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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
읽은 기간: 19.03.27~30 / 4일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팍팍 내뿜는 게 내용도 범상치 않았다. 작가 소개를 미리 읽고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엔 소설이 아닌 자서전인 줄 알았다. 이 소설의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가 작가가 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쭉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그녀에 대한 특이한 이력을 읽은 직후 바로 첫 장을 펼쳤는데 소설의 주인공 또한 편의점에서 18년째 알바를 하고 있는 3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으니 그럴 수 밖에. 소설이니 허구겠지만 확실히 작가의 경험이 많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겠지.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공원에서 죽어있는 예쁜 새를 보고 다들 불쌍하다며 묻어줘야겠다고 할 때 먹자고 하던 아이. 도대체가 가족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새 요리와 공원에 죽어있는 새가 왜 다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이 싸워서 누군가가 멈추게 하라고 하자 대뜸 삽으로 친구의 머리를 후려치던 아이.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해야 가장 빠르게 멈추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대답하던 아이. 게이코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기에 게이코의 가장 큰 문제는 누군가가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줘도 왜 아닌지, 왜 안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저 새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게이코에게 공감하면서 읽었다. 물론 동심의 세계에서는 죽은 새를 불쌍히 여기는 게 더 보편적일 수 있지만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본다면 생명은 동일한데 어째서 요리로 만들어먹는 새와 공원의 새를 분리시킨단 말인가.)
가족들은 그런 게이코를 '고치려'고 노력했고 게이코는 자신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해주는 가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남은 학창시절을 최대한 말을 안하며 조용히 보낸다. 그렇게 성인이 된 게이코는 우연히 오픈 예정인 편의점을 보게 되고 홀린듯 그 곳의 알바가 된다.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모두가 '점원'이 되는 곳. 비정상이라는 생각 속에 살아오던 게이코가 처음으로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곳. 내 자신을 안전하게 가릴 수 있는 곳. 오로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곳에서 게이코는 점장이 여덟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알바와 프리터들이 교체되는 1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알바로 근무한다. 비슷한 또래의 주부 알바생의 말투와 옷차림을 따라하며, 적당히 주변 사람들의 말투를 조합해가며 흔히 말하는 '정상인'인 척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다.
사실 편의점 입장에서 게이코만한 알바도 없다. 게이코는 오로지 편의점의 '점원'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을 편의점의 하나의 부품이라고 생각하며 출근할 때도 주변을 살피며 편의점 손님이 늘어날만한 상황인지 확인하고 무슨 제품이 잘 나갈지 미리 예측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보고 다음날 편의점에 필요한 일꾼이 되기 위해 먹이를 먹고 수면을 취하는 그런 직업정신이 투철한 알바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아무튼 그렇게 18년동안 잘 살아오는듯 보였으나 삼십대중반이 넘도록 결혼도 취직도 하지 않는 처녀는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기 십상이고 가족들의 걱정이 늘어나고 이제는 더이상 몸이 아프다느니 집안 사정 때문이라느니 하는 핑계로도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게이코는 편의점에서 만난 잠시 알바를 하다가 잘린 시라하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동거를 시작한다. 시라하는 혼활 중인 삼십대 중반의 남성으로 능력도 뭣도 없이 현대 사회를 석기시대에 비교하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전형적인 패배자 캐릭터인데 게이코는 시라하와의 동거로 인해 '일반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 되고 시라하는 게이코의 집에 '숨겨질'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백수에 정상이 아닌 남자여도 그런 사람과 동거를 함으로써 주변에서는 게이코를 보통사람으로 대해준다. 보통사람으로 보이려는 게이코의 고군분투가 갈수록 안스럽게 느껴질 때 즈음 게이코는 18년 동안 해온 편의점 알바를 그만둔다.
편의점을 그만둔 게이코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편의점에 의해 편의점을 위해 편의점만 보고 살아왔던 게이코는 더이상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게 몇 주를 쉬다가 시라하에 의해 서류를 넣었던 취직자리에 면접을 보러 가는 날,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한 편의점에서 게이코는 편의점 소리를 듣고 결국 편의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게이코 입장에서는 편의점으로 돌아가 하나의 부품이 되어 톱니바퀴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니까.
정상과 비정상은 무슨 기준으로 나뉘는가. 도덕과 비도덕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 것 같다. 게이코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저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방식과 다르게 살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못할 뿐인 것이다. 책은 조금은 독단적이고 극단적인 게이코라는 인물을 통해 보통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제대로 느낀건지는잘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보통의 기준도 명료하지 않은데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하지만 또다른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여긴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 사람에게 평범함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누가 봐도 이상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모르겠다.
나름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지만 게이코의 행동에서 공감가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투를 따라하고 주변 사람들의 옷차림을 흡수하는 것.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읽기 쉬운 문장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빠르게 읽었다. 다른 책이랑 병행하지 않아서 더 빠르게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용 자체가 흡수하듯 읽혀서 좋았다. 이제 주말이라 도서관 못가니까 미뤄뒀던 「내게 무해한 사람」이나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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