인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예진의 마음을 상처입히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계는 자신도 모르게 재인과 도원 이야기까지 입에 올리게 된다.
 호계와 크게 다투고 집으로 돌아온 예진은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하고 만다. 바로 도원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꼭 할 말이 있다며 도원을 불러낸 예진은 도원에게 재인이 전남편과 주기적으로 만나고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도원은 그런 예진에게 남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에 대해 비난한다. 도원은 사실 관계를 따지지 않고 재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재인은 한 번도 도원에게 부끄러울만한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변명없이 이별을 고한다.
 재인은 이제 자신이 한평생 못해오던 일을 해야한다는 걸 깨닫는다. 바로 관계를 끊어내는 것. 재인은 도원과의 관계를 끊어낸 것처럼 전남편 현조에게도 완전한 이별을 고한다. 예진 또한 남자친구 한철씨와 헤어진다. 사실 그들의 관계는 자기 자신을 좀먹는 오래갈 수 없는 관계였으니까.
 그렇게 네 사람의 관계는 어그러진다. 재인은 자신이 믿고 한 이야기를 예진에게 전한 호계를 납득할 수 없었고 자신의 말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먼저 듣고 믿어버린 도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 예진은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고 호계 또한 재인에게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그렇게 어그러진 관계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뒤 도원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해 재인을 찾아가지만 둘은 다시 이어질 수 없었다. 호계는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유학길에 오르기로 결정하고 오랜만에 예진을 만나 어렴풋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사실 주인공들의 관계보다는 하나하나의 감정이나 문장들에 집중해서 보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연애스토리라는 게 아무래도 진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거라서 난 문장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서 봤다. 노력이 부족해서 (라기보단 계속 그렇게 집중하기가 좀 귀찮아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별 두 개를 주게 되었지... 성공했다면 세 개 정돈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귀찮으니까 여기까지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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