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몽환화」

셍셍칩 2020. 8. 31. 10:50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

읽은 기간: 20.08.09~28 / 20일

 

 

 오랜만에 읽는 것 같은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근데 이 다음으로 대기타고 있는 것도 히가시노 게이고... 긴 시간 거장으로 군림한만큼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내가 너무 늦게 시작했나봐... 뭐 어쨌든 이번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다. 너무 진도를 더디게 뺀 탓에 프롤로그의 내용을 잊어갈 때쯤 복선이 밝혀졌지만.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특기는 과학인 것 같다. 대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져야 이런 내용을 쓸 수 있을까... 재미도 있는데 심지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도 뚜렷하게 전달된다. 그래도 난 그냥 살인사건이 더 내 취향이야! 이것도 살인사건이긴 하지만.
 「몽환화」는 10년의 시간을 연재한 소설이라는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상당 부분을 수정하고 다시 써야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소신껏 책을 끝마친 것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에게 부족한 것 중에 가장 많이 부족한 그것... 끈기... 근데 심지어 줄거리에 구멍도 없고 끝으로 내달릴수록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 좀 뜬금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도 앞으로 이렇게 쭉 굳건하고 뚝심있게 작품 활동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다. 히가시노 게이고님은 이미 잘 하고 계시니까!

 이야기는 올림픽을 목표로 할만큼 촉망받는 수영선수였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물공포증이 생기면서 한 평생 해온 수영을 그만두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 된 리노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배다른 형에게 어딘가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라온 대학원생 소타, 그리고 불륜으로 인해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 지내며 아버지로서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형사 하야세를 화자로 세워 진행된다.
 꽤 인지도 있는 인디밴드의 보컬이던 리노의 사촌오빠 나오토가 갑작스럽게 자살을 하면서 나오토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할아버지 슈지를 만나게 된 리노는 할아버지의 집에 방문했다가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키우는 꽃들을 보게 되고 수기로 기록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블로그를 개설해 관리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후 주기적으로 할아버지 집을 드나들며 블로그 관리를 하던 리노는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나고 와플을 사서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고 누군가에게 피살당한 할아버지의 시체를 마주하게 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하야세 형사는 피해자 슈지가 과거 아들이 도둑으로 몰려 곤경에 빠졌을 때 구해준 적 있는 은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신문으로 사건을 접한 아들에게 꼭 범인을 잡아달라는 전화까지 받게 되자 슈지를 살해한 범인을 꼭 찾아겠다 다짐한다. 리노는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정성들여 키우던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에 대해 할아버지의 블로그에 올리는데 그 사진을 보고 연락이 온 한 남자는 당장 사진을 내리고 꽃에 대해 알아보지 말라고 권유한다.

 리노는 그 노란 꽃 화분이 사건 이후 사라졌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경찰에 알리지만 경찰은 한낱 화분 하나 사라진 것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걸 느낀 리노는 사건에 대해 따로 조사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고 자신을 찾아왔던 가모 요스케라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요스케는 못 만나고 그의 동생 소타를 만나게 된 리타는 소타를 통해 요스케가 자신에게 소개했던 연구원이 아닌 경찰 간부라는 걸 알게 된다. 리노는 확실히 할아버지의 죽음과 노란 꽃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소타는 소타대로 리노를 통해 자신의 이복형이 노란 나팔꽃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리노와 손을 잡고 나팔꽃에 대해 조사하기로 한다.
 소타는 리노를 따라 죽은 나오토의 밴드 공연에 갔다가 새로 구한 키보드를 보고 자신이 중학교 때 가족들을 따라 갔던 나팔꽃 시장에서 만났던 첫사랑 이바 다카미임을 깨닫는데 소타를 본 다카미는 그 날로 밴드를 그만두고 사라진다. 밴드에도 가명으로 들어왔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소타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사라진 다카미에 대한 추적도 병행한다.

 리노와 소타, 그리고 하야세 형사는 따로 사건을 추적해가는데 슈지 살인사건은 결국 노란 나팔꽃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구원 시절 파란 장미 만들기를 간발의 차이로 다른 회사에 빼앗겼던 슈지가 퇴직 후 혼자 꽃을 키우는 걸 낙으로 삼아 살던 지금, 에도막부시대 역사 기록 속에만 남아있는 노란 나팔꽃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는 걸 토대로 이 살인사건이 보통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이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게 하나하나 밝혀진다. 소타는 형이 왜 이 사건에 관여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과거 가족들과 지금은 죽고 없는 아버지에게 느꼈던 소외감이 이 일과 분명 연관이 있다는 걸 느끼고 이바 다카미를 찾는일과 더불어 리노와 함께 하나씩 궁금증을 해결해가는데 이바 다카미 또한 자신들의 조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며 이야기는 극에 치닫는다. 그리고 이어서 이 모든 일의 큰 틀에는 소타의 어머니까지 관여되어 있다는 게 밝혀지자 소타는 충격에 빠진다.
 노란 나팔꽃은 에도 막부 시대에 존재했던 꽃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종적을 감추고 현대까지 보이지 않았었다. 사실 노란 나팔꽃은 당시 몽환화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는데 그 씨앗을 먹으면 환각을 보는 등 마치 마약같은 효과를 보였던 것이다. 나라에서는 그 씨앗을 따로 관리하며 사건의 범인을 조사할 때 자백제 등으로 활용했지만 이후 씨앗의 위험성 때문에 사용을 중지했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한 남자가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실성하여 일본도를 가지고 길거리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었고 후에 이 일은 마릴린 먼로의 이름을 따 MM사건으로 불린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 남자가 마당에서 노란 나팔꽃을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씨앗을 먹고 범행을 저지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노란 나팔꽃 씨앗의 존재가 밝혀지면 사회가 혼란할 것이 염려되기도 했고 씨앗이 유출됐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노란 나팔꽃의 존재를 숨긴다.
 가모 가문은 대대로 경찰 간부 집안이었고 나팔꽃 씨앗에 연관이 되어있어 이미 사라진 걸로 공표되어있지만 어디엔가 남아있을지 모를 나팔꽃을 따로 추적하고 있었다. 소타의 아버지는 첫번째 아내였던 요스케의 엄마가 죽은 뒤 술집에서 만난 여자를 사랑하게 돼 결혼을 해 소타를 낳는데 사실 이 여자는 MM사건 피해자 부부의 갓난쟁이 딸이었고 피해자들을 남몰래 주시하다가 사랑에 빠졌던 소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모든 걸 고백하고 결혼을 한 것이었다. 결혼 후 소타가 태어나자 나팔꽃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소타는 제외하기로 약속을 했고 소타의 아버지는 큰 아들인 요스케에게 이 사실을 말해 함께 나팔꽃을 추적했지만 소타에게는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소타는 자신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소외감을 느껴왔던 것이다. 요스케는 원로 가수 구로가 나팔꽃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나오토의 자살 사건 때 도무지 죽을 이유가 없던 나오토가 자살했다는 점과 나오토가 유명 가수 구로가 아끼던 후배였다는 것에서 어쩌면 그의 자살이 나팔꽃이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대대로 씨앗을 보관했던 의사 가문인 이바 가문의 다카미에게 연락해 구로와 나오토의 밴드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해 다카미가 정체를 숨기고 그 밴드에 들어가 있었던 것인데 소타에게 발각되자 다시 몸을 숨겼던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친구였던 나오토와 마사야는 함께 밴드를 만들었고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오지만 어느 날 음악적 한계에 부딪힌다. 고민에 빠져있던 젊은 친구들에게 그들을 아끼던 구로는 식물의 씨앗을 몇 개 건네준다. 진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나눠준다는 그 씨앗은 먹으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해주고 나오토와 마사야는 함께 씨앗을 먹고 그 환각 효과에 힘입어 그들의 최고의 히트곡을 만들어낸다. 이후 종종 씨앗을 사용하지만 받은 씨앗의 양은 한정적이었고 더 많은 양의 씨앗을 원하게 된 나오토와 마사야는 나오토의 할아버지가 꽃을 키운다는 걸 생각해내 함께 슈지를 찾아가 씨앗을 맡기며 무슨 꽃인지 궁금하다며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이후 나오토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마사야는 둘도 없는 친구인 나오토의 죽음이 씨앗 때문이라는 걸 눈치채지만 그는 여전히 씨앗이 필요한 상황. 마사야는 슈지에게 부탁했던 꽃을 보기 위해 슈지의 집을 찾는데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 슈지는 이미 자신의 손자가 무엇때문에 죽었는지를 알고 있었고 마사야에게 모든 걸 알고 있다고 밝히며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고 놀란 마사야가 슈지의 뒤통수를 가격해 죽인 것이었다.

 노란 나팔꽃과 요스케라는 간부의 움직임을 눈치채 그에 따라 사건을 추적하던 하야세는 슈지에게 남몰래 노란 나팔꽃을 키우는 걸 돕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까지 알아내고 그가 이미 살해당한 슈지를 리노보다 먼저 발견한 뒤 나팔꽃부터 숨긴 후 신고하러 돌아왔었다는 것까지 알아내 이 정보를 요스케에게 넘기고 범인인 마사야를 잡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게 밝혀지고 마사야는 구속되고 시간이 흘러 마사야는 리노를 면회에 불러 다방면에서 출중했던 나오토가 얼마나 리노의 재능을 부러워했는지, 리노에겐 얼마나 특별한 게 있는지 나오토의 생각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리노는 자신이 포기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원자력 연구라는 지금은 쓸모없고 모두가 기피하는 전공을 선택해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던 소타는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다며 몇 십년 전 사람들이 원자력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이상 원자력을 수습하는 건 후대의 몫이라며 그것을 자신이 이어가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었다.
 앞에 나왔던 두 개의 프롤로그는 역시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난 책의 내용보다는 작가가 왜 소타의 전공을 원자력연구로 설정했는지가 가장 와닿았다. 윗 대에서 했던 일들을 책임지기 위해 대대로 이어받아 조사를 하던 이바 가문과 가모 가문 이야기를 왜 큰 틀로 쓴건지, 소타의 다짐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이 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대단하다니까.
아 그래도 일본 이름은 너무 어려워... 너무 길어! 지금 다음 작품으로 읽고 있는 책은 심지어 앞에 인물 설명까지 있다. 읽으면서 몇 번씩 인물 설정 페이지로 돌아오는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0) 2020.09.12
「십자 저택의 피에로」  (0) 2020.09.04
「립반윙클의 신부」  (0) 2020.08.10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0) 2020.08.04
「시녀 이야기」  (0) 2020.07.20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