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셍셍칩 2021. 9. 10. 07:33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

읽은 기간: 21.09.06~08 / 3일

 


 내 최애 작가 중에 한 명인 프레드릭 배크만. 이번에 안 읽어본 책 몇 권을 샀는데 이게 그 중 한 권이었다. 더 궁금하고 더 재밌어보이는 다른 책을 제치고 이 책부터 집은 이유는 얇고 간단해보여 금방 읽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인데 정말 금방 읽었다. 책 두께만 얇은 게 아니라 안에 내용도 짧았다. 위 아래 여백이 많고 가운데만 글자가 적힌 구조로 편집돼있었는데 그마저도 중간중간 삽화가 많아서 글은 별로 길지 않았다. 한 장에 몇 줄 되지 않는 글과 일러스트들이 어우러져 동화책을 읽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 자체는 마음에 들지만 만약 모르는 작가의 책이었다면 안 샀을 것 같은 책이기도 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기존에 발표한 작품들의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출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 읽고 나서 앤디 워홀의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격렬한 박수를 쳐 줄 것이다."가 생각났다. 이 책이 똥이라는 건 아니고 그냥 약간 거저 먹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작가가 정말 자기가 쓰고싶은 거 써서 발표한 느낌? 얇은 만큼 가격이 좀 저렴했으면 좋았을텐데.
 우리나라에서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원서의 제목은 「매일 아침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라고 한다. 저 문장은 책 내용에서도 몇 번 언급된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조금씩 기억을 잃고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기에. 이렇다할 스토리가 있는 책은 아니었고 거의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들 테드의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자 노아와 함께 할아버지의 머릿속 광장에서 대화를 하는데 그 안에는 죽은 할머니도 등장해 할아버지와 종종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의 아들이자 노아의 아버지인 테드와의 대화도 가끔씩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자 노아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좋아하기에 노아를 부를 때 꼭 노아노아라고 부른다. 뒷부분에서 할아버지가 아들을 테드테드 라고 부르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게 뭐라고 마음이 뭉클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자신과 달리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 테드. 그런 테드가 낳은 노아는 자신을 꼭 빼닮았기에 더 사랑할수밖에 없다. 노아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할아버지의 반복되는 질문에도 열심히 대답해준다. 노아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스럽고 현명한 아이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와 노아의 대화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먼저 떠나보냈지만 한 평생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죽은 아내도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데 노부부의 지극히 평범한 러브스토리와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담뿍 담겨있는 대화는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동시에 누군가를 평생 사랑하고 그 사람만 영원히 사랑하는 게 정말 가능할까 하는 비관주의자의 의문도 뒤따랐다. 책이니까 가능한걸까, 현실에서도 가능한걸까. 나는 할 수 있을까. 요즘 나 자신이 싫고 회의감에 쩌들어서 그런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예쁜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있다니 나도 참...
 시간이 흘러 결국 할아버지가 기억의 대부분을 잃었을 때 이제는 청년이 되어 딸까지 생긴 노아가 딸과 함께 등장하는데 테드와 손녀의 모습이 할아버지와 노아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게 인상깊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는 하루하루가 이별을 준비하는 나날들인데 그 날들을 아들과 손자가 지켜주고 있는 모습이 여운이 남았다. 큰 내용은 딱히 없어서 줄거리 리뷰를 쓰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라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대사에서 명치를 맞은 것처럼 생각에 잠기게 하는 부분들이 종종 있었고 그래서 꽤 많은 문장을 따로 적어둔 것 같다. 다음에 그냥 그것만 읽어봐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