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
읽은 기간: 19.02.01~11 / 11일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어볼까 싶어 빌려봤다. 사실 좀 낯선, 처음 보는 작가의 책을 읽고 싶었던 참이라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아 공지영이네, 일단 거르자- 하고 넘어갔는데 다른 걸 고르려 해도 신간도서엔 딱히 빌릴 만한 책이 없었다. 또 어느 면에선 안티도 많은(걸로 알려진) 작가라 살짝 꺼려지기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숱하게 봐오던 책들의 작가이기도 하고 어떤 책은 재미있게 어떤 책은 지루하게 어떤 책은 재미없게 읽었던 게 생각나서 이 책은 또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당연히 장편이겠지 싶던 제목이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단편이었다. 그러니까 다섯편으로 단편 소설로 구성된 소설집이었는데 특이하게 두 편은 소설이었지만 세 편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였다. 뭐... 작가가 자신과 동일한 이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라고 한다면 소설이구나 하겠지만 여러 정황상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았다. 뭐 소설적인 요소를 적절히 가미시켰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은 안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엔 이 책도 썩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 일기 내가 읽는 것도 오글거리는데 남이 써놓은 자신의 이야기는 왠지 더 거부감이 든달까. 아마 한비야 책을 읽고 나서부터 생긴 병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뭔가 내가 느끼기에 허구같고 자랑같고 과장같은 문장을 하나만 발견해도 더 이상 그 책을 읽기 싫어지는 거다. 남이 읽을 걸 알고 있는 채로 쓰여지는 나의 이야기. 그런 게 왠지 싫다. 뭐 그렇다고 이 책에서 허구나 자랑, 과장같은 문장을 발견하진 않았다. 다만 그냥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살짝 거부감이 들었을 뿐인 것 같다. 사실 첫 편으로 선보인 월춘 장구를 제외한 나머지 두 편의 자전소설은 딱히 거부감을 느끼며 읽진 않았다. 그냥 첫 편이 딱 너무 내가 싫어하는 느낌의 문장과 내용이어서 전체적으로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뭐 아무튼- 자전적 소설이 아닌 두 단편은 꽤 매력있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그로테스크함과 부활무렵의 암울함이 나를 사로잡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과 동일한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라는 단편은 강남 부잣집의 한 고등학생 소녀가 주인공이었는데 유산 상속권을 쥐고 있는 집안의 어른 할머니가 임종이 가까워 오는 상황에서 마지막 고비를 넘기기 직전에 항상 기운을 차리는데 그 때가 되면 집 안에서 생명을 가진 무언가가 죽거나 다치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머니를 간병하던 막내 외삼촌이 돌연 사망하면서 할머니는 급작스럽게 기운을 차리고 아들의 죽음은 아랑곳 않으며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했고 이후 다시 시름시름 앓더니 그 다음으론 파출부가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상황과 맞물려 할머니는 또 기운을 차리고... 이상함을 감지한 소녀는 자신의 동생이 어린 시절 갑자기 병에 걸려 목소리를 잃게 되었을 때도 할머니가 편찮으셨다가 기운을 차렸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타인의 목숨 혹은 건강에 촉수를 꽂아 기생하듯 목숨을 연명하는 할머니. 시간이 흘러 소녀의 가족들도 이런 상황을 조금씩 감지해내지만 할머니의 유언장이 나날이 고쳐지는 마당에 유산을 포기할 수 없어 할머니 곁에 머문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절대 떠나지 못하게 먹잇감을 묶어놓고 가족들을 숙주 삼아 기생하듯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단조로운 어조로 스릴러 분위기를 연출해가는 듯한 느낌이 썩 마음에 들었다.
다른 네 편도 줄거리를 써야 내가 리뷰를 쓰는 취지에 맞지만 다 쓰긴 너무 힘드니까 줄거리는 그만 써야지. 흠... 위에도 썼듯 너무 첫 편이 별로였어서 그렇지 나머지 네 편은 좋았다. 작가로서의, 엄마로서의, 딸로서의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보여줬고 그게 과장되거나 어색하지 않았고 이런 글은 간혹 진정성 없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그렇지도 않았다. 소설인 듯 아닌 듯, 내 이야기 인 듯 아닌 듯,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이야기는 흥미롭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어쩌면 세상을 사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공감되면서 거부감 느껴지고 이해하면서도 증오하게 되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그거 같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