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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
읽은 기간: 19.06.15~24 / 10일
다른 건 안보고 정유정이라는 이름만 보고 읽기로 했다. 한 번 만족을 준 작가는 웬만하면 실망을 주지 않으니까. 사실 그런 이유로 작가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걸 어디서 읽었었는데... 최은영 작가였던가. 계속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하면 독자를 더이상 그 작가를 찾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번 책도 정유정 작가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뿌듯... 왜 내가 뿌듯한 건진 모르겠지만 뭐 일단은 탁월한 선택에 대한 뿌듯함이라고 하자.
7년의 밤은 영화 제목으로 더 익숙했다. 분명 이런 영화가 있었던 거 같은데 하고 찾아보니 있었다. 장동건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평점과 한줄평이 아주 개차반이었다. 등장인물을 안보려고 노력하고 창을 닫은 뒤 책을 시작했는데 책 초반에 승환의 머리가 빠진다는 대목을 읽고 영화 포스터에서 장동건이 머리가 좀 벗겨진 채로 나와서 장동건이 승환인 줄 알았다. 매치 시키지 않고 보려고 어찌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뭘 이렇게 안 어울리게 캐스팅했나 했는데 책 다 읽고 검색해봤을 때서야 승환역이 송새벽인 걸 알았다.
책의 진도를 나가면서 계속 생각한 건 이거 영화로 만들면 대박이겠다 와 근데 이거 만들 수 있기는 한건가? 였다. 영화가 담기엔 책이 너무 서사시적인 느낌이라 이걸 다 담아내는 건 무리인데? 싶었달까. 등장인물별로 각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것도 한몫했다. 이건 불가능이야...싶어 그래서 영화가 망한건가 싶다가도 큰 틀만 그대로 두고 만들어도 꽤 성공할 거 같은데 싶어 또 영화가 궁금해졌다. 영화를 한 번 봐봐야겠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서원은 십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19세 소년으로 7년 전 엄마를 죽이고 댐을 열어 한 마을 전체를 수장시킨 살인마 최현수의 아들로 7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고 있다. 12살 어린 나이에 일을 겪고 친척집을 전전하지만 결국 자신의 뒤를 쫓아 끝없는 나락으로 쳐박아버리는 선데이매거진 덕에 친척들에게도 버림받고 사건 당시 잠시 자신과 함께 살던 아저씨 승환을 찾아가 승환과 7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듯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살고있는 등대마을에 터를 잡은지 1년째. 돌연 승환이 자취를 감추고 서원에게 의문의 택배가 배송된다. 서원은 그것이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살고있는 승환의 소설임을 확인하고 읽게 되는데 소설 안에는 뜻밖의 내용이 들어있는데...
소설은 그 때를 기점으로 과거로 달려간다. 7년 전 악몽같던 지옥의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서원의 가족이 일산에 새 아파트를 구입하고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현수가 사택을 제공받을 수 있는 세령마을로 댐관리 지원을 했던 그 당시로. 서원, 현수, 은주, 세령, 영제 등 등장인물들을 오가며 각자의 상황과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걸 다 적을 수는 없으니 간추려봐야지. 서원네가 이사오기 전 현수는 은주의 닥달로 새로 살 집을 보기 위해 세령호로 향하는데 야구선수 생활을 그만 둔 뒤 오랜 기간 빠져있던 술에 빠져 그 날도 만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다. 밤중에 세령마을 어귀에 도착한 현수는 안개로 자욱한 도로를 운전해가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를 치고 마는데 그건 바로 세령수목원 주인 오영제의 딸 오세령이었다. 12살짜리 세령은 그 날 영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간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 옷을 입고 화장을 하다가 영제에게 들키고 영제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도망치던 중이었다. 현수는 죽어가는 세령을 보고 당황하고 텅 빈 눈으로 자신을 보며 아빠라고 부르는 세령의 입을 틀어막고 완전히 죽여버린다. 그 상태로 세령을 세령호에 던져버린 후 정신을 놓고 도망간다.
같은 시간 세령호 아래 과거 세령마을이 그대로 잠들어있다는 걸 알게 된 승환은 몰래 잠수장비를 챙겨 세령호를 탐사하고 그러다 물에 가라앉는 세령을 보게 된다. 평소 세령이 영제에게 맞고 산다는 걸 알고 있던 승환은 자연스럽게 세령이 아빠에게 맞아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잠수를 끝내고 나온다. 이후 팀장으로 발령받아 온 현수의 가족과 한 집에 살게 된 승환은 악바리같은 은주와 등치만 컸지 어딘가 침울해보이는 현수 사이에서 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어린 룸메이트 서원에게 마음이 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영제는 사라진 딸을 찾아헤매다 세령호에서 세령의 옷 조각을 발견하고 세령의 시체를 수습한다. 그리고 세령을 죽인 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는데 경찰보다 빠르게 범인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승환을 의심하지만 조금씩 단서가 잡히면서 범인이 현수라는 확신을 갖는다. 승환 역시 처음엔 영제를 의심하지만 상황을 맞춰가며 세령이의 죽음이 현수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고 현수가 자신에게 기다려달라고 하자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는 사이 영제는 조금씩 딸의 복수를 계획하고 그러기 위해선 현수가 자살하거나 자수 또는 체포가 되면 안되기에 서둘러 계획을 진행한다.
일단 영제는 은주를 잡아서 가두고 방해가 될 것 같은 승환도 약으로 재운 뒤 가둬놓는다. 심리적 압박에 빠져있던 현수가 야간근무를 하던 날 현수를 찾아온 영제는 현수에게 cctv를 통해 세령호 가운데 마치 섬처럼 떠있는 한솔등에 묶어놓은 서원을 보여주고 조금씩 물이 차오르게 해 서원을 죽인 뒤 현수와 서원, 은주를 차에 태워 세령호에 수장하고 죄책감으로 인한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위장하려 했던 것이다.
그 사이 지하실에서 깨어난 승환은 상황을 눈치채고 서원을 찾으러 가고 서원이 물에 잠기기 전에 가까스로 구해낸다. 그렇게 서원을 구출해 축사로 옮긴 뒤 한숨을 돌리자마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댐 수문이 열리고 물이 쏟아져 나가는데 아들이 죽은 줄 안 현수가 정신이 나가 수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때문에 저지대 마을은 그대로 수장되어버리고 사상 최악의 사건이 발생하고 후에 서원이 살아있단 걸 알게 되었지만 현수는 구속된다. 은주 또한 승환처럼 서원을 찾으러 가다가 영제에게 붙잡혀 맞아죽었는데 현수가 딱히 부인을 하지 않아 그녀의 죽음도 현수에 의한 것으로 종결되고 현수는 사형수가 되어 수감된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서원에게 우편물이 하나 더 도착하는데 바로 아버지의 사형이 집행되었고 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내용이었다. 서원은 결국 먼저 온 택배에 있던 모든 자료를 읽어보게 되는데 그곳엔 지난 7년간 이 사건에 대해 승환이 취재한 모든 기록과 영제의 아내인 문하영이 보낸 편지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죽은 줄만 알던 영제가 사실은 살아있었고 자신을 쫓아다니며 삶의 터전을 닦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선데이매거진의 정체가 영제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7년간 이렇게 서원을 살려두었던 것은 현수가 죽으면 그 때 함께 복수할 계획이라는 것도.
서원은 승환이 사라진 것도 영제의 짓임을 느끼고 영제를 끌어내기 위해 등대로 가 자살을 할 것처럼 위장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눈 앞에 영제와 묶여있는 승환이 보였고 서원은 문하영이 편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영을 이용해 영제를 자극한다. 몰래 숨겨온 커터칼날로 묶인 손을 풀어낸 서원은 영제와 몸싸움을 하고 승환이 미리 불러놨던 형사들이 들이닥치면서 상황이 끝이 난다. 영제의 차에서 서원의 이름이 적힌 관이 발견되면서 서원을 세령호로 데리고 가 수장하려던 계획이 밝혀지고 과거 은주를 죽인 것 또한 영제임이 알려지지만 여전히 죽은 사형수 현수는 한 마을 사람들을 통째로 죽음으로 몰고간 살인마였고 서원은 그런 살인마의 아들이었다. 서원은 사람들 앞으로 나가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진실이 밝혀지면서 난 계속 궁금했다. 승환은 대체 왜 이렇게 서원에게 마음을 쓰는 것일까. 그저 30대 초반에 단 며칠 함께 산 초등학생일 뿐이라면 승환은 아직 젊고 창창한데 어째서 어린 서원을 책임지고 인생의 많은 걸 포기해가면서 아이를 맡은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결국 승환의 죄책감에서 나온 행동이었음이 나왔을 때 비로소 이제까지 꽉 막힌 것처럼 불편하던 것이 해소가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위해, 이런 최악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현수를 설득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 현수가 기다려달라 했던 걸 그대로 믿고 기다리기만 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서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서원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영제와 그 날 사건에 대해 조사하던 승환은 영제의 존재에 대해 눈치를 챘고 포수 출신인 현수의 직감으로 현수의 사형이 집행되면 그 때 영제가 다시 나타날 것임을, 서원이 다시 위험해질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건 짜여진 판이었고 더 잘 짜여진 판이 이기게 되는 법이었다.
이 정도로는 설명이 안될 정도로 한 권의 책 속에는 엄청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다른 것보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다는 게 좋았다. 이해되지 않은 인간의 행동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될만큼...? 이해할 순 없지만 설명할 순 있을 거 같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게 딱 맞춤 답안인 것 같다. 그리고 종의 기원 보다 더 정유정 작가의 기량에 놀랐다. 다른 것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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