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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
읽은 기간: 20.03.11~14 / 4일
어릴 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전체적인 줄거리는 머릿 속에서 사라졌지만 연금술사 때문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도서관에서 발견하자마자 작가 이름 보고 바로 읽었었다. 같은 이유로 고른 이 책 「스파이」는 소설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장 넘기고 뭔가 이상해서 마타 하리로 구글링 해보니까 실존 인물... 내친김에 구글이랑 네이버에 쳐서 인물 정보를 한 번 쓱 읽고 시작했다. 이 책은 파울로 코엘료가 마타 하리 사망 100주년을 앞두고 그녀의 삶을 되짚어보며 사실 자료에 근거한 바탕으로 해석하여 발표한 책이다. 그 동안 마타 하리는 속물 예술가, 고급 매춘부, 뚜렷한 증거 없이 총살 된 이중 스파이 등으로 불리우며 한 시대를 풍미한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무용수로 통했다. 하지만 파울로 코엘료가 다시금 써내려간 그녀의 인생은 달랐다. 다 읽고 나서 왠지 뜨뜻미지근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취한 애매한 입장 때문인 것 같다. 마타 하리가 억울하게 사형 당했다는 걸 강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타 하리의 편에 서있지도 않고 뭔가 모호한 느낌...? 그녀가 그저 자유를 갈망한 여성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만 보면 마타 하리에 대한 옹호하는 소설인가 싶다가도 또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좀 그랬다. 무엇보다 이전에 읽었던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과는 사뭇 달랐고 어쨌든 내 스타일은 아닌 걸로...
마타 하리의 본명은 마르가레타 젤러인데 네덜란드 한 사업자의 딸로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기숙 학교로 들어가게 되고 아직 십대인 어린 나이에 교장실로 끌려가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책에 나와있는 바에 따르면 후에 마타 하리가 유명해진 후 이 사실을 고백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은퇴한 교장을 마타 하리의 첫 남자라는 이유로 부러워했다고 한다. 진짜... 어이 털려서 읽다가 책 덮을 뻔. 어쨌든 그녀는 신문 광고에 올라와있는 아내를 구하는 구인광고에 지원을 하고 스물 한 살이나 많은 장교와 결혼해 인도네시아 잠바섬으로 떠난다. (당시 그런 식으로 결혼하는 처녀들은 대부분 가정 환경이 어려웠던 여성들이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 마타 하리의 처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타 하리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도망치듯 떠나왔지만 남편은 아름다운 아내를 쳐다보는 동료들의 시선을 즐기고 악세사리처럼 자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집착해 감시하며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마타 하리는 그곳에서 딸 하나를 낳고 둘째로 아들을 출산하는데 마타 하리의 남편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보복으로 유모가 아들을 독살하면서 슬픔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따라 나간 무도회에서 고대 인도 무용에 매료되고 그 곳에서 남편의 동료인 안드레아스 부인이 이 무료한 생활과 자신의 사랑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자살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 피로 세례받아 다시 태어나게 된다.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 길로 남편을 협박해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바로 파리로 건너가고 그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마타 하리로 바꾼다. 이제 20대 중후반이 된 마타 하리는 여전히 젊었고 아름다웠다. 가녀린 체구에 큰 눈, 칠흑같이 검은 머리의 이국적인 용모를 이용해 마타 하리는 자신이 결혼했었다는 사실과 출산 사실은 물론, 태어나 자란 곳까지 모두 거짓으로 발표하며 신비로운 동양의 춤을 추는 무희로써 사교계에 발을 들인다. 빈털털이로 파리로 왔던지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시작이었던 만큼 마타 하리는 자신의 육체를 발판 삼아 성공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된 후에도 그녀의 그러한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어찌 보면 스트립 댄서라고 할 수 있을만큼 마타 하리는 무대에서 옷을 벗으며 춤을 추었는데 그러한 마타 하리에게 사람들은 열광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만나려 했다. 많은 남자들의 정부, 애인 노릇을 하며 마타 하리는 부와 명예를 누렸고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그녀의 인기도 조금씩 사그라 들고 있었다. 마타 하리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나이가 들어갔고 또 다른 젊은 댄서들이 제 2의 마타 하리랍시고 하나 둘 등장하면서 그녀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파리에서는 다시 이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없음을 직감한 마타 하리는 새로운 무대를 위해 파리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는데 무대에 서기 앞서 세계 제 1차 대전이 발발한다. 독일을 떠나려던 찰나 한 후원자가 나타나 마타 하리에게 돈을 주며 프랑스의 고위급 인사들을 통해 스파이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마타 하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 하며 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자신이 받았던 스파이 제안에 대해 신고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신고를 받은 관리가 독일의 이중 스파이었다. 후에 그녀는 이 건으로 스파이로 몰려 체포 당하고 만다. 그녀는 자신이 스파이가 아님을 격렬하게 주장하지만 간단한 재판 끝에 총살 당한다. 후에 사건을 책임졌던 앙드레 모르네 검사가 고백하기로 그들이 확보한 증거는 고양이 한 마리 벌 줄 만큼도 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처형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마타 하리는 41세의 젊은 나이에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죽는다.
이 책은 마타 하리가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와 변호사 클뤼네가 마타 하리에게 보내는 편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 소설의 형식을 마타 하리의 편지처럼 썼냐는 질문에 코엘료는 자신의 삶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기회가 되어주기 때문에 편지 형식을 택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코엘료의 뜻대로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확실히 마타 하리의 생각이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에 기반해 썼다곤 해도 역시 이건 소설이고 작가가 본인이 아니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다.
마타 하리에게 답장을 보내는 클뤼네 변호사는 마타 하리를 사랑했고 때문에 어떻게든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마타 하리에게 죄가 없음에도 여러가지가 엇갈려 유죄 판결이 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마타 하리가 자신이 살기 위해 그런 진술을 하면 안됐었다며 살기 위한 진술을 했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에 맞지 않는 진술로 그런 상황까지 몰고 갔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타 하리가 누명을 쓰고 사형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의 수많은 애인이었던 정재계 인사들은 모두 그녀를 외면했다. 이미 아름다움을 잃고 인기 또한 잃었던 그녀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했던 스무살 어린 연인조차 그녀를 외면했다. 전쟁으로 실명을 한 그를 위해 어디든 함께 했던 마타 하리였지만 그는 법정에서 단지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 대목이 너무 슬펐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몸을 파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마타 하리에게는 공감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고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마저 불행했던 것, 그리고 낳은지 얼마 안된 어린 아들을 독살로 잃은 것, 거기다 그저 구체적 증거도 없이 전쟁 중 국가 사이의 이해 관계에 치여 희생 당한 당대의 최고의 무용가로서 그녀가 안타까운 마음은 크지만 그녀의 다른 행보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할 게 없을 것 같다. 아 근데 적다보니 진짜 인생이 참 기구했던 것 같다. 한 사람에게 몰아올 수 있는 불행은 다 몰아온 것 같달까. 한 사람이 받기엔 너무도 큰 사랑과 인기를 독차지 한 것도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이 불행의 자리를 메꿔줄 수는 없을 테니까. 아,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과 달라서 책 기준으로 썼다. 뭐가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이나 위키나 확인된 사실만 쓰는 건 아니니까.
처음 책 표지만 보고 아 당시에는 이런 외모가 아름답다고 통했나...? 하며 의아했는데 책 중간 중간에 실린 마타 하리의 그 당시 사진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흑백사진임에도 그 사진을 뚫고 나오는 관능적인 무언가가 그녀에게 있었다. 그래서 마타 하리가 그 당시 최고의 무용수이자 스타가 될 수 있었겠지.
마타 하리가 인도네시아 말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이라는데 처음 그 부분을 읽었을 때는 책 「여명의 눈동자」의 여옥이 생각났다. 그녀도 스파이었으니까. 뭐 다 읽고 나서는 완전 달랐지만.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열댓명의 군인들이 사격을 해서 총살 당했는데 그 중 한 통에는 공포탄이 들어있다는 게 신기했다. 군인들로 하여금 자신으로 인해 사형수가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위함이라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음... 혹자는 마타 하리만큼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사람도 없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반대로 말한다. 나는 뭐랄까... 내가 문헌을 조사하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책만 읽었을 뿐이니까 정확한 건 모르지만 현 시점에서는 후자의 의견에 가까운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그저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가장 큰 죄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럴까? 스파이 노릇을 하지 않았는데 스파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 건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저 말을 했을 땐 사형 당하기 전이었기에 그 사실을 빼고 본다면 사실 마타 하리가 정말 저 말처럼 자유롭고 독립적이기만 한 여성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녀가 인기와 성공을 위해 수많은 거짓말을 한 건 사실이고 많은 남자의 정부였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 것들을 보통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표현하진 않지 않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 짧은 결혼생활에서 겪은 불행 또한 안타깝지만 누군가의 불행의 깊이와 양이 결코 그 사람에게 면죄부가 되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또 나는 줏대없는 인간이라 마지막 말은 아껴야지. 책은 굉장히 짧았는데 어째 후기가 더 긴 것 같다. 나는야 투 머치 토커!!
아, 마타 하리 어머니의 말이 인상 깊어 덧붙인다.
해바라기 씨앗은 우리가 다른 꽃씨와 구별하지 못하더라도 해바라기로 피어난다.
아무리 원해도 장미나 튤립으로 피어날 수는 없다.
타고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낸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든 너의 운명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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