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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유정
★★★★☆
읽은 기간: 19.08.15~09.02 / 18일
두 권의 책으로 앞서 나의 신임을 얻게 된 정유정이라는 이름은 결국 오랜만에 돈을 주고 새 책을 사게 만들었다. 중고서적 말고 새 책 산 건 진짜 오랜만인 듯...?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번 책은 음... 뭐랄까... 솔직히 기대이하였다. 근데 그건 순전히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고 재밌게 읽기는 했다. 뭐랄까... 이 전에 읽은 책들과 스타일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랄까... 표현을 못하겠네.
이 책은 서울과 인접해있는 화양시에서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전개되는 재난 이야기이다. 이 바이러스는 개와 사람이 쌍방으로 전염이 가능한 인수공통바이러스로 접촉 뿐 아니라 공기 중으로도 전염이 되어 빠르면 이틀 안에 사망하는 그야말로 악마의 저주같은 병이다. 이 곳에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얽히고 설키며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혹은 모든 걸 다 끝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알래스카에서 머셔로 대회에 참가했다가 늑대떼들의 습격으로 자신의 썰매개들인 쉬차를 잃고 죄책감에 빠져 한국으로 와 드림랜드를 운영하며 개들을 돌보는 수의사 재형은 기사에 의해 과거가 폭로되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기사를 쓴 김윤주는 한 제보자에 의해 재형의 과거를 캐낼 수 있었는데 사실 관계에 입각해 쓰여진 기사라곤 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는 걸 화양에서 재형을 만나 참변을 겪으면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의사 아버지와 교수 어머니, 똑똑한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 천덕꾸러기처럼 자란 동해는 「28」 에서 정유정 소설에서 꼭 등장하는 '악'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해는 아버지 박남철에 대한 분노를 개들에게 표출하며 개살해자라는 오명을 쓰고 군대에서 나와 소방서에서 공익요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최종 목표는 남철이지만 지금 당장은 입대 전 죽이려다 재형에게 발각돼 못 죽인 아버지의 개 쿠키이다. 동해에게는 아버지의 개를 죽이려다가 재형에게 들키고 쿠키를 데리로 간 재형에게 남철이 따지러 갔다가 남철에게마저 그 사실이 전해지면서 강제로 입대를 해야 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 일로 재형에게까지 향하게 된 분노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재형과 아버지의 거래 서류를 몰래 훔쳐 기자에게 보내는 짓까지 하게 만든 것이다. 소방서 팀장으로 일하는 기준에게는 아름다운 아내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 기준은 어느 날 아픈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한 개장수의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집에는 엄청나게 많은 개들이 갇혀있었다. 기준이 깨고 들어온 창문으로 늑대처럼 생긴 대형견이 탈출을 하지만 잡을 수 없고 집을 둘러본 기준은 경악한다. 대부분의 개들은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 틈에서 발견한 개장수는 이미 두 눈이 빨갛게 변한 채 죽어가고 있던 것이다. 기준은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고 그로부터 며칠 내로 기준의 동료들이 개장수 사내와 같은 병에 걸려 죽어나간다. 간호사인 수진은 아버지와 함께 쌍둥이 동생 면회를 갈 생각에 들떠있다. 하지만 얌체같은 선배에게 잡혀 근무를 바꿔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그 날 밤 실려온 두 눈이 빨간 환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날 그 환자와 접촉했던 친구를 잃게 된다. 투견장에서 투견생활을 하다 개장수에게 팔려온 늑대개 링고는 개들이 죽어가는 집에서 갇혀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하게 되면서 세상을 떠돌게 된다. 그러다 드림랜드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주친 대형견 스타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된다. 링고는 스타에게 구애행동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동해가 쿠키인 줄 알고 스타를 납치해 죽이려 하자 쿠키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동해의 친구를 산 아래로 추락시킨다. 그 일로 친구 살해 혐의를 받게 된 동해는 그 길로 남철에게 잡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이야기는 이 많은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돌아가면서 보여준다. 그들의 상황과 감정, 생각까지 여실히 보여주면서 화양시에 내려진 참혹한 저주도 함께 보여준다. 원인도 해결책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결국 정부는 화양을 봉쇄하기로 하고 화양시민들은 그대로 화양에 갇힌다. 정부는 군대를 써서 개들을 몰살하는 작전을 펼치고 환자들은 점점 늘어나 병원은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결국 감염된 사람들은 그대로 차에 실린 채 사라지는데 모두 창고같은 곳에 쓸어넣고 죽음만 기다리게 하는 거였다. 어떤 이유에선지 감염이 되지 않거나 감염 속도가 더딘 사람들은 타인을 돕거나 숨거나 아니면 범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책은 다방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죽지 않기를 바랐던, 죽지 않을 줄 알았던 등장인물들이 아주 빠르게 죽어간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다 쓰면 나 또 밤 새겠지... 줄거리는 여기까지 해야겠다.
정유정은 종의 다름이 인간과 동물의 취급 차이를 정당화할 수단이 되는가? 라는 의문에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했다. 구제역 때문에 생매장 되는 가축이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이야기의 초입이 시작된 것이다. 과연 인간이 가족이라 부르는 개에게도 똑같이 행동할 것인가... 나 역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특히 등장인물에 인간이 아닌 개를 넣으면서 개의 시점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흥미롭기도 하면서 사실은 좀 적응이 안되기도 했다. 늑대개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공감될 수 없었고 늑대개의 심리를 의인화 하듯 표현한 것이 좀 거슬렸달까... 동물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겠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표현되는 일은 동화나 만화에서나 접했던 터라 살짝 낯설었다.
다 읽고 나서 대체 제목이 왜 28이야? 하면서 뒤적뒤적 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검색해보니 바이러스 생존기가 28일동안 벌어진 일이라서 28이었다. 책에 그런 설명이 나와있었나? 싶었지만 어딘가에 적혀있었으니 답변이 달려있겠지 싶었다.
「종의 기원」에서부터 느낀건데 정유정 작가는 이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심리 묘사를 잘한다. 특히 싸이코패스 같은 악한 인간의 심리 묘사를. 사실 이런 마음을 가져보기만 해서는 이렇게까지 진전된 서술을 할 수 없을 거 같고 그냥 그 사람이 되어야 될 거 같은데 이것 또한 다 작가의 역량이려니 싶다. 그냥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새로운 단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평상시 책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생경한 단어들을 발견하고 검색해 뜻을 알아내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것들을 다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오늘도 나는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에서 내가 느낀 것들의 정리본을 읽었다. 느낀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내 가장 큰 단점인데 작품해설에 다 있었다. 이 책의 작품해설은 '배보다 배꼽' 느낌이 아니었다. 정말 사실 그대로를 쓴 느낌이었다. 나중에 책 다시 읽기 귀찮으면 작품해설만 다시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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