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
읽은 기간: 21.07.13~21 / 9일
제목에 이끌려 골랐는데 신경숙님 소설이었다. 심지어 올해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 안 읽을 이유가 없어서 바로 시작했고 일주일 넘는 시간동안 읽었는데 그 시간들이 뭐랄까... 거의 매순간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다. 주인공이 되는 아버지의 세대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딸의 세대도, 딸을 통해 전해지는 형제들의 세대도 다 내가 겪은 시대가 아니었지만 어째서 공감이 됐는지 모르겠다. 난 그 시대에 살지도 않았고 심지어 한국사에는 통 문외한이라 잘 알지도 못하는데. 그냥 가족이라서, 가족은 그런거라서- 하는 공감대가 아니었나 싶다. 상황과 환경은 달라도 나도 가족이 있고 사랑을 받으며 컸고 그 과정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자랐으니까.
심지어 작가의 말까지 완벽했다.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냐는 질문을 참 많이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늘 그럴 생각은 없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었다는데 결국 이렇게 '아버지'를 주제로 하는 책이 세상에 나와버렸고 한층 나이가 들어버린 내가 또 다른 마음가짐으로 읽게 되었네. 엄마를 부탁해가 아마 내가 10대 때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시절 살던 집의 내 방 침대에서 밤을 꼬박 새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주말이었는지 방학이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그렇게 한 번에 읽었었다. 그 날 그 새벽의 공기와 그 방의 벽지, 침대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대체 이게 뭐지... 라는 기분으로 계속 책장을 넘겼던 것도 기억난다. 그 때의 열정까진 없는건지 이번엔 자주 끊어 읽었지만 그래도 읽는 그 순간순간만큼은 계속 집중이 됐다. 그게 신경숙님 소설이 가진 흡입력이 아닐까 싶다.
위로 오빠 셋, 아래로 여동생, 남동생이 하나씩 있는 육남매의 딱 중간인 넷째로 태어난 헌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시절 흔하지 않던 가족사진을 헌이 태어나자 찍으러 갔을 정도니까. 아들만 셋 있는 집에 처음으로 태어난 딸이었고 원래 거기까지만 낳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헌을 특히 예뻐했다. 물론 이후 아래로 두 동생이 더 태어났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한평생 농부로 살며 농사도 지으면서도 또 한동안은 집을 떠나 어딘가에서 돈을 벌어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헌은 아버지가 농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아버지들처럼 까맣게 그을리지도 않았고 다부지지도 않았으며 어딘가 농부의 느낌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을에서 누구보다 먼저 신농기구를 받아들였고 가장 먼저 조립했으며 전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농사와 그 외 많은 일들을 병행하며 육남매를 키워 대학에 보냈고 그렇게 장성한 자식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터전을 잡아 가정을 꾸리고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이 이제 나이가 들어 노쇠했기에 주말이면 자식들은 당번을 정해 매주 내려가 부모의 안부를 살폈는데 헌은 그 중에서도 예외였다. 형제들이 다 들어있는 단체메신저 방에서도 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모님께 따로 연락도 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헌에게 뭐라고 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헌은 몇 해 전 사고로 눈 앞에서 딸을 잃었고 그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큰 상실 속에 있을 딸에게 부모님도 차마 섣불리 전화를 걸 수 없었고 형제들도 그런 헌을 이해했다. 헌은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멀리 떠나있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며 몇년동안 부모님과의 교류를 끊고 있었다. 자신이 없었다. 자식을 잃은 모습을 부모님 앞에 보일 자신이.
그러던 중 엄마가 몸이 안좋아 서울 큰오빠 집에 머물며 대학병원에 다니게 되자 아버지가 시골집에 혼자 남게 되었고 여동생과의 통화에서 엄마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헌은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고향집으로 가 아버지 옆에 있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말 당장 짐을 싸서 아버지에게로 간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는 사뭇 더 늙어있었고 헌은 그 날부터 아버지 곁에서 잠이 들며 이 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연한 식재료로 음식을 하며 아버지를 보필하기 시작한다. 헌이 아버지에게서 이상한 점을 느낀 건 바로 그날부터였다.
아버지는 밤중에 자주 사라져서 알 수 없는 곳에 숨어있었으며 마치 치매노인처럼 이상한 소리를 했고 자신이 왜 그런지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곤 했다. 헌은 아버지가 외출한 어느 날 홀로 집을 지키다가 택배를 받게 되는데 택배기사는 아버지가 직접 받으셔야 한다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고 떠난다. 문득 들어간 창고에 뜯지도 않은 채 쌓여있는 홈쇼핑 채널을 통해 구매된 듯한 온갖 택배 상자들을 목도한 헌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래 전 큰오빠가 리디아에 장기출장을 떠나있을 때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외출했다 돌아온 아버지가 황급히 들어와 헌이 읽던 편지들 사이에서 한뭉치의 다른 편지들을 가지고 나가자 또 다른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헌은 여동생부터 시작해 형제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엄마에게 연락을 해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억 속 아버지에 대한 회상부터 가족들의 기억 속 아버지, 엄마가 평생 봐온 아버지의 인생까지. 몇 해 전 돌아가신 고모를 통해 들어온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거기서 들었던 이름을 추적해 찾아간 박무릉이라는 사람까지 만나가며 헌은 아버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늘 자신에게 그저 아버지이기만 했던 아버지가 한 남자였고 한 사람이었고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상 굴곡지지 않은 인생이 어디있겠냐마는 아버지의 인생은 숱한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있었고 그럼에도 결국 아버지는 여섯남매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들을 키워냈다. 헌은 아버지가 왜 거실 벽에 자기 남매들의 대학 졸업 사진 액자를 전시하듯 걸어두었는지 이해하게 되고, 엄밀히 따지자면 4년제가 아니기에 학사가 아니라며 뻐팅기며 졸업사진을 넘기지 않는 자신의 자리를 건너뛰고 동생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는 벽을 보며 막내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실은 이미 옛날에 찍어두었지만 가지고 오지 않았던 자신의 졸업사진을 찾아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한다.
명의는 아니었지만 마을의 한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처음부터 장남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위로 셋이나 있던 형들이 전염병으로 모두 일찍 죽자 손 귀한 집안의 장남이 되어 혹여라도 또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을까 하는 염려에 학교에도 보내지지 못하고 집에서 교육을 받으며 농사일을 배우며 자랐다. 아버지가 14살이 되던 해 또 한차례 돌던 전염병으로 부모님이 이틀 간격으로 돌아가시자 그렇게 아버지는 느닷없이 한 집안의 장손이자 가장이 된다. 다행히도 시집간 누나가 떠나지 않고 고향에 남아주었지만 아버지는 장손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고 열네살 그 어린 나이에 하고싶은 일도, 원하는 일도 할 수 없고 오직 집안을 일으켜야 할, 해야 할 일만 남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전쟁이 발발하자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장손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징병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더이상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땐 집안 어른들이 상의해 어린 아버지를 속여 아버지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잘라 군에 끌려가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손가락 하나를 잃은 채 아버지는 가족들의 곁에, 마을에 남아 살아내기 위해 살아간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온갖 돈 되는 일들을 하고 단 한마리의 집안의 소를 지키기 위해 소를 끌고 정처없이 돌아다니기도 하며 말수는 적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든 동업자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들이 자주 빨치산에게 끌려가는 일이 발생하자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시켜주고 아버지는 딱 한 번 아내될 사람의 얼굴을 담장 뒤에 숨어 몰래 본 뒤 결혼을 한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 사이에서 헌과 형제들이 태어난 것이다.
헌의 아버지는 살면서 '박무릉'이라는 사람에 대해 유독 집착하곤 했다. 어디서 그 이름을 들은 적 있다고 하면 그가 살아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곤 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어떤 관계인지는 헌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고 과거 아버지가 젊었을 시절에 박무릉과 함께 빨치산에게 붙잡혔었고 살기 위해 그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과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 날 날이 밝자 헌의 아버지는 박무릉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구렁텅이를 찾았지만 결국 그를 찾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던 것이다. 박무릉은 큰아들을 비슷한 시기에 잃은 그의 아버지에 의해 어깨에 이름을 새겼었고 그 어깨의 이름 덕분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구조되어 살아남았었다. 하지만 시체더미 속에서 밤새 있었기에 다리가 썩어버렸고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른 뒤 박무릉 또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누군가 자신의 생사를 애타게 알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고 그게 헌의 아버지라는 걸 알았지만 헌의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진 않았기에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고 했다. 그렇게 몇십년 뒤, 헌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박무릉 앞에 나타난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그에게 이번에는 아들의 생명을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대학생이던 아들이 수배되는 상황이 되자 서울에 있는 아들의 학교로 곧장 달려가 아들을 잡아온 아버지는 고민도 하지 않고 몇십년만에 무릉에게 가 아들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 겨울, 매년 겨울마다 집앞에 놓여있던 출처를 알 수 없던 내복이 배달되지 않고 헌의 아버지가 아들과 박무릉의 내복을 가지고 나타나자 그제야 박무릉은 알게 된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배달되던 수신인을 알 수 없던 물품들이 다 헌의 아버지가 보내준 물건들이라는 걸.
가정이 생긴 후에도 아버지의 일명 '살아내기'는 진득하게 이어졌다. 자신이 다니지 못했던 학교에 대한 결핍 때문인지 어려운 형편에서도 그 많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대학까지 마치게 했으며 자식들의 대학 졸업사진을 마치 훈장처럼 벽에 걸어놓기도 한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였지만 오랜만에 고향집을 방문한 헌의 기억 속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버지는 공연 연습으로 늦은 귀가를 하는 자신을 늘 자전거로 데리러 오던 모습이며 어느 날은 자전거가 고장나 땀을 흘리며 득달같이 달려오는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생각해보면 한 번만 배워두면 몇 년을 타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몸이 기억한다며 자전거를 가르쳐준 사람 또한 아버지였다. 헌은 몇 년만에 찾은 고향집에서 그런 추억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낸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헌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아버지가 동네 구멍가게를 하던 시절 준비물을 사야한다며 용돈을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무엇을 사야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은 적이 없었다. 헌이 그냥 군것질이 하고싶어서 있지도 않는 준비물 이름을 대며 말해도 아버지는 군말없이 딸이 요구하는 금액만큼 돈통에서 돈을 꺼내주곤 했다. 헌은 자라고 나서야 친구와의 대화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일부러 속아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나갔다. 가출을 했다는 게 아니라 돈을 벌러 나갔다. 헌의 입장에서 보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 몰랐지만 기간도 지역도 늘 달라지는 것 같았다. 헌은 30년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큰오빠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그 중 딱 한 번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서울을 선택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때는 아버지가 가장 긴 시간동안 집을 비운 시기였는데 어중간한 곳에 가봤자 큰 돈을 벌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난생처음 서울 땅을 밟았고 편지 속에서 아버지는 처음엔 매우 실망했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노숙자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더 더러웠기 때문이다. 시장통에서 비슷한 동향 사람을 만나 일자리를 구한 아버지는 맛집으로 소문난 갈치조림집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가게 주인은 완벽한 동향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살갑게 대해줬고 아버지는 늘 그렇듯 그곳에서 성실하게 일했다.
가게 주인에게는 대학생 딸이 하나 있었는데, 후에 떠올려보면 그 날은 4.19 혁명의 날이었다. 많은 학생들과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그 날, 가게 주인의 딸도 시위에 가담했었고 가게 주인은 아버지에게 부탁해 함께 딸을 찾으러 가자고 해 거리로 나갔다. 북새통 같은 거리에서 아버지는 가게 주인과 떨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몸을 피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한 골목길에서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가게 주인의 딸을 발견한다. 아버지는 곧장 골목길로 뛰어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아내의 이름인 다래라고 부르며 남자들에게 이 아이는 내 여동생이라고 하고 팔목을 잡고 끌고 나왔다고 편지에 설명한다. 이후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셋째의 얼굴이 눈에 밟혀서, 이대로 여기서 죽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허겁지겁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때가 어디서 얼마나 있든 언제나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가지고 돌아오던 아버지 손에 가족들을 위한 물건이 아무것도 안 들려있던 유일한 귀가였다.
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첫사랑이 있었다. 어찌보면 엄마는 얼굴 한 번 보고 결혼했기 때문에 사랑이라기 보단 인생의 동반자였다면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서울에서 만난,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목숨을 구해주게 됐던 식당 주인의 딸이 아버지에게는 첫사랑이었다. 서울생활동안 여자는 아버지를 데리고 이곳저곳 많은 곳을 구경시켜주었지만 대학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아버지를 마주치면 외면하기도 했다. 학교의 문턱도 못 밟아본 아버지로서는 대학생인 그녀가 얼마나 빛나보였을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인 그 딸 때문에 집안이 망하자 식당 주인은 식당은 접고 딸을 보호하기 위해 서둘러 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여자는 헌의 집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는 또 여느 때처럼 집을 떠났다. 헌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때를 헌의 오빠는 기억하고 있었다. 헌의 엄마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을 벌러 집을 떠날 땐 늘 그동안 쓸만큼의 얼마간의 돈을 넣어두고 떠나곤 했는데 그 때는 유독 많은 양의 돈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 때 엄마는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남편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고모를 불러 이 사실을 말했고 고모는 학교에서 돌아온 큰오빠의 손을 붙들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억척스럽게 어디론가 향했다. 고모는 큰오빠를 끌고 어느 작은 단칸방을 찾아갔고 문을 열고 나온 고운 여자에게 성을 낸 뒤 곧바로 나온 골목길에서 아버지를 마주쳤다. 아버지는 여자와 인사라도 하고 싶어했지만 큰오빠는 다시는 아버지를 못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버지가 하는 말은 뭐든 다 듣겠다며 애원했고 그 말에 아버지는 여자와 마지막 작별인사도 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렸다고 회상했다. 헌이 큰오빠와 아버지가 나눈 편지들을 읽고 있을 때 아버지가 황급히 가지고 가 그 날 밤 바로 태워버린 편지들은 바로 그 여자와 주고받았던 편지들이었다.
헌이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 가장 충격받은 사실은 아버지가 이미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치매를 확인받고자 병원을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헌은 자꾸 밤 사이 사라져 이상한 곳에서 발견되며 과거 어느 시점으로 회귀한 듯 도망을 쳐야한다느니 숨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언제부터 아버지가 이런 증상을 보인거냐고 물었고 이미 몇십년동안 이어져온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빨치산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 트라우마로 뇌가 잠들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었다. 이미 오래 전 진단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의 혼사에 혹여 누가 될까 누구에게도 절대 말하지 말라며 아내의 입단속을 시켰고 그런 상태로 그 오랜 시간이 흘러온 것이었다.
헌이 인터뷰하듯 요구한 형제들과 엄마의 기억 속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서 가족들은 다들 아버지에게 같으면서도 다른 감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큰오빠에게 늘 다른 자식들과는 어떻게 보면 차별하듯 이름을 부르고 꼭 가장 좋은 음식을 주고 새 물건을 챙겨주게 했는데 큰오빠는 큰오빠대로 장남이라는 부담감과 특별대우에 대한 감사함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해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임에도 국립이라는 이유로 진로를 정한 둘째오빠도 시험에 떨어졌을 때 감행했던 가출 경험에 대해 털어놓으며 그 때 아버지가 어떻게 자신을 찾으러 왔고 아버지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설명해줬다. 집안의 어려운 환경을 여실히 느끼고 자란 윗 형제들과는 달리 막내는 집안이 어렵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자랐다고 했다. 때가 되면 언제나 새 내복을 사오던 아버지의 모습과 굶지 않고 지낸 어린 시절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집안 사정이 조금씩 나아졌기 때문인지 같은 집안,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형제들의 기억과 느낌은 이렇게 제각각이었다. 헌이 화자인만큼 헌의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나왔는데 아버지는 모두에게 진중하고 과묵했으며 말수없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를 기억하는 가족들의 감상은 조금씩 달랐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인생을 살지 않았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끼고 있는지 조금씩 주변 정리를 시작한다. 주말에 막내가 오자 집안 곳곳을 손보고 쌓아두었던 뜯지도 않은 택배들을 뜯어 주변에 나누어주고 헌에게 가족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받아적게 한다. 편지 속에는 받는 사람에게 하고싶은 짧은 말고 함께 어떤 물건을 남길 것인지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헌에게 그 부탁을 마지막으로 한 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생활 중인 큰아들을 불러 넷째동생을 다시 동생의 생활로 돌아가게 하라고 말한다.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부모님과 함께 갔던 강동구의 한 찜질방에서 엎드려서 읽은 트래블이라는 소설에서 부모가 사고로 일찍 죽어버린 큰아들을 떠올리며 하는 어떤 대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드라마나 영화는 당연했고 소설에서도 크게 울 일은 없었는데 이 책에서 한 부분이 또 마음을 울렸다. 아버지가 이제 조금 커버린 아들과 목욕탕에 가게 된 장면이었는데 자신의 등을 밀어주는 아들의 손힘이 쎄서 이제 매사 조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너는 내 마음을 다잡게 하는 거울이었다고. 난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지만 자식이라는 게 그런걸까 싶다. 나를 비추고 나를 일으키고 나를 다잡게 해주는 존재인가. 나 역시 우리 부모님에게 그런 존재였고 지금도 그런 존재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구나를 실감하며 책을 읽었다. 특히 한국소설을 읽을 때 더 사무치게 느끼는 것 같다. 이건 무슨 단어지? 이건 또 무슨 뜻이야? 문맥으로 추론 가능한 것도 물론 많지만 정확한 뜻이 궁금해서 검색하는 것도 있고 정말로 추측 자체가 안돼서 검색하는 것도 많았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또 마음을 동하게 하는 문장이 있었다.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깊이 그 생각에 빠져든다고. 잊으려고 애쓰면 더욱 잊히지 않듯이 생각을 하지 말자고 해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면 더 생각할 게 없을 때까지 생각을 하는 수밖에 길이 없다는 문장이었다. 요즘...이라고 하기엔 좀 꽤 됐지만 어쨌든 많은 스트레스가 나를 휘감고 악몽에 사로잡히고 내 자신이 싫어지고 그럼에도 벗어날 수가 없겠다며 발버둥을 칠 때 딱 이 문장을 마주쳤다. 저 문장으로 위로를 받았다 해서 내가 바로 각성해서 현실로 돌아오고 치유가 되거나 드라마틱하게 뭔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잊으려하지 말자, 받아들이자, 아 이건 아닌가. 뭐 여튼.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 생각들이 동이 날 때까지 그냥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애주가의 고백」 (1) | 2021.08.13 |
---|---|
「레몬」 (0) | 2021.08.06 |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0) | 2021.07.27 |
「애인의 애인에게」 (0) | 2021.07.04 |
「나를 찾아줘」 (0) | 2021.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