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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
읽은 기간: 18.10.12~14 / 3일
다른 이유 없이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빌렸다. 사실 에쿠니 가오리는 학창시절 냉정과 열정 사이로 만나봤던 작가다. 도쿄타워도,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도, 다 중고등학교 때 읽었는데 딱히 그 시절 나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책을 고를 때 약간 거르게 됐달까. 그러던 중 1박 2일 부산 여행에 들고 갈 만큼 적당히 얇으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깔끔한 빨간 커버에 적힌 낙하하는 저녁 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가 빌리게 되었다.
첫 장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별하는 이야기라는 소개. 15개월간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그린. 그래서 사실 좀 기대하긴 했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뭔가 마음에 들어서 조금 더 기대가 컸던 걸지도. 그렇다고 크게 실망한 건 아니지만 뭐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었던 걸로.
요새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책을 읽을 때 꼭 무언가를 느껴야 하나? 무언가에 감동 받아야 하나? 무슨 교훈을 얻어야 하나? 뭔가를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 아직 딱 결론을 내리진 못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뭘 느끼거나 배운다면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특히 나는 뭘 배우고자 책을 읽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을 덮고 나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처음엔 정말 이별 이야기인 줄 알았다.
리카가 8년간 사귀어 온, 동거하던 남자친구인 다케오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15개월의 시간을 보여줄 거라 믿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 리카의 15개월을 보여줬으니까. 다만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리카가 아니라 하나코 였을 뿐.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리카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실상 하나코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화자는 리카여서 하나코의 속사정이나 그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리카가 느끼는 하나코. 리카가 보는 하나코에 대해서만 그려지기에 끝까지 우리들은 하나코의 사연을 알 수가 없다. 책의 끝장을 덮는 순간까지.
리카는 오래 만난 동거중이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연인이긴 했지만 오래된 만큼, 20대를 함께 보낸 만큼 깊은 친구관계였던 두 사람은 헤어지고 다케오가 이사를 나간 후에도 며칠에 한 번씩 통화를 하며 친구 같은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리카는 다케오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것과 그 여자를 알게 된 게 불과 자신에게 이별을 말하기 4일 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심지어 둘 사이가 쌍방이 아니라 다케오의 짝사랑이라는 것도.
내가 아직도 이렇게 사랑하는 남자가 나와의 관계를 단 며칠만에 정리할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라니. 그리고 어느 날 다케오의 이사한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여자를 보게 된다. 하나코. 바로 그 집을 나와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하나코를 또 다른 날 하나코가 리카의 집에 찾아오면서 재회하게 되는데 어이없게도 하나코는 리카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지낼 곳이 없다며. 리카도 집세를 혼자 다 부담하는 건 무리이지 않냐며. 그렇게 말도 안되는 동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미 내 짐작을 벗어나는 스토리로 전개되어서 그냥 그 때부터는 흘러가는 대로 맡겼다. 이건 대체 무슨 내용이냐...하면서.
다케오는 외국에서 돌아오는 친구를 마중 나갔다가 하나코를 알게 된다. 친구와 잠시 사귀었던 여자로. 친구는 하나코 때문에 이혼까지 할 정도고 다케오 역시 8년 사귄 리카와 헤어질 정도로 하나코에게 빠진다. 예쁜 얼굴에 작은 몸.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자 하나코. 일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서 집세는 따박따박 들어오고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며칠씩 사라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나코. 같이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용한 하나코. 그런 하나코에게 리카는 질투를 느끼지만 동시에 우정 비스무레한 감정도 자라난다.
리카가 아는 모든 남자들은 하나코를 좋아한다. 리카의 10살짜리 학원 제자 나오토까지도. 나오토의 아버지도, 다케오의 친구도, 다케오도, 그리고 무슨 관계인지 확실하게 알 순 없지만 하나코의 집세를 책임지는 그 사십대 남자도. 그리고 사실 리카도 조금씩 하나코를 좋아하게 된다...고 나는 느꼈다. 뭐 하나코 역시 그런 거 같았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던 하나코가 리카에게 자신이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라며 유학 중 잠시 귀국한 남동생도 보여주기도 하고 다케오 등을 피해서 자신의 공간에 함께 가기도 하니까. 흠... 사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 여자였다 하나코는.
그래서 하나코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걸까. 일단 의외는 아니었다. 살짝 뭐야 이 전개는 싶긴 했지만 그럴 법도 했다...싶었다. 리카가 하나코를 기다렸을 때 하나코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이미 예감이 된 결과 같았달까.
자연스럽게 리카의 공간에 들어온 하나코. 작고 예쁜 하나코. 모든 남자의 관심을 끌던 하나코. 아무 걱정 없어 보이던 하나코. 자신에게 알아서 무언가를 해준다고 해서 기대를 하는 건 질색이라던 하나코. 비행기 티켓을 훔쳐 홍콩으로 여행간 하나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하나코. 수수께끼 같은 하나코. 정말 하나코는 자신이 받는 이유없는 사랑에게서 도망가기 위해 자신 마저 버리고 만 걸까.
흠...모르겠다. 이 책은 도무지.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달까.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남자가 한없이 빠져든 여자와 동거를 시작한다는 것이, 그 셋의 우정과 사랑 관계. 이해는 안되지만 이해하려 하면 안되는 거겠지. 그래도 읽는 동안 크게 지루하지 않고 시간은 잘 갔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간단한 문장 때문인지 술술 읽혔다. 영화로도 나왔기에 영화를 보면 좀 다르려나 싶었는데 하나코 사진을 보는 순간 접었다. 생각했던 이미지가 전혀 없어서. 오히려 망쳐놨다는 느낌? 캐스팅이 아주... 혹시나 해서 후기 봤는데 진짜 소설 느낌 전혀 없대서 안 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