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
「플립」
웬들린 밴 드라닌
★★★★☆
읽은 기간: 19.05.15~17 / 3일
영화 플립에 원작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영화를 봤던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두고 인생영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재작년엔 극장 재개봉까지 했으니 보긴 봐야지 하고 미뤘었는데 원작소설이 있었다니. 어쨌든 영화를 안봤으니 더 잘됐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잘생긴 소년 브라이스 로스키와 똑부러지는 소녀 줄리아나 베이커가 주인공인데 영화는 어떨지 모르지만 책에서는 소년 소녀가 같은 상황에 대해 번갈아가며 각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면서 진행된다.
줄리는 7살 때 앞집으로 이사 온 브라이스에게 첫눈에 반해 쫓아다닌다. 줄리는 브라이스가 수줍어한다고 생각하지만 브라이스는 반대로 줄리를 진저리치게 싫어하며 피하다. 시간이 흘러 어린이었던 아이들은 소년 소녀로 성장하고 같은 학교를 다니며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지만 여전히 브라이스는 줄리는 싫어하고 줄리는 브라이스에게 푹 빠져있다.
어쩌면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줄리는 자신의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자란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부모님이 자신의 부모님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줄리는 똘똘해서 학교 성적도 좋고 전반적으로 삶에 만족하며 자란다. 줄리의 아버지는 종종 그림을 그렸는데 줄리는 그 옆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어느 날 줄리는 브라이스의 연이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에 걸리는데 그 연을 주워주기 위해 플라타너스 나무 위를 하염없이 올라가다가 그 위에서 바라본 세상에 눈을 뜬다. 부분이 모이면 전체보다 좋다 라는 아빠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쿨버스를 기다리면서 항상 플라타너스 나무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던 줄리는 어느 날 인부들이 나타나 나무를 없애려는 걸 발견한다. 알고보니 땅 주인이자 나무의 주인이 경관을 망치고 땅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나무를 베고 터를 다지려는 것이었다. 줄리는 나무를 잃을 수 없었고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버틴다. 등교시간이 되어 스쿨버스를 타러 나타난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브라이스 마저 외면한다. 그 날 줄리는 설득하러 온 아빠의 손을 잡고 내려오고 그렇게 플라타너스 나무를 잃게 된다.
브라이스는 잘생기고 호감가는 얼굴 덕에 인기가 많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소극적인 면이 있는 소년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브라이스의 눈에 줄리는 예쁘지도 않고 별나기까지 한 공부만 잘하는 아이일 뿐이다. 7살 때부터 장장 7년이나 자신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줄리가 그저 부담스러울 뿐인 브라이스는 줄리가 싫어하는 학교 퀸가를 이용해서 줄리를 떼어놓으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이스의 집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외할아버지가 와서 함께 살게 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잃고 큰 슬픔에 잠겨 있었고 과묵한 성격인지 아무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나 흘렀는데 할아버지가 브라이스를 불러세워 줄리에 대해 묻는다. 줄리가 플라타너스 사건으로 지역 신문에 실렸는데 그 기사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브라이스는 몇 달 동안 자신에게 말 한 마디 걸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난데없이 줄리에게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하고 만다.
플라타너스 사건이 일어날 무렵 줄리는 2년째 브라이스에게 달걀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2년 전 학교 과학전에서 줄리가 부화시킨 병아리 6마리가 닭이 되어 낳은 달걀이었는데 뒷뜰에서 키우다가 닭들이 알을 너무 많이 낳자 이웃 아주머니들의 요청으로 돈을 받고 팔다가 문득 브라이스네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브라이스에게 가서 달걀 상자를 건넸던 것인데 플라타너스 나무를 잃고 수심에 잠겨있던 어느 날 브라이스에게 달걀을 주고 돌아가려다 멍하니 그 집 앞에 서있게 된다. 그런데 몇 분 뒤 브라이스가 쓰레기통을 들고 나오는데 쓰레기통 꼭대기에 줄리의 달걀 상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브라이스는 당황해 달걀이 깨졌다고 변명하지만 줄리가 확인하자 달걀은 모두 멀쩡했다. 줄리는 충격이 빠지고 브라이스는 지저분한 줄리네 마당에서 생산된 달걀이라 병에 걸릴까봐 그랬다고 변명한다.
줄리는 그제서야 자신의 집 마당이 지저분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부모님에게 어째서 우리는 정원을 관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알고보니 줄리네 집은 부모님의 소유가 아니었고 아빠의 동생인 삼촌이 병원에 있어서 집에 그렇게 시간과 돈을 쏟을 여유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정신지체 삼초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줄리는 충격을 받지만 아빠를 따라 삼촌을 만나러 가는 용기를 보여준다. 줄리는 혼자서라도 마당을 가꾸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나서는데 지저분한 나무를 가지치던 첫날 브라이스의 할아버지인 챗할아버지가 나타나 도와준다. 줄리는 달걀 사건 때문에 미안해서 그러는 줄 알고 묻지만 챗할아버지는 그런 일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고 단지 죽은 아내와 줄리가 너무 닮아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챗할아버지와 줄리는 친해지고 함께 정원을 가꿔간다. 챗할아버지는 줄리가 브라이스에게 빠졌다는 걸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줄리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충고한다. 지금도 주변에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서. 그러던 중 학교에서 우연히 브라이스와 개럿이 대화하는 걸 듣게 되는데 브라이스가 개럿에게 자신과 있었던 일과 삼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듣고 개럿이 삼촌을 능멸하는 말을 하는 걸 듣고도 뭐라 하지 않고 함께 웃는 브라이스에게 격분과 실망을 하게 된다.
한편 브라이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2년 전 처음 줄리가 달걀을 가져왔을 때 가족들은 혹시 달걀 안에 병아리가 있는 게 아니냐며 브라이스에게 줄리네 집에 수탉이 있는지 물어보라고 하고 줄리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브라이스는 친구 개럿과 몰래 줄리네 뒷뜰을 훔쳐보고 수탉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집으로 와 그 이야길 하자 브라이스의 아빠는 브라이스에게 줄리에게 말 걸 용기도 없냐며 타박하고 달걀이 깨끗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아빠의 타박에 브라이스는 줄리에게 달걀을 더이상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말해야했지만 말하지 못하고 대신 줄리가 갖다주는 달걀을 몰래 버려왔던 것이다. 줄리는 그것도 모르고 브라이스가 아침마다 자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2년간 서로를 오해해온 것이다.
줄리의 달걀 사건 때문에 브라이스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할아버지를 통해 줄리에게 아픈 삼촌이 있고 그 때문에 집을 가꿀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듣고 더 마음이 불편하다. 브라이스는 줄리에게 사과를 하지만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피하기만 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받은 줄리가 실린 기사를 보게 되는데 거기 찍힌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앉은 줄리의 모습이 자꾸 아른아른 거리는 지경에 이른다. 학교에서도 브라이스는 줄리만 쳐다보고 급기야 줄리의 기사 사진을 가지고 있다가 개럿에게 들키고 만다. 브라이스는 마음을 터놓기 위해 개럿에게 줄리와 있었던 일과 줄리의 아픈 삼촌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개럿은 그 이야기를 듣고 줄리가 별난 게 유전이었냐고 비웃는다. 브라이스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지만 더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그냥 대꾸해주고 대화를 끝낸다. 그리고 개럿만큼이나 더 인성이 바닥인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 생각이 나고 만다. 줄리의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개럿처럼 반응했던 자신의 아빠 말이다.
챗할아버지가 말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챗할아버지의 딸이자 브라이스의 엄마 팻시였다. 팻시는 결혼생활을 20년 가까이 한 지금에야 남편의 본모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한 팻시는 줄리의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이사온지 몇 년만에 초대받은 줄리의 가족은 당황하고 브라이스를 더는 보고싶지 않은 줄리는 브라이스가 한 짓을 폭로하고 가지 말자고 할까 고민하지만 들떠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입을 다문다.
대망의 저녁식사날, 브라이스는 줄리를 보자마자 사과하지만 줄리는 브라이스를 무시한다. 저녁식사가 시작되고 브라이스의 아빠는 대놓고 줄리의 오빠들을 무안주고 줄리 가족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브라이스의 누나인 리네타는 아빠의 모습에 분노하고 팻시와 브라이스 역시 실망한다. 그와 동시에 브라이스는 문득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아빠와 똑 닮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줄리는 브라이스를 포기할 것을 다짐하고 더이상은 브라이스에게 현혹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 후 학교에서는 바구니소년 행사가 열리는데 바구니소년이란 전교적으로 학생들에게 인기투표를 실시해 선정된 20명의 소년이 어머니가 만들어준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있으면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여학생과 점심을 먹는 행사이다. 잘생긴 브라이스는 당연히 바구니소년이 되고 브라이스는 수치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 학교의 두 퀸카와 부잣집 딸까지 세 명의 여학생이 브라이스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줄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극받지만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바구니소년 경매가 시작되고 줄리는 착하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없이 자신이 뽑은 존이 바구니소년 명단에 올랐다는 걸 알게 되고 미안한 마음에 브라이스 경매 직전에 시작된 존의 경매에서 존을 낙찰받는다. 브라이스는 부잣집 딸을 이기려는 두 퀸카의 연합작전에 걸려들어 사상 최대 금액으로 퀸카들에게 낙찰받고 함께 점심을 먹게 되는데 예쁘기만 하고 머리가 텅텅 비어있는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더 줄리 생각이 간절하다. 저 멀리 존과 앉아있는 줄리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브라이스는 두 퀸카가 서로 다투다가 몸싸움을 시작하자 그대로 일어나 줄리에게 다가간다.
브라이스는 줄리를 끌고와서 존을 좋아하냐고 묻고 줄리는 그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브라이스는 용기를 내 줄리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고 줄리는 당황해서 피하고 도망친다. 브라이스는 학교가 마칠 때까지 줄리와 대화를 하기 위해 찾아다니지만 줄리는 학교에서 가장 먼저 하교해 집 안으로 숨어버리고 브라이스는 줄리의 집까지 찾아가지만 만남을 거절당한다. 줄리는 브라이스에게 실망했던 것을 생각하며 아직도 브라이스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에 혼란스럽고 브라이스는 줄리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줄리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줄리의 엄마는 사람은 변한다고 말해준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본 줄리는 자신이 애써 가꿔놓은 마당에 브라이스가 구멍을 파고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빠에게 달려가고 줄리의 아빠는 자신이 허락해준 거라고 말한다. 줄리는 어이없지만 브라이스가 파놓은 구멍에 심기 위해 묘목을 끌고 오자 단박에 그 묘목이 무슨 나무인지 알아챈다. 작은 묘목은 플라타너스 나무였던 것이다. 줄리는 브라이스는 만날 준비를 한다.
자칫하면 유치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주인공들 나이가 어리고 줄리와 브라이스 각각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연애소설처럼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내용이 아니라서 좋았고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낌의 배경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50, 60대의 목가적인 분위기의 미국 마을이 그려져서 또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아주 (길고 자세하고) 열심히 줄거리를 기록해서 뿌듯하다. 자 이제 책을 읽었으니 영화를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