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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셍셍칩 2021. 9. 8. 13:01

「완전한 행복」

정유정

★★★★☆

읽은 기간: 21.08.20~26 / 7일

 


 「종의 기원」과 「7년의 밤」으로 정유정의 마력에 빠져든 후 신작은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첫 장을 넘길 땐 엄청 기대됐다. 「밝은 밤」을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밝은 밤」은 경건한 마음으로 스타트를 끊었다면 이건 순전히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찌됐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것도 사실이다. 어떤 내용이 나와도 놀라지 말자, 어떤 반전이 있어도 어떤 말도 안되는 정신세계가 펼쳐져도 이건 정유정 책이다, 하면서. 그래서 처음에 어린 화자가 등장해 엄마가 오리 먹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도 애써 쎄함을 누르려했다. 돼지로 만든 게 맞을 거라고, 사람이 아닐 거라고. 하지만 어슴푸레 알고는 있었다. 소녀의 엄마가 오리 먹이를 만든다는 그 민서기에 결국 사람이 갈릴 거라는 것 쯤은.
 이 이야기가 무슨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지 유추하기는 쉬웠다. 초반부터 눈치챘고 뒤로 갈수록 의심은 확신이 됐다. 내용이 너무 비슷했으니까. 토대는 너무 똑같았고 거기에 작가가 살을 아주 많이 붙여서 완성된 작품이겠지. 비교적 최근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인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나도 기사를 통해 꽤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계속 그 여자가 생각났다. 작가도 작가의 말을 통해 내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그 인물을 독자가 추론했으리라는 것을 예상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플롯도, 인물도, 배경도, 서사도 다 허구이며 그저 이야기를 태동시킨 배아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아마 그건 사실일 것이다. 다만 그 밑바탕이 너무 굵고 단단해서 계속 생각날 뿐.
 작가는 주인공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두고 피해자들을 화자로 내세움으로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악인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정유정의 다른 작품들은 피해자가 화자가 아니었는데. 그런 면에서 「종의 기원」과는 반대되는 느낌이었다. 신유나로 하여금 소중한 사람을 잃은 피해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고통을 겪는지 확실히 잘 보여주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작가의 의도대로 된 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은 덧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걸 더하고, 날 즐겁게 해주는 무언가를 더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행위를 함으로 행복이 더 커진다고. 하지만 유나는 달랐다. 신유나는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더해서 행복을 얻는 게 아니라 행복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해 나감으로 완벽한 행복을 완성시켜가는 것이다. 자기애의 늪에 빠져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다보니 사람 몇 정도는 죽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세상의 중심은 나이고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에 불과한데,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데, 한낱 들러리가 나를 불행하게 한다면 없애는 게 마땅하지- 라는 게 아마 신유나의 생각일 것이다. 간단하게 한줄 요약하자면, 자아가 텅 빈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을 매혹시키고, 가스라이팅하고, 그러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하면 (혹은 벗어나면) 죽여버리는. 그런 내용이다.

 지유는 서지유지만 엄마는 지유를 차지유라고 부른다. 내년부터는 차지유라 될 것이기 때문에 차지유라는 이름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지유는 평일에는 외할머니와 이모와 함께 지내고 주말에는 엄마와 새아빠가 사는 타운하우스로 가서 새아빠의 아들인 노아와 함께 지낸다. 친아빠는 못본지 몇 년이나 됐다. 지유는 종종 엄마와 함께 엄마가 친할머니에게 물려받았다는 시골집에 온다. 이 곳에 오는 건 엄마와 자신 둘만의 비밀이기에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된다. 시골집 근처에는 늪지대가 있고 온갖 오리들이 살고 있다. 엄마는 시골집에 올 때면 늘 고기를 사서 뼈와 살을 바르고 민서기에 살을 다져서 오리먹이를 만든다. 엄마는 오리먹이를 참 잘 만든다. 오리먹이는 만들고나면 수레에 싣고 늪으로 가 오리들에게 뿌려준다.
 지유는 엄마가 하라는대로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벌은 고아가 되는 것이다. 엄마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엄마는 지유를 외할머니집에 두고 한동안 찾으러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유는 엄마 말을 잘 듣는다. 지유에게 엄마는 신이다. 신이나 다름없다. 그 날도 엄마와 시골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엄마 차가 중간에 멈춰서고 몇년만에 보는 아빠가 차에 올라탔다. 아빠는 지유를 보고 감격해서 지유가 좋아하는 해피밀세트를 건넸지만 지유는 사이드미러로 자신을 쳐다보는 엄마의 눈을 의식하고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빠를 봐서 좋았지만 마치 이웃 어른을 대하듯 공손하게 대했고 아빠가 사온 해피밀세트도 먹지 않았다. 아빠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해피밀세트를 우걱우걱 먹었다.
 시골집에 도착한 후 엄마가 지유에게 아빠를 데리고 늪을 구경시켜주고 오라고 했기에 엄마 말에 따랐다. 집에 돌아왔을 땐 저녁식사로 엄마가 제일 잘하는 요리인 굴라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지유를 나란히 앉히고 건너편에 앉아서 사진을 찍어준 뒤 저녁을 먹자고 했다. 다음 날 지유가 눈을 떴을 때 아빠는 없었다. 분명 늪에 한 번 더 가기로 약속했는데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1층에서 발가벗은채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아빠는 가고 없다고 했다. 그 날부터 지유는 되강오리가 우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다락방에서, 화장실에서, 계속 되강오리가 울었다.
 엄마는 지유에게 2층 지유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고 다락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지유 마음속에 있는 요망한 생쥐는 다락방에 들어가보라고 속삭였다. 지유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엄마 몰래 방에서 빠져나와 다락방에 숨어들었고 그 곳에서 손가락 인형으로 구성된 가족 인형을 발견했다. 엄마, 아빠, 유나, 남동생. 유나라는 이름에서 지유는 이 인형들이 엄마가 어린 시절 가지고 돌았던 인형임을 유추해냈지만 엄마에겐 언니밖에 없다는 이상한 의문이 들었다. 지유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아빠 인형만 살짝 가지고 나왔다. 아빠 인형을 가지고 있으면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마치 아빠가 지유를 지켜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와 함께 새아빠의 타운하우스로 돌아가 노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잠들 때도 아빠 인형을 꼭 안고 잠들어야 했다. 그 날 저녁 평소 천식 때문에 좋아하는 축구를 못하던 노아는 층간소음 걱정이 없는 청연 집 안에서 축구공을 차다가 지유에게 맞히게 되고 그 일로 새아빠와 엄마가 다투게 되자 지유는 괜히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지유는 누군가 2층으로 올라가는 실루엣을 보았다. 잠시 켜진 휴대폰 불빛으로 지유는 실루엣의 주인공이 엄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다음 날 지유를 깨운 건 비명소리였다.

 13년차 기자 재인은 엄마와 함께 살며 여동생이 맡기고 가는 조카와도 거의 함께 생활하고 있었지만 여동생은 벌써 몇년째 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대학생 때부터 10년 넘게 짝사랑해온 친구 서준영과 여동생인 유나가 결혼하면서 재인이 유나를 싫어하는 거라고 말하지만 사실 재인은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동생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재인은 유나를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갑작스레 신부전증 걸리자 아버지는 엄마의 병간호를 하며 두 딸을 양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자매 중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을만큼 자란 재인을 곁에 두고 어린 유나를 할머니집으로 보냈었다. 아버지와 함께 유나를 만나러 간 주말마다 유나는 늘 집에 갈 채비를 마쳐놓고 있었지만 유나는 2년 동안 집에 돌아올 수 없었다. 집안 사정이 조금 나아진 후에야 유나는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유나를 집으로 데리러 간 날 재인은 할머니의 시골집 2층에 있는 유나의 방에 들어갔다가 유나가 가지고 노는 손가락인형 장난감을 보게 되는데 거기서 갈기갈기 찢긴 오리 인형에 '재인'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걸 발견하게 된다. 바들바들 떨고있는 재인을 발견한 유나는 재인에게 다가와 도둑년이라고 속삭인다. 자신의 것을 한 번만 더 '빼앗아'가면 오리 인형처럼 만들겠다는 동생의 광기어린 말에 재인은 아연실색한다. 지난 2년간 재인은 아버지가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유나의 생각처럼 가족들은 유나없이 호의호식하며 지낸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나는 재인이 자신의 부모와 자신이 누릴 모든 것들을 가로챈 것처럼 행동했다. 그 날부터 재인은 유나와 멀어졌고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후 러시아 유학에서 돌아온 유나가 재인이 준영이 올린 연극을 보러가는 것에 따라붙었다가 준영과 사귀는 사이가 되자 자매의 관계는 더 멀어질래야 멀어질 수 없을만큼 멀어졌다.
 그런 재인에게 준영의 동생 민영이 찾아온 건 무려 7년만에 준영이 연락을 취해온 뒤 며칠이 흘렀을 때였다. 얼마 전, 갑자기 나타난 준영은 초췌한 몰골이었고 지방 취재를 가야하는 재인은 그런 준영을 차에 태우고 취재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준영이 잠들어있자 재인은 준영을 그대로 차에 둔 채 내렸는데 취재가 끝나고 차로 돌아왔을 땐 준영은 이미 가고 없었다. 꺼뒀던 휴대폰을 켜자 급한 일이 있어 먼저 간다는 문자만 남겨져있었고 용건이 있다면 다시 연락이 오겠거니 했을 뿐이었다. 민영은 바로 그 날 이후로 준영이 행방불명됐다고 했다. 자신과 2시에 통화한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준영의 행방을 묻지만 재인도 준영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유나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민영의 요구에 재인은 기가 찰 뿐이다. 자신조차도 유나를 본지 오래됐기에. 민영은 메일을 통해 재인에게 유나가 준영에게서 어떻게 지유를 빼앗아갔으며 이혼 후 준영이 지유의 양육비 때문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런 상황에서 유나는 준영에게 지유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재인 입장에선 유나는 자신의 동생이 아니었고 민영을 도울 방법도 없었기에 그런 민영의 연락을 무시한다.

 학교 교사인 은호는 며칠째 집을 나간 채 연락두절인 아내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아내는 늘 이런 식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언제나 두 손 두 발 다 드는 건 은호 쪽이었고 이번 싸움에서도 그럴 것이다. 아내와는 러시아 여행에서 처음 만났다. 전처 윤희가 꿈을 찾겠다며 어린 노아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후 절친한 친구인 진우와 함께 러시아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우연히 세 번이나 마주친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지만 섣불리 다가가진 못했는데 세 번째 만남에서 진우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둘은 대학 동문이었고 진우는 친구를 통해 여자와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진우가 은호를 이혼남이라고 소개했을 땐 화가 날 뻔 했지만 여자가 자기 소개를 할 때 마음이 좀 나아졌다. 여자는 자신도 일주일 전에 이혼했다고 말했다. 그 날 술자리에서 진우가 뻗자 은호는 그제야 여자와 말을 틀 수 있었다. 웃음소리 하나로 배를 간지럽히는 여자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은호는 그녀를 놓칠 수 없었다. 은호는 그렇게 유나를 만났다. 그렇게 유나에게 빠져들었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유나에게도 딸이 있었고 은호에게도 아들인 노아가 있었기에 그는 그렇게 넷으로 구성된 가족을 잘 꾸려나갈 생각이었다. 결혼 전 아내도 동의했었던 일이었다. 지금은 지유도 평일엔 외가에 가있고 노아도 은호의 어머니가 봐주고 계시지만 내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 생각이었다. 천식을 앓고있는 자식을 어머니에게 언제까지고 맡겨둘 수는 없었고 어머니도 은호가 재혼한 마당에 자신이 손주를 돌보는 걸 탐탁지않게 생각하셨기에 하루 빨리 다 함께 사는 삶을 계획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자 아내는 은호와 유나의 아이를 가지길 원했다. 그리고 지유를 은호의 친자로 입양하기를 원했다. 서지유를 차지유로 바꾸길 원했다. 지유의 친부 동의는 자신이 알아서 받아오겠다고까지 했다. 아내는 전남편이 지유를 지속적으로 성추행 해서 이혼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은호는 지유를 더 조심스럽게 대했다. 지유도 어떻게 교육받은건지 아주 예의 바르고 공손했기에 불필요한 대화는 할 필요없었고 데면데면하게 주말을 보내는 사이였다.
 아내가 집을 나간지 며칠이 지나 주말이 다가오자 은호는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은 노아 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모시고 와야 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집 수리가 끝날 때까지 청연 타운하우스에 머물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집에 왔는데 유나가 없으면 어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싶진 않았다. 친정에 있을 아내에게 달려가 사죄하고 데리고 와도 될 문제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가 늘 욕설과 함께 언급했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자가 집 앞에 나타났다. 처음에 자신을 신재인이라고 소개할 때도 은호는 그 이름이 누구를 뜻하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아내의 언니 이름이었다. 생전 처음 본 처형이 갑자기 나타나 은호에게 유나의 행방을 물었을 때 은호는 당황보다 의문이 떠올랐다. 재인은 엄마가 이모를 만나러 외국에 갔으니 지유를 돌봐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지유를 집으로 보내지 말라고 유나에게 전해달라고 말한 뒤 돌아갔다. 아내가 친정에 가있었던 게 아닌건가. 처형은 유나가 사라진 그 며칠간 친정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나는 지유를 데리고 며칠동안 어디에 가있는 걸까. 혹시 그동안 가출할 때마다 전남편을 만나고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노아와 어머니를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제 어머니에게 사실을 실토해야 하나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었을 때 유나에게 메시지가 왔다. 장을 봐서 들어갈테니 노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는 말이었다. 당장 눈앞의 일부터 처리해야 했기에 은호는 아내를 추궁하는 건 후일로 미뤘다.
 다음 날 은호는 인생 최악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가 집에 와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2층 지유방에, 아내는 지유와 안방에, 자신은 노아와 2층 노아방에서 자기로 했는데 노아가 죽은 채로 은호 옆에서 발견된 것이다. 자신의 팔에 눌려 질식사한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다 큰 아이가 어른의 몸에 눌려 질식사 했다는 건 정황상 말이 되지 않기에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은호를 자식을 죽인 살인범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은호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살해누명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로 교직을 떠나야할 상황까지 왔고 그런 은호 곁에서 노아의 장례식장을 지켜준 건 친구인 진우 뿐이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넋이 빠져있는 와중에 은호는 조금씩 노아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경찰 조사에서 아내는 몇 달 전 은호에게 보낸 카톡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고 했다. 카톡 내용은 은호가 유나를 누른 채 죽은 듯이 자서 하마터면 유나가 죽을 뻔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카톡을 받은 적은 있지만 당시엔 별 생각없이 넘겼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은호는 평상시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깰만큼 예민하고 잠귀가 밝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은호는 유나의 그 카톡에 이상함을 느낀다. 카톡 내용이 거짓이라면 아내가 벌써 몇 달 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그런 카톡을 준비했다는 것인데...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것이 자신의 지나친 비약인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자신의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아내의 주장에 반대되는 증거를 내밀면 자신의 살해의혹이 더 확실시 될 거란 걸 알면서도 진실을 알기 위해 수면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은호는 깊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검사 결과에 따르면 왼쪽으로 돌아눕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그제야 유나와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나에게 등진 채로 잠에 깼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내는 자신에게 등을 보이는 게 싫다며 화를 냈었다. 그게 은호의 왼쪽으로 눕는 습관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노아의 죽음은 더 말이 되지 않았다. 그 날 밤 노아는 은호의 오른쪽에서 자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까지 꿈이라고 생각했던 한 장면에 대한 기억도 의심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잠시 밝게 터졌던 플래시와 하얀 손. 은호는 그게 이제까지 꿈인 줄 알았지만 어쩌면 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다 큰 아들이 질식사의 위험에서 버둥거리고 있을 때 자신이 깨어나지 못할만큼 깊게 잠드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유나는 은호에게 자신이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다며 어떻게든 그의 혐의를 벗겨주겠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나라를 뜨자고, 지유를 데리고 러시아로 이민을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경찰의 연락을 받았을 때 재인은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서준영 실종사건의 용의자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경찰은 준영이 재인을 만난 화요일 이후 사라졌다며 재인을 의심하는 듯 했다. 재인은 준영이 재인에게 문자를 보내고 사라졌던 시간에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대지만 경찰은 그런 것 쯤은 조작할 수 있다며 재인의 그 날 행적을 추궁했다. 애초에 성인이 사라졌을 때 경찰이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준영의 빈 차가 발견되자 실종사건으로 보고 경찰이 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영 또한 재인을 의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재인과 유나가 함께 작당모의해서 준영을 어떻게 한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경찰은 재인을 용의선상에 올리며 재인을 여동생에게 애인을 빼앗긴 비운의 여자로 둔갑시키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듯 했지만 재인은 불쾌할 따름이었다.
 민영과 경찰을 통해 들은 이야기와 제부인 은호가 물었던 유나의 행방이 일치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재인은 준영의 실종에 유나가 관여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은호는 유나가 화요일부터 집에 안들어왔다고 했고 준영이 사라진 날도 화요일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체를 운영 중인 유나는 화요일부터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시기가 일치했다. 그 와중에 유나는 재혼한 남편의 아이가 갑자기 의문사 했다며 지유를 맡아달라고 친정으로 보내온다. 막무가내인 유나의 성격을 아는지라 재인은 엄마가 없는 집에서 지유를 돌보기 시작한다. 지유는 유나와는 달랐지만 유나에게 길러진 아이답게 유나의 신도같았다. 유나의 말을 마치 법처럼 따르는 아이였고 유나를 신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지난 화요일부터 유나가 지유와 함께 사라졌기에 재인은 지유를 통해 그간 어디서 지냈는지 알아내려 했지만 지유는 유나와 무슨 약속을 한건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그런 조카에게 최대한 정을 주지 않으려 했던 재인이지만 단 둘이 생활하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지유에게 애정을 쏟고 있었다. 어느 날 지유가 아파서 입원하게 되자 재인은 지유 옆에 꼭 붙어서 간호를 했고 악몽에 시달리는 지유를 위해 아빠 인형을 가져다줬다. 유나는 어린 시절 유나의 그 손가락 인형을 본 적이 있었기에 아빠 인형이 유나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것은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유나지만 그래도 딸에게는 좀 다른가보다- 하는 생각에 큰 의문없이 재인은 지유에게 아빠 인형을 안겼지만 얼마 후 유나가 재인이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쳐들어와 지유와 간단한 지유의 짐을 챙겨갔을 때 마치 도둑이라도 든 듯 어지러진 집에서 지유의 아빠 인형이 침대 사이에 숨겨진 채 발견되자 지유가 유나 몰래 아빠 인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없어진 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지유의 여권이었다. 대체 유나는 왜 갑자기 지유의 여권과 지유를 데리고 갔을까.
 주차장에서 유나와 지유를 마주쳤을 때, 재인이 지유와 인사하겠다며 유나 몰래 자신의 명함을 지유에게 건네며 언제든 이모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었는데 똑똑한 지유가 명함은 버리고 번호를 외운 채 연락을 취해온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지유는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재인에게 아빠 인형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물었고 재인은 유나가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지유가 좋아하는 해피밀 세트를 사들고 청연으로 달려갔다. 2층 방에서 재인의 차가 오는지 계속 보고 있었는지 재인이 내리자마자 지유가 달려나와 재인의 품에 안겼다. 재인은 해피밀 세트와 아빠 인형을 건네며 엄마 몰래 먹고 뒤처리를 잘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 때 집 앞에 차가 한 대 서고 그 안에서 은호가 내리는데 얼마 전 아들을 잃었다는 은호의 몰골은 추레하기 짝이 없었다. 재인은 지유를 들여보낸 뒤 은호에게 자신이 왔던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재인은 과거 엄마를 통해 들었던 유나의 러시아 유학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고 러시아에 사는 이모에게 전화해 그 때 있었던 일에 대해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확인한다. 이모는 당시 유나가 결혼을 전제로 사귀며 동거하던 러시아인 애인이 교통사고로 죽자 충격에 빠져 급하게 귀국한 거라고 설명했다. 유나와 친하지 않았던 재인은 그 때 유나가 왜 공부를 마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뭔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민영을 통해 들었던 한국 대학교에서 있었던 자살 사건과 교통사고. 대학시절 유나와 사귀던 남자가 연못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2년 후인 4학년 때도 유나와 모스크바로 동반 유학을 가기로 했던 동거 중인 남자친구가 졸음운전으로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 이야기들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유나의 남자들 세 명이 이미 죽었고 준영은 실종됐다. 민영은 심지어 재인의 아버지의 죽음까지 언급했다. 유나가 준영과 이혼 후 잠시 러시아로 여행을 떠났던 그 시기에 아버지가 졸음운전으로 돌아가셨었다. 민영은 그 시기에 아버지가 유나를 횡령죄로 회사에서 잘랐었다며, 그래서 유나가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죽인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었다.
 재인은 그건 비약이라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어린 딸을 자신 때문에 떼어놨었다는 죄책감에 유나라면 다 이해해주려하는 엄마는 재인이 유나에 대해 묻자 펄쩍 뛰면서 왜 동생을 못잡아 먹으려 안달이냐 했지만 재인은 충분한 대답을 얻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유나가 러시아로 떠나기 전 아버지를 만나고 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아버지의 사인도 졸음운전이었다.


 한편 은호도 조금씩 유나의 과거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학교를 떠나던 날, 주차장에 따라나온 진우는 은호에게 묻고싶은 게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했었다. 은호는 진우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그를 찾아가 유나의 대학시절에 대해 물었고 진우는 당시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진우는 유나와 동반 유학을 가려했던 동거남, 졸음운전으로 세상을 떠난 소문의 주인공 강지운의 친구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진우는 유나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진우에게 지운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여자친구가 무섭다고 짐을 가지러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렇게 해서 진우는 지운과 함께 유나를 처음 만났었다. 그 날 그들은 유나가 대접한 차를 마셨고 차를 운전해 귀가하던 지운은 졸음운전으로 죽었다. 그 일로 무성한 소문이 돌았었지만 진우가 말을 아꼈던 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날 진우 또한 세상 모르고 잠들었기에 정말 지운의 죽음이 유나 때문인가 하는 의심을 안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유나의 계략이라는 증거가 없기에, 모든 게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우연히 만난 유나에게 다가가 말을 건 것도 그 날의 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여자가 진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여자인가 싶어서. 하지만 그 날부터 은호가 유나에게 빠져들었고 그 때 자신이 겪은 일을 해줘봤자 미친 사람 취급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은 거라고, 하지만 노아 일을 겪으니 미리 말했어야 했던 것 같다고 진우는 설명했다.
 은호는 유나가 잠들어있을 때 유나의 휴대폰을 몰래 가져가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대폰에서 이상한 사진들을 몇 장 발견한다. 찻잔을 앞에 둔 남자 둘. 둘 중 하나는 아는 얼굴, 진우였다. 그렇다면 옆에 찍힌 남자는 강지운인 것인가. 다음 사진에는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찍혀있었다. 또 한 장에는 찻잔을 앞에 둔 예전에 돌아가셨다는 장인어른. 그리고 또 한 장에는 지유와 놀랍게도 닮은 한 남자가 지유와 볼을 맞대고 웃고 있었다. 장소는 처음보는 곳이었지만 앞에 차려진 음식과 배경으로 미루어보면 누군가의 집 같았다. 잠에서 깬 유나가 은호를 찾으러 서재로 오자 은호는 급하게 유나의 휴대폰을 숨겼고 침대로 돌아가 원래 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다 죽거나 실종된 사람들이었다. 유나를 버렸거나 유나를 배신했던 사람들. 자신도 유나를 떠나면 그 남자들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되리라는 것을 은호는 느끼고 있었다.
 한낮에 재인이 찾아와 지유에게 해피밀 세트를 주고갔던 날 은호는 카페에서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온 민영을 만났고 민영을 통해 유나의 과거를 더 세세하게 듣게 되었다. 민영은 유나와 재인을 한통속으로 보고있었지만 은호는 아니었다. 민영이 이 상황에 너무 과몰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기 보기엔 재인은 아니었다. 이 모든 건 유나가 벌인 일이고 재인은 아마도 은호와 같은 입장이리라. 그 날 저녁 은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2층에서 유나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나는 지유를 혼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유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은호는 모녀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유의 비명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2층 지유방으로 향한다. 유나는 지유가 거짓말을 했다며 추궁하고 있었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지유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은호가 몸을 날려 끼어들어 말리자 유나는 내 딸에게 손대지 말라며 독기어린 목소리로 은호를 밀쳤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유나는 1층으로 내려갔고 은호도 따라 내려갔다. 서재로 들어간 은호는 유나가 따라들어와 화를 낼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유나는 한시간 뒤 취한 채 술을 들고 들어와 축배를 들자고 했다. 은호가 처음으로 지유 아빠처럼 행동한 날이라고, 이런 날은 축하해야 한다고. 그런 유나에게 은호는 이혼을 요구한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덫에 걸려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은호는 그렇게 절박하게 노아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야했다.


 재인은 진실을 알아야했고 진실은 자신이 아는 장소에 있을 것 같았다. 지유가 유나 몰래 아빠인형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은 한 곳 뿐이었기에. 재인은 어린 시절 종종 갔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유나에게 물려준 시골집으로 차를 몰았다. 시골집과 반달늪은 유나의 소유였고 재인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한 번도 오지 않은 장소였다. 재인은 시골집에서 떨어진 폐가에 차를 주차해놓고 시골집까지 걸어갔다. 시골집은 황폐해보였고 창문들은 죄다 커텐으로 가려져있었으며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재인은 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갔고 집 안에 들어가는 것까지 성공했다. 만약 유나가 준영에게 무슨 짓을 했다면 여기서 했을 터였기에 증거를 찾아야했다. 1층 부엌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사람도 들어갈 것처럼 엄청나게 큰 냄비와 고기를 다루는 칼들, 그리고 믹서기와 민서기였다. 할머니의 물건들은 아니었다. 재인은 그것들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됐다. 다른 증거들을 찾기 위해 집 구석구석을 뒤지던 중, 집안에 누군가 들어왔다. 유나였다.
 유나는 재인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고 뭘 훔치려고 도둑처럼 숨어들었냐고 빈정거렸고 그런 유나에게 재인은 흉기를 들이밀며 2층으로 올라가라고 말한다. 유나가 순순히 재인의 말을 따르자 재인은 순간적으로 마음을 놓는데 그 순간 유나가 뒤을 돌며 손에 들고 있던 가방으로 재인을 후려친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진 재인에게 믿기지 않는 힘으로 폭력을 휘두른 후 2층으로 데려가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버린다.
 유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소유를 뺏기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한 번 자신의 소유였던 건 끝까지 자신의 것이었다. 그런 유나를 자극하기 위해 재인은 준영과 이제까지 몰래 만나왔으며 준영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지유도 데리고 와서 자신의 딸로 키울거라는 말을 내뱉는다. 예상대로 유나는 흥분했고 금방이라도 재인을 죽여버릴 것처럼 굴었지만 이내 그렇게 사랑하는 준영과 반달늪에서 합동 결혼식을 열어주겠다며 재인을 반달늪에서 죽여버리겠다는 예고를 하고 사라진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지유는 짐을 싸라는 유나의 말에 어제 못다한 벌을 이어서 주는 것이라며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은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지유는 어리둥절하지만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이 조금씩 낯익은 동네로 바뀌자 자신들이 시골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옆자리에 앉은 새아빠 은호는 짐짓 표정이 굳어있었지만 엄마가 가족여행이라고 하니 지유도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들이 집에 들어서자 갑자기 위층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온다. 의아해하는 은호에게 유나는 집이 낡아 바람에 약하다고 둘러대고 집안을 둘러보던 은호는 지유와 지유 아빠가 함께 사진을 찍은 곳이 바로 이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쩌면 오늘 여기서 자신이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호가 출발하기 전에 준영의 동생인 민영에게 미리 연락을 취해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안한 것은 이 곳으로 오는 도중에 유나의 요구로 휴대폰을 유나에게 건넸고 폰이 꺼진 상태라는 것이었다.
 유나는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지유에게 새아빠를 데리고 반달늪 구경을 다녀오라고 한다. 지유와 은호가 반달늪에 갔다가 돌아왔을 땐 식탁에 저녁식사가 차려져있었다. 유나가 늘 만들던 굴라시와 빵과 잼. 은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굴라시나 잔에 수면제가 들어있을 거라 느끼며 빵과 땅콩잼만으로 식사를 마친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유나가 지유를 재우겠다며 2층으로 사라졌을 때 은호는 조금씩 몸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고 유나와 지유가 빵과 잼에 손도 안댔다는 걸 기억해내면서 본능적으로 자신이 먹은 것을 억지로 토해낸다. 그리고 점점 희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유나의 가방으로 기어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켠다.
 그 사이 유나는 지유를 2층 지유방으로 데리고 가 지유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니, 당부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이것이 엄마가 지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누가 찾아와도 절대 방에서 나오면 안된다고 명령한다. 지유는 자신의 신이자 엄마인 유나에게 버림받을 순 없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유나는 흡족해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쓰러진 은호를 발견한다.
 조금 뒤, 유나는 은호를 수레에 싣고 반달늪으로 향한다. 유나는 혼미해진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하지만 몸은 전혀 가눌 수 없는 은호에게 혼잣말 하듯이 말을 건넨다. 자신은 계속 은호에게 기회를 줬고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그 모든 기회를 놓치고 끝까지 자신을 배신한 건 당신이라고. 휴대폰을 몰래 뒤지고 자신의 뒤를 몰래 캐고 다니고 거기다 이혼까지 요구한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은호는 자신이 곧 늪에 던져질 것이며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예견한다.
 그 사이 지유는 엄마가 비옷을 입고 누군가를 수레에 실은 채 어둠 속에서 반달늪으로 걸어가는 불빛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어딘가에서 되강오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유는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되강오리 소리는 가까이서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엄마가 방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소리의 근원지는 옆 방인 다락방이었다. 그 안에 갇혀있던 재인은 유나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 지유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벽을 통해 모녀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지라 지유가 절대 방에서 못나올 거라는 걸 느꼈지만 재인은 포기하지 않고 지유가 꾼다는 되강오리 악몽을 떠올리며 되강오리 울음소리를 내서 지유를 유인한다. 똑똑한 지유는 결국 이 모든 게 현실임을 인지하고 질문을 해 갇혀있는 사람이 이모인 재인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아픈 자신의 옆에서 병실을 지키던 이모, 해피밀을 사다주며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던 이모, 자신을 아가라고 부르며 재워주던 이모. 지유는 다락방에 있는 게 재인이라는 걸 알아채자 엄마의 명령과도 같던 경고를 무시하고 방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다락방으로 다가간다. 유나의 폭행으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 낯설었지만 지유는 이모를 알아보았고 지유의 도움으로 재인은 묶인 몸을 풀어낸다. 재인은 지유에게 엄마가 어디로 갔느냐고 묻고 망설이는 지유에게 아빠가 관련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때 지유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차오르며 자신이 꾸던 악몽이 역시 꿈이 아니었던 거냐고 묻는다. 의아해하며 되강오리 꿈 얘기하는 거냐고 되묻는 재인의 물음에 울먹이던 지유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의외의 말이었다. 준영이 시골집에 왔던 날 밤, 사실 지유는 다 보았던 것이다. 피가 고인 욕조와 사람의 두 다리를. 아빠의 죽음을, 엄마의 살인을 다 보았지만 충격에 모든 걸 외면하고 그저 악몽으로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지유에게 모든 걸 들킨 유나는 그게 모두 꿈이라는 거짓말로 아이를 세뇌시켰고 엄청난 진실에서 도망쳐야 했던 아이는 그 말을 억지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지유가 아빠인형에 집착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아빠인형을 가지고 있으면 준영이 살아있다고 믿을 수 있었으니까.
 이번에 자신을 떠나려는 은호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처럼, 유나는 자신을 압박해오던 준영을 견딜 수 없었다. 아버지 회사에서 돈을 횡령해가면서까지 집을 마련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던 자신에게 감히 이혼을 요구했던 준영을 유나는 지유를 이용해 딸 성추행범으로 만들고 지유에 대한 양육권을 빼앗은 뒤 이혼했었다. 그래도 법적으로 면접교섭권이 있었기에 준영에게 주기적으로 지유를 보여줘야했지만 유나는 몇 년동안 준영을 피해왔고 금쪽같은 딸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자 준영은 법원 절차를 통해 유나를 압박해왔었다. 자신을 떠난 것도 모자라 압박까지 해오자 유나는 준영을 가만히 둘 수 없었고 지유라는 미끼로 준영을 유인해 시골집에서 준영을 죽여버렸던 것이다. 이 계획은 상당히 치밀했는데, 유나는 준영의 시신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돼지로 오이 먹이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연습까지 해왔었다.
 예측만 했던 일이 진실임을 확인한 재인은 지유에게 어디도 가지 말고 방 안에 안전하게 있으라고 당부한 뒤 밖으로 나선다. 잠시 자신의 차를 떠올리고 이 곳에서 벗어나 경찰을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지만 유나와 은호가 동시에 사라진 지금,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은호의 목숨이 위험했기에 차를 운전해 바로 반달늪으로 향한다.
 예상했던대로 반달늪 끝에는 유나와 은호가 있었다. 유나는 재인의 차를 발견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은호를 늪으로 밀어버린다. 차에서 내린 재인은 은호를 구하기 위해 습지에 뛰어들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늪에서 사지가 마비된 은호를 찾으려 한다. 어둠 속에서, 다행히 정신을 조금씩 차리고 있던 은호는 숨을 참고 있었고 재인에 의해 구해진다. 그 때 멀리서 경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재인은 경찰이 어떻게 알고 출동했는지 의아해하지만 유나는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상이라도 한 듯이 그대로 골짜기 쪽으로 달아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알고보니 경찰은 최근 유나를 수사대상에 넣어 수사하고 있었고 이미 유나도 몇 차례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재인이 시골집에 왔던 날 유나도 시골집에 나타난 건 준영을 죽일 때 사용한 흉기들이 증거로 발견될까봐 미리 처리하러 온 것이었다.
 유나가 과거 저지른 죄는 증거가 없어 적용되지 않았지만 준영 살인죄와 은호 살인미수죄는 적용되었다. 하지만 피고인의 사망으로 공소 기각되어 사건은 종료된다. 남겨진 유족만이 그 괴로움을 떠안게 되었다. 재인은 조카 지유를 데리고 러시아로 떠났고 은호는 모든 걸 정리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노아의 죽음 후 오랜만에 전처 윤희에게 연락해 노아의 죽음을 알렸을 때 윤희의 답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들은 절대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윤희는 자식을 버린 죄, 은호는 자식을 죽인 죄. 은호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자신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노아가 살아있던 시절의 자신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정유정 작품답게 음산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깔려있다. 음산한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지만 아, 이거 정유정 작품이지- 싶은 특유의 분위기는 내 생각엔 중간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 때부터 몰입이 확 되면서 독자는 이야기 속으로 급물살을 타고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인 엄마 유나 밑에서 그것이 일종의 학대인 줄도 모르고 유나가 하라는대로만 살아가는 어린 지유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유나의 말도 안되는 행동에도 참고 살아온 재인, 거듭된 우연으로 알게 된 유나에게 푹 빠져 불같은 사랑을 하고 결혼한 은호.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교차 진행되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자극하고 뒷부분을 궁금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대로 악인의 시점이 아닌 피해자의 시점으로만 서술함으로 그들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동시에 악인은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하는 호기심도 자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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