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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

읽은 기간: 22.07.28~08.03 / 7일

 


 나는 또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 두달이 지나서야 리뷰를 쓰려고 앉았다. 이러니 내용이 기억날리가 있나... 그래도 느낌은 기억나니까 조금 힘내서 리뷰를 써봐야지. 제발 미루지 좀 말자. 귀찮아서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고있지만 그래도 리뷰는 꼬박꼬박 썼었는데 올해는 이것마저 안해서 좀 현타오는 기분이다.
 일단 이 책은 거의 E북으로 읽었다. 선물받은 책이 있었지만 침대에 누워읽는 시간보다는 계단을 타면서 읽는 시간이 훨씬 많았기에 폰으로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공상과학소설이니만큼 지류보단 기기가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잠시 해본다.
 김초엽 작가의 책은 읽어보려고 미리 사둔 책이 두 권이나 있었지만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이전에 지구 끝의 온실을 조금 읽다가 덮은 적이 있어서인지 작가의 스타일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그냥 아 이 작가 스타일은 일관적이구나, 정도?
 SF소설이라고 하나 이런 장르를...? 평소 SF영화도 즐겨보지 않기 때문에 책도 그러지 않을까 했는데 책은 또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이런 생각을 했다고? 이런 상상을 했다고?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니... 정도의 생각만 하다가 조금씩 전문적인 지식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이게 진짜라고 믿어버리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면서 최은영 작가님부터 계속 재밌게 읽고있는 거 보면 나 단편 좋아했네... 특히 이 책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신선하고 좋았다.
 공상과학이라 배경은 미래였는데 인간이 원하는대로 배아를 디자인해 신인류를 만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첫번째로 나온다. 데이지의 마을에는 매년 성년이 된 청년들을 사초지라는 곳으로 보내는 순례자의 길이 열리지만 떠난 사람 중 반 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지만 데이지는 이에 의문을 품고 답을 찾기 위해 마을의 금서 구역에 들어갔다가 마을의 창시자인 릴리와 그의 딸 올리브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마을의 시초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를 디자인해 배아를 개조하는 것에 성공한 릴리 다우드나는 완벽한 세상을 꿈꿨지만 이 기술은 부유층만 이용할 수 있었고 릴리의 기술로 인해 세상은 개조인간과 비개조인간으로 나뉘는 분리주의가 생기고 만다. 릴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질병도 없고 아름답고 완벽한 신인류를 만들어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배아에서 결함을 발견하고도 왜인지 없애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다른 별로 가 마을을 만들어 그 곳에서 자신의 아이와 같이 결함있는 사람들이 모여살게 한다. 그곳이 바로 데이지가 지금 살고있는 행성, 마을이다.
 릴리의 아이인 올리브는 자신의 근원을 알고싶어했고 이를 위해 지구로 여행을 떠난다. 지구에서 처음 만난 노인은 올리브 얼굴에 있는 얼룩을 보며 혀를 찼고 올리브는 태어나 한번도 이상하다 생각해본 적 없는 얼룩이 지구에서는 큰 단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구에서의 생활에서 올리브는 실패한 개조인 델피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살던 마을이 살기 좋은 유토피아임은 맞지만 사랑의 감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올리브는 지구에 남아 델피와 함께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고 마을의 후손들에게 성년식 순례를 하는 전통을 만든다. 데이지가 궁금해했던 돌아오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랑을 택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데이지는 성년이 되지 않았지만 마을을 떠나 지구행을 택한다.
 희진은 촉망받는 연구원이었지만 탐사를 위해 오른 탐사선이 실종되면서 우주를 떠돌다 40년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사는 행성 위치를 말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너무 오래 혼자 있던 탓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라며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행성 위치를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는 손녀에게 전해내려온다.
 희진이 처음 행성에 발을 내딛었을 때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지켜준 것은 웬 커다란 생명체였다. 희진은 그 생명체를 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루이는 자신의 동굴에서 희진을 돌보며 살아가는데 수명이 3년밖에 되지 않지만 루이가 죽으면 새로운 루이가 나타나 이전 루이가 남긴 그림을 보고 이전 루이처럼 행동하곤 했다. 마치 루이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루이는 항상 그림을 아꼈기에 희진은 그림에 접근하지 못했지만 점차 그들의 색채 언어를 이해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루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림을 해석해본 희진은 루이가 색채 언어로 자신에 대해 적어놓은 문구를 읽게 된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적적으로 구조된 희진은 지구로 돌아와 남은 생을 색채언어에 대한 해석에 쓰기 시작한다. 인간처럼 문자는 없지만 색채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루이.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쓰더라도 희진이 루이의 행성 위치를 말하지 않은 건 루이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뇌 해석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 수빈과 한나는 영유아들의 뇌에서 전혀 말도 안되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도저히 영유아가 할 수 없는 생각들이 분석 결과로 나온 것이다. 처음엔 연구 결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실험 결과, 인간성이라는 것은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존재가 아이들의 뇌 속에 자리잡아 그들에 의해 인간성이라는 것이 터득되는 것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아이들의 지성과 정서를 발달시키다가 아이들이 일곱살이 되면 사라지고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 또한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러시아 한 보육원에서 자란 류드밀라라는 아이는 미술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했는데, 그녀는 류드밀라라는 행성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며 류드밀라에 대한 그림을 발표해왔다. 수많은 사람들은 류드밀라의 그림을 사랑했고 류드밀라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작품은 사랑받았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건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느 날 우주에서 류드밀라의 그림 속 류드밀라 행성과 똑같이 생긴 행성이 발견된 것이다.
 류드밀라 행성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아이들의 뇌 속의 그들이 활발하게 반응한다. 수빈과 한나는 연구 결과를 통해 그들이 류드밀라 행성을 보고 크게 동요하며 행성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의 고향이 바로 류드밀라였던 것이다. 그들은 류드밀라에 살다가 행성이 사라지면서 살 곳을 잃게 되어 지구로 왔고 갓 태어나는 아이들의 뇌 속에서 아이들과 몇 년간 공생하며 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죽은 류드밀라의 뇌 속에 살던 그들은 왜인지 류드밀라가 일곱살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그녀와 함께 공생하였기에 류드밀라는 평생 행성에 대해 기억을 했고 류드밀라 행성을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류드밀라는 류드밀라 외에 다른 연작도 그렸었는데 그 연작의 제목은 나를 떠나지 말아요 였다고 한다.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 류드밀라는 누구에게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을까.
 노인은 이 우주정거장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던 걸까. 남자는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하지만 좀처럼 섣불리 노인에게 자신의 목적을 말할 수 없어 상부의 지시대로 노인의 이야기를 먼저 끌어내보기로 한다.
 노인의 이름은 안나였다. 젊은 시절, 인류의 우주 이주를 위한 인간 냉동 기술을 연구하던 연구원 안나는 연구 발표를 앞두고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보냈다. 바로 따라갈 생각이었지만 새로운 웜홀이 발견되면서 빛의 속도를 이기는 워프 항법이 개발돼 우주 개척 사업의 패러다임은 혁신적으로 바뀌어버렸고 안나의 슬렌포니아행 노선은 폐기되어버린다. 안나는 자신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썼지만 우주 연방은 안나에게서 가족을 빼앗아갔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안나는 자신이 개발한 냉동 기술로 자기 자신을 냉동하며 생명을 연장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 언젠가 슬렌포니아로 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남자는 안나에게 안나는 이미 백일흔살이며, 슬렌포니아에 가더라도 가족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안나는 홀로 자신의 작은 우주선을 슬렌포니아 행성이 있는 방향으로 출발시켜버린다. 안나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죽기 전에 슬렌포니아에 도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곳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문구류를 만들던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회사가 새로 출시한 감정의 물성이라는 제품이 대박을 치면서 잡지사 에디터 정하의 사무실에도 견본품이 들어오게 된다. 행복, 두려움, 슬픔, 기쁨같은 사람의 감정을 물건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부터 정하는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손사레를 쳤고 이런 것을 돈을 주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오랜 연인 보현이 이 상품에, 특히 우울에 푹 빠져 사들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정하는 사람들이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거라는 직장 후배의 말도, 자신의 우울을 손 위에 두고 쓰다듬기를 원한다는 보현의 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감정의 물성 제조 과정에 미량의 마약류가 들어간다는 게 밝혀지면서 제품은 생산이 중단되고 더이상 이 말도 안되는 다툼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정하는 안도한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이모셔널 솔리드의 대표는 정하에게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공포와 슬픔, 괴로움을 느끼듯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는 아니라며, 소비자는 기꺼이 이런 것들에 대가를 지불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정하는 이 말도 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판매가 중단된 우울을 여전히 가지고있고 계속해서 피폐해져가는 보현 또한 이해하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에도 쓰여있듯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걸 결국 정하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고 과학이 발달해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빅데이터 삼아 살아있는 사람들이 고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시대의 이야기다. 영혼을 저장해둔다는 게 조금 더 쉬운 표현이지만 사실 저장된 건 영혼이 아니라 그저 데이터일 뿐이고 남은 사람들이 만나는 것도 세상을 떠난 고인이 아니라 과거 데이터로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영혼 저장소를 도서관이라 부르고 영혼 데이터를 마인드라고 지칭한다.
 지민의 엄마가 돌아가신 건 3년 전이었고 지민은 그 이후 한번도 엄마를 찾아간 적이 없었다. 보고싶지도 않았고 본다해도 그건 진짜 엄마가 아니니까. 엄마는 살아있는 동안 우울증으로 지민에게 많은 상처를 줬고 자신이 지금 뱃 속의 아이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는 것이 혹시 그 기억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있던 요즘, 갑자기 도서관에서 연락이 온다. 마인드를 불러오려면 인덱스가 필요한데 엄마의 마인드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됐다는 것이다.
 도서관을 찾은 지민에게 도서관 직원은 지민의 엄마인 은하의 마인드는 분명 도서관 내 어딘가에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찾을 수 없을 뿐이라고. 은하의 마인드에 접근할 수 있는 누군가가 인덱스를 삭제한 것 같다고. 고인의 유품이 있으면 마인드를 찾을 수 있다는 도서관 측의 설명을 듣고 지민은 오래 전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를 찾아가고 엄마의 인덱스를 지운 것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민은 자신이 모르던 젊은 시절의 은하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되면서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던 것, 산후 우울증을 앓았던 것, 무엇보다 마인드가 분실되기 훨씬 전, 은하가 살아있을 때, 이미 오래 전부터 은하의 삶은 세상과 분리되어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지민은 과거의 엄마와 동일한 처지가 되어서야 어렴풋하게나마 엄마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은하의 마인드를 마주한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를 찾으면 꼭 하고싶었던 말을 한다. 용서가 아니라, 엄마를 이해한다고.
 피나는 노력으로 우주인에 선발된 가윤은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오래 전 사라진 자신의 롤모델이자 우주 영웅, 재경이모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된다. 과거 웜홀이 처음 발견돼 다른 우주로 갈 우주인을 처음 선발했을 때 전세계적으로 단 세 명 뽑는 우주인에 뽑힌 건 가윤의 이모 재경이었다. 친이모는 아니었지만 가윤의 엄마와 같이 비혼모로 만나 함께 살았기에 가윤은 재경을 친이모처럼 따랐고 동양인 여성과 비혼모라는 핸디캡을 가지고도 당당하게 우주인으로 선발된 것이 늘 자랑스러웠다.
 웜홀을 견디려면 일반 신체와는 다른 조건이 필요했기에 우주인은 신체 개조와 훈련이 필요했고 재경은 이 모든 걸 해낸 후 이윽고 우주선에 탑승한다. 하지만 우주선은 폭발했고 탑승한 세 명의 우주인은 유해도 발견되지 못한 채 사망처리 되고 만다. 이게 가윤과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과 달랐다. 재경은 우주선 발사 전날 사라졌다. CCTV를 통해 발견된 재경의 마지막 모습은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었다. 재경의 신체는 이미 심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태였기에 도주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경의 도주가 발표되기 전에 우주선 사고가 일어났고 연방은 더 큰 이슈를 피하기 위해 재경도 우주선에 타고 있던 걸로 마무리 했던 것이다.
 재경은 왜 우주로 떠나지 않고 바라 속으로 들어갔을까. 가윤은 재경의 딸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고 그녀가 모든 걸 알고있었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재경이 심해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 것도. 아마 재경은 아직 지구에 대해, 지구의 심해조차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개조해가면서까지 우주로 진출하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까. 그래서 그 모든 기대와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심해로, 바다로 떠나 유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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