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장」
「희망장」
미야베 미유키
★★★★★
읽은 기간: 18.04.11~21 / 11일
도서관에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에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방황하다가 미야베 미유키 책 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단번에 눈에 들어온 게 이 「희망장」 이었다. 두꺼운 책은 들고 다닐 때 무거워서 피하는 편인데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들고 나와서 대출을 하고 방에 묵혀두다가 며칠 만에 드디어 손을 대기 시작했다. 두꺼워서 오래 읽을 수 있겠구나 하고 빌렸는데 두꺼워서 라기보단 어쩌다 보니 오래 읽게 되었다.
빌리기 전에 쓱 한 번 떠들러 봤을 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기에 그냥 챕터가 나누어져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사실 각각 단편으로 총 네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한 사람이니까 단편은 또 아니려나. 뭐 아무튼 단편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어야 마땅하지만 다 읽은 지금에 와서는 단편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을 발견했다는 게 또 의외의 소득일 수 있겠다.
음... 독후감은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니 그냥 가볍고 편하게 써야겠다. 리뷰라는 단어도 과할 거 같으니 딱히 알맞은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매력은 역시 의표를 찌른다는 거였는데 역시나 이 책에서도 그런 면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내 의식의 흐름을 이야기의 흐름에 맡기다 보면 아 이놈이 범인이구나, 혹은 아 이렇게 되는 거구나, 싶은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미야베 미유키는 나의 그런 상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 맛에 읽는 거지만.
「희망장」은 성역, 희망장, 모래 남자, 도플갱어라는 제목의 단편 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사립 탐정으로 4편 다 동일하다. 마치 코난처럼 스기무라가 의뢰받은 사건들을 한 편 한 편 따로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성역은 스기무라가 스기무라 탐정 사무소로서 맡게 되는 첫 번째 사건이다. -사실 사건이랄 것도 없었지만- 스기무라의 동네 주민이 같은 맨션에 살다 죽은 걸로 알려진 미쿠모 가쓰에라는 할머니를 다른 장소에서 목격하게 돼 스기무라에게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뭐 결과적으로는 가쓰에 할머니는 죽은 게 아니었고 그저 복권에 당첨되어 신경질적이고 개념없는 딸과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사라진 거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등장인물들의 이해관계와 속사정이 아주 흥미진진했다.
희망장은 노쇠한 아버지 무토 간지가 죽은 뒤 아들인 아이자와가 생전에 아버지가 했던 께름칙한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탐정 사무소에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무토 간지가 죽기 얼마 전부터 요양시설의 직원들과 아들에게 몇 차례에 걸쳐 몇 십년 전 자신이 한 여자를 살해했다는 말을 흘리는데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냥 흘려듣기에는 찝찝한 내용이라 사실 규명을 위해 스기무라 사무소에 의뢰를 한 것이다. 스기무라는 무토 간지가 생전에 했던 말을 토대로 35년 전 사건을 추적해 가는데 그 사건은 이미 범인이 잡힌 사건이었다. 여기까지 밝혀졌을 땐 무토 간지가 범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게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 범인은 무토 간지와 막역한 사이었는데 갑자기 눈이 뒤집혀서 흠모하던 여자를 죽였고 무토 간지는 그런 범인을 설득해 자수하게 했던 거였다. 그렇다고 무토 간지가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과거의 일을 자신이 저지른 일로 착각했느냐, 하는 것은 또 아니었고 사실 최근에 근방에서 일어난 젊은 여성 살인 사건 보도내용을 티비로 여러 차례 접하던 무토 간지가 범인이 요양원 직원임을 눈치 채고 그 사람에게 자수를 권하고 싶어 그 청년의 귀에 들어가게 하려고 일부러 저런 말을 흘렸던 것이었다.
모래남자는 「희망장」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은 에피소드다. 제일 길기도 했다. 글자 크기만 조금 키우면 얇은 장편 소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모래남자의 주 무대는 스기무라의 고향 동네이다. 메밀국수 맛집 '이오리'의 젊은 부부인 마키타 부부에게 일어난 일로 남편인 히로키가 어느 날 부인인 노리타를 버리고 노리타의 친구인 이노우에 다카미와 사랑의 도피를 하면서 시작된다. 의뢰자는 다카미의 엄마로 다카미가 사라진 뒤 드문드문 오는 연락이 영 딸 같지 않다면서 딸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한다. 직감대로 메세지를 보낸 건 다카미가 아니었고 다카미는 이미 살해된 것이 아닐까- 하는 뉘앙스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히로키는 어린 시절 여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있던 집에 불이 나 혼자 살아남은 과거가 있었고 당시 그 불이 히로키가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었지만 '의혹'은 '의혹'인 채 끝났던 과거사가 있었기에 더더욱 다카미는 살해당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하지만 다카미는 멀쩡하게 살아있었고 히로키와 바람 난 게 아니라 그저 히로키의 과거를 알고 돈을 뜯어내러 오랜만에 마키타 부부를 찾아왔다가 마침 노리코와 헤어지고 싶었던 히로키에게 돈을 받고 연극을 해줬을 뿐이었던 것이다. 히로키는 노리코에게 흠이 되고 싶지 않다며 백퍼센트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헤어지고 싶다고 다카미를 이용한 것이었다. 노리코도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노리코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히로키는 아이를 낳는 걸 반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때마침 다카미가 등장했던 거고 노리코는 아이를 낳기로, 히로키는 이혼해 혼자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히로키는 히로키가 아니었다. 진짜 히로키는 과거 어머니와 동생이 죽은 사건 이후 아버지와 절연하고 살아왔고 그러다가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호적을 팔아버린다. 가짜 히로키는 돈을 받고 자신의 진짜 이름을 주고 히로키가 된다. 가짜 히로키는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어 돈이 필요해서 히로키 라는 이름을 샀던 건데 진짜 히로키는 젊은 여자를 노리는 사이코패스였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히로키에게 여동생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짜 히로키는 진짜 히로키를 없애버린다. 그 후 그 비밀을 감추고 살아오던 가짜 히로키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살아가지만 살인자인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붕괴하고 만 것이다. 뭐 아마도 가짜 히로키는 그렇게 사라져서 죽었겠지. 모래남자는 화차로 미야베 미유키를 처음 알게 된 나에게 가장 미야베 미유키 다운 이야기였다.
도플갱어는 이치 아스나라는 여고생이 자신의 엄마가 교제하던 아키미 유타카라는 중년의 남자가 대지진과 함께 행방불명 되면서 엄마가 매일을 눈물바람으로 살자 아키미를 찾아달라고 스기무라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뭐 결론적으로는 아키미가 아스나의 엄마와 결혼을 결심하면서 고가의 반지를 사게 되고 아키미가 운영하던 앤티크소품샵의 아르바이트생인 마쓰나가가 아키미와 말다툼 중 아키미를 살해하게 되면서 반지를 숨기고 몰래 되팔려다가 스기무라에게 꼬리가 잡히면서 밝혀지게 된다. 그러니까 아키미는 지진 피해자가 아니라 그냥 살인사건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쓰니까 되게 짧은데 도플갱어 이야기는 모래남자 수준으로 길었다. 이야기가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게 좋진 않아서 그냥 별로 설명하고 싶지가 않네. 나는 원래가 편벽한 편이니까.
아 오랜만에 뭔가 줄거리를 쓰려니까 되게 힘들다. 다음부터는 느낀 점만 써야지. 맨날 책 읽으면 줄거리 까먹으니까 기록해 놓아야지 했는데 기록하다가 하루 다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