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
「90년생이 온다」
임홍택
★★★☆☆
읽은 기간: 20.02.05~22 / 18일
소설이 아닌 책이라니 이게 대체 얼마인가... 연속되는 범죄소설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어 머릿 속 환기를 위해 예정되어있던 책을 미루고 집어들었는데 흠... 옳은 선택이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게 아니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같은 책을 읽었어야 했는데. 사실 정신은 범죄소설 아니었어도 피폐가 디폴트값이었으니 책으로 이걸 리프레쉬하려고 한 것 자체가 오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이런 책 너무 가독성이 떨어져... 다음은 무조건 소설이다. 어릴 때는 비문학도 곧잘 읽었던 거 같은데 나이가 드니 그냥 이야기가 좋다. 특히 재미있는 이야기. 이 책에서 90년대생들은 무언가를 읽을 때 F자 형식으로 읽는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중요한 부분만 골라읽는 인터넷 서핑에 최적화 된 읽기 방식...?) 특징이 있다고 했는데 나도 약간 그런 거 같다. 긴 글을 읽기가 너무 힘들어...... 자꾸 대충 읽게 돼......
어쨌든 이 책은 제목도 여러번 들어본 적 있었고 때마침 엄마가 집에서 읽고 계시기도 했고 그러다 읽던 책을 다 읽고 집에 갔던 날 엄마가 다 읽고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아둔 걸 보고 겸사겸사 데리고 왔다. 표지가 잔망잔망하니 귀여운 것도 한몫했지만 펼치자마자 내용은 잔망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줄이야... 일단 인용이 대부분이어서 약간 저자의 생각이 반영된 편집본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니 재밌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마냥 딱딱하고 재미없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90년생이니 만큼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잘 모르고 쓰던 단어들의 어원이 심심찮게 설명돼있어서 나름대로 유익했달까. 이 책이 대기업 고위급 인사들에게 필수 권장도서라고 하던데 정작 이 책을 읽은 한 임원은 혀를 찼다고 했고, 반면 90대 중반 태생의 한 사원은 잘 읽었다고 했다. 왜 두 사람의 반응이 그렇게 달랐을까? 라는 의문으로 책을 시작하기도 했다. 확실한 건 내용 자체가 저자가 80년대생이니만큼 90년대생이 본 90년대생들이 아닌 그 윗 세대가 본 90년대생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는 90년대생의 시작인 딱 90년생이어서 뭐 차라리 더 안성맞춤이었던 것 같다.
소설이 아니라 줄거리 요약은 무의미한 것 같고 그냥 기억나는 것만 좀 서술하고 끝내야겠다. 책 소개는 일단 좀 쌈박했다.
"몰려오는 '그들'로부터,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아마도 이 구절때문에 더더욱 윗 세대들이 읽어야 하는 도서라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구세대가 보기에 신세대들은 어딘지 다를 수밖에 없다.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은 지금도 나오지만 옛날 옛적에도 존재했던 말일 것이다. 하지만 책에도 인용되었듯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향한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을 보내게 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기업에서 젊은 층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원들을 이해하기 위해 기업체 상위직급자들의 권장도서가 된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지 않는다. 정해진 것과 다른 것이 있으면 가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윗 사람의 말에 불만이 있어도 티내지 않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졌던 바로 윗 세대와는 너무도 다르다. 회사에서도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면 바로 의견을 피력하고 감정이 상하면 때론 신고도 한다. 최근 우리 회사에서도 시행됐는데 현재 대기업은 전반적으로 시행하고 있을 직장내 괴롭힘도 우리 세대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과거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우리 세대는 당연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가 보기엔 당연한 것들이 윗 세대에서는 대체 뭐가 문제야?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뭐 책에는 없던 내용이지만 요즘 젊은 부부들이 있는 자리에서 "남편이 집안일 잘 도와주니?"같은 질문을 하면 안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더이상 우리 세대는 집안일을 여자의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다. (물론 전업주부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때문에 저런 질문을 받으면 기성세대처럼 "네, 잘 도와줘요." 라고 대답할 게 아니라 "집안일을 왜 도와준다고 표현하시죠? 집안일은 같이 하는 거죠."라는 대답이 나온다.
책에서는 90년대생의 3가지 특징을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라고 말하고 있다. 90년대생들은 모든 걸 줄여서 말하며 위에서 언급했듯 긴 글을 읽지 못한다. 그리고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병맛같은 콘텐츠들을 좋아한다. 또한 정직하지 못한 제품은 사지 않는다. 거의 뭐 다 빼고 기억나는 것만 쓴거라 되게 축약됐는데 사실 책 내용은 엄청 많다. 기억력의 한계... 그렇다고 책을 다시 펼쳐서 보면서 쓰는 건 너무 귀찮은 프로 귀차니즈머의 한계...
개인적으로 90년대생이 직원이 되었을 때도 공감은 됐지만 소비자가 되었을 때가 좀 더 공감이 되긴 했다. 읽을 수록 뭐야 이거 내 이야긴가... 싶은 부분이 있었다. 그냥 내가 프로 욜로족, 오늘만 사는 소비꾼이라 그런가...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은 건 아니지만 느끼는 점은 많았다. 우리는 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우리도 금세 다음 세대를 맞이해야 할텐데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세상이 예전에 비해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우리가 더 빠르게 변화에 적응해야 하며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기성세대보다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꼰대같이 행동하는 한참 10~20살 위의 사람들에게 환멸 비스무레한 것을 느꼈었다.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꼰대사상에 걸맞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 되진 말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과 모이면 우린 절대 변하지 말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들어오고 어느새 나도 어느 정도 오래된 직원이 되었다.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아직은 내 기준으로 난 절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신입사원들이 보기엔 나 역시 꼰대로 보이지 않을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해? 라는 생각의 주역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게 목표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걸맞게 변해야 하는 게 맞는 목표일 수도 있겠다.
후 나 이제 그만 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