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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하트」
더글라스 케네디
★★★★☆
읽은 기간: 19.02.12~15 / 4일
제목 보고 집었다가 표지 보고 잠시 내려놨던 책이다. 표지에 너무 남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그려져있어서 얼핏 보면 만화책 같기도 하고 그냥 손이 안가서 다시 꽂아뒀었다. 결국엔 다시 집었지만.
이야기는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고 사물의 묘사도 뛰어나서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아예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로 읽어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처음 닉 앞에 앤지가 등장했을 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건 왜일까. 뒷표지에 그려진 줄에 꽁꽁 묶인 남자의 그림 때문이었을까. 처음 닉이 오스트리아 오지로 떠나기로 결정해 밴을 사서 떠날 때까지는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뒤로 갈수록 전개가 빨라지고 빨려들어갈 듯한 문장에 단숨에 읽게 되는 책이었다.
이제 마냥 젊다고 말할 수 없는 중년으로 넘어가는 중인 닉 호손은 기자다. 가족도 없이 혼자인 닉은 몇년씩 이 신문사에서 저 신문사로,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옮겨다니며 살아가던 중 최근 몇년간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일자리가 정해져있던 어느 날 보스턴의 한 서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도를 보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에 대한 소개 글귀에 빠져든 닉은 그 매력적인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새 직장의 입사를 취소하고 이제까지 저축한 돈을 여행자 수표로 바꾸고 비행기를 타고 바로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 곳은 닉이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다. 지도가 말해주던 매혹적인 오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속은 기분을 느꼈지만 닉은 돌아가는 대신 일단 여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오지로 향한다. 사이비 목사에게 밴을 사고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들어가 끝도없이 펼쳐진 도로를 달리다 오밤중에 캥거루를 치고 잠시 마을에서 쉬다가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다시 떠나는데 정말 운전에도 모든 것에도 지쳐갈 때 쯤 그녀가 나타난다.
젊고 탱탱한 앤지는 닉이 이제까지 만났던 여자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고 그 당당함에 빠져든 닉은 앤지와 잠시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 데드하트라고 불리는 중부의 한 작은 마을 울라누프 출신이라는 앤지는 자신의 마을의 전통에 따라 21살이 되어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왔다고 소개한다. 네 가족, 51명이 전부인 마을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앤지는 세상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닉은 그런 앤지와 즐겁게 여행을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여자를 만날 때 늘상 그랬던 것처럼 잠시 즐기다가 헤어질 생각이었던닉은 이제 슬슬 앤지와 정리해야지 싶었을 때 앤지에게 얻어맞게 되고 조금 더 이별을 미루다 진짜 이별할 수 있게 되던 날 욕정에 눈이 멀어 한 번만 더 앤지와 자고 헤어져야지 라는 생각에 앤지에게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고 그날 밤 정신을 잃는다.
누군가 자신을 묶고 팔에 주사를 놓는 듯한 환영에 시달리다 정신이 들었을 때 닉은 더럽고 냄새나는 닭장이었고 칭칭 감겨있는 몸과 주사바늘 자국과 멍이 들어있는 팔을 보며 그것이 환영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깨닫는다. 닉이 정신이 들자 나타난 한 남자는 자신이 앤지의 삼촌이라고 소개하며 앤지가 닉의 아내라고 말한다. 닉은 아니라고 반항하다가 폭행을 당하고 찌는 듯한 더위에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풀려난다. 밖으로 나와 보게 된 마을의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쓰레기더미로 이루어진 산과 문명에서 벗어난 듯한 집의 모습들, 하나같이 낡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까지. 판자로 만든 지저분하고 좁은 집에서 신혼여행 명목으로 3일을 쉬고 나오자 닉에게도 일거리가 주어진다. 차에 대해 잘 안다는 걸 앤지가 아버지인 대디에게 말해 대디 밑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앤지는 닉과 여행 중에 했던 잠자리로 임신을 하고 축하파티에서 닉은 앤지의 언니 크리스탈을 처음 보게 된다. 얼마 전 남편을 잃었다는 크리스탈은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고 한눈에 크리스탈이 이 곳과 어울리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정신나간 집단에서 일단 살아남아야 했던 닉은 적응한 것처럼 행동하며 정비소에 세워진,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더 고물이 되고 심지어 분해까지 되어있는 자신의 낡은 밴을 고쳐낸다. 몇주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차를 새 것처럼 고쳐낸 밴을 자랑스럽게 마을 어른 넷에게 보여주고 신나게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 뿌듯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차를 보러 정비소에 들렀다가 차가 엉망으로 망가져 있는 걸 본다. 알고보니 자신이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대디가 차를 망가뜨린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를 열심히 해본 닉은 깊은 상실감에 빠졌고 이 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식음을 전폐하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 그렇다고 탈출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정신이 아예 나간 것처럼 연기하기 시작한 닉은 연기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더 열과 성을 다해 연기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닉의 간호에 성질 급한 앤지가 지켜갈 때 쯤 앤지는 언니인 크리스탈에게 닉의 간호를 부탁한 채 술집으로 놀러 나가고 크리스탈은 닉의 연기를 안다며 닉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크리스탈은 왜 마을 사람들이 지도에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이 마을에 살게 되었는지를 들려주고 왜 이렇게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며 그들만의 법을 만들고 그들만의 규칙을 정해 살고 있는지, 그리고 왜 앤지가 밖에서 남편감을 데려왔는지도 설명해준다. 죽었다는 크리스탈의 남편은 사실 남편이 아니었고 그저 여행 중에 만나 호감을 가지고 데려온 남자였지만 그가 떠나려하자 대디가 총으로 죽여버렸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닉과 크리스탈은 마을을 탈출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며 기회가 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린다.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차를 절도하기 위해 차가 고장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러는 사이 닉은 크리스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닉은 크리스탈에게 탈출하면 꼭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하고 기다림의 끝에 기회를 잡은 날 계획에 따라 움직여 트럭 앞에서 크리스탈과 만난다. 크리스탈이 트럭 뒤에 가득 싣어져 있는 캥거루 시체들을 치우는 사이 닉은 열심히 시동을 걸기 위해 노력하고 가까스로 출발할 수 있었을 때 저 멀리 대디와 앤지의 삼촌이 총으로 위협하며 추격하는 걸 보게 된다. 끝없는 황무지를 달리며 죽을 것 같이 목이 마를 때마다 잠시만 개울에서 목을 축여가며 도망치다가 결국 따라잡히게 되는데 모든 걸 포기하고 항복을 선언하지만 대디는 닉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총성이 울리고 닉이 눈을 떴을 때 닉 앞에는 중간에 뛰어들어 닉 대신 총에 맞은 크리스탈이 보인다. 대디는 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달려들고 닉 또한 충격을 받지만 정신을 차리고 총을 주워 대디에게 겨눈다. 결국 닉은 대디를 죽이고 앤지의 삼촌을 위협해 시체를 싣고 마을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정신없이 그 자리를 떠나 운전해 퍼스로 돌아온 닉은 가장 좋은 호텔로 가서 장장 몇개월만에 제대로 된 샤워를 하고 뻗는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끊고 호주를 벗어난다. 그들이 이미 무법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억울해도 자신을 신고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지만 공항경찰이 닉을 잡았을 때 닉은 절망한다. 하지만 그건 그저 비자 만료 후 반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렀기 때문이었고 그 장면에서 닉이 얼마나 오랫동안 울라누프에 잡혀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으로 향하는 비즈니스석에서 실로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든 닉은 20년 후 어느 날 집으로 장성한 아들과 40대가 되어버린 앤지가 찾아오는 꿈을 꾸며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그것은 악몽일까.
어쩌면 닉이 오지에 매력을 느끼고 황무지로 향했던 건 자신의 삶이 마치 황무지 같아서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던 일상과 당연하게 생각했던 물건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 울라누프에서의 삶. 결혼은 생각도 안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던, 여자는 그저 즐길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지난 인생을 곯려주기라도 하듯 나타난 크리스탈이라는 여자의 존재. 닉이 느끼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문장들이 너무 현실감 있게 묘사해 나와는 다른 삶이고 접해본 적 없는 감정과 상황이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히 울라누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들이 그렇게 자기 가족끼리 똘똘 뭉쳐서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좋았다. 그런 이야기가 일언반구 없이 그냥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짝을 찾기 위해 닉을 납치했다-라는 내용이었다해도 소설이니까 납득할 수 없어도 그러려니 하긴 했겠지만 그 과정이 제대로 나와있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 나라나 이 나라나 나라와 기업이 못 가진 사람들에게 하는 짓은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정신없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게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가의 빅 픽처가 유명하다고 하니 다음에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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