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캐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읽은 기간: 20.06.27~07.07 / 11일
고르기 전에 3분간의 검색 시간을 가져서 퀴어소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여성과 여성과의 사랑이 나올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거보다는 작가가 히치콕의 열차 위에 낯선자들의 원작을 쓴 작가라는 거에 끌려서 골랐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범죄소설으로 유명한 작가가 동성애 소설이라니. 어떻게 썼을까? 하는 궁금증이 제일 컸다. 그렇다고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 있는 건 아니지만... (다음에 읽어봐야지... 세상엔 읽을 책이 너무 많다.)
책 읽을 땐 주인공의 얼굴과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읽는 걸 좋아하는데 책 표지에 떡하니 영화화 된 캐롤 포스터가 있어서 커버를 벗기고 까먹으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다. 테레즈는 영화랑 안어울리는 거 같았고 캐롤은 너무 찰떡같아서 새로운 인물을 상상하기 좀 어려웠다.
동성애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사람과 사람간의 사랑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냥 주인공의 성별이 여성일 뿐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녹아드는 과정과 거기서 노출되는 감정들은 일반 연인들과 같았다. 줄거리상 어쩔 수 없이 느껴지긴 했지만 여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썼다는 건 되게 미미하게 느껴졌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레즈비언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1950년 이미 소설가로 이름을 날린 후라 이름을 숨긴 채 필명으로 발표한 책이었는데 40년이 흘러서야 자신이 저자였음을 밝혔다고 한다. 「소금의 값」(「캐롤」의 원래 제목)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당시 유일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성애 소설이었다고 하는데 자신의 경험담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고루하지 않고 사실적이게 쓸 수 있었던 걸까. 같은 입장에서 썼기에 진지하고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보아하니 흔치 않게도 책보다 영화가 더 감명깊은 거 같던데 기회봐서 한 번 봐야겠다.
19살 테레즈는 엄마는 있지만 고아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엄마와 살다가 기숙학교에 맡겨졌고 엄마가 재혼하게 되자 그대로 학교에서 자라서 졸업을 하고 혼자 살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세상에 혼자있는 것 같은 고독한 느낌이 드는 여성이다. 원래의 성향도 어느 정도 있었을 수 있지만 아마 엄마의 부재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캐롤에게 빠져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는 테레즈는 일거리를 찾아 뉴욕으로 왔고 자신을 사랑하는 리처드와 만남을 이어오고 있지만 도무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없어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가족이 많고 사랑받으며 자란 리처드를 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갈 곳이 있는 걸 부러워 한다고 해야 하나 나약하다 생각한다 해야 하나...
크리스마스 시즌, 테레즈는 잠시 백화점에서 판매 임시직으로 취직을 하고 그 곳에 물건을 사러 온 모피코트를 입은 금발머리의 30대 여자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첫 눈에 감정을 느낀 테레즈는 손님이 배송을 부탁한 장난감을 포장해 보내면서 전에 없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적어 함께 보낸다.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 리처드를 만나거나 리처드를 통해 알게 된 지인에게 일자리를 소개 받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하던 테레즈에게 어느 날 근무 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로 그 때 그 여자임을 직감한 테레즈에게 금발 여자는 따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다.
테레즈는 금발 여성의 이름이 캐롤이고 어린 딸과 부유한 남편이 있지만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캐롤은 이혼을 원하지만 사랑하는 딸 린디를 잃을 순 없고 린디의 양육을 두고 남편 하지와 팽팽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테레즈는 캐롤을 만나면서 캐롤의 절친한 친구 애비도 알게 되고 왠지 모르게 애비를 경계하게 된다. 캐롤을 만나면서도 리처드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않지만 테레즈는 리처드의 아이같은 성향과 화가가 되길 원하지만 모든 걸 쉽게 질려하는 점에서 결국 언젠가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게 될거라는 확신이 들면서 점점 리처드를 만나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리처드는 테레즈가 캐롤을 만나면서 변했음을 느끼게 되고 테레즈가 캐롤을 좋아하는 감정은 아직 테레즈가 어리기 때문에 잠시 지나가는 감정이며 캐롤이 테레즈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테레즈에 대한 굳은 사랑을 맹세한다. 하지만 테레즈는 캐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 변덕스러운 캐롤의 행동에도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러던 중 캐롤은 길게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고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백화점 일을 그만두고 작은 무대의 디자인 일을 하던 테레즈는 그 일이 끝나는 시점에 캐롤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하고 리처드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기다리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캐롤과의 만남이 잦아질 수록 리처드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 아님을 확신한 테레즈는 그의 마음을 거절한다.
캐롤을 좋아하지만 서로의 마음이 같은지는 알 수 없던 테레즈는 여행 중 항상 캐롤과 한 침대에서 눕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캐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테레즈는 처음으로 캐롤과 동침을 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캐롤은 이제까지 자신에 비해 너무 어린 테레즈가 어린 마음에 진심인지 몰라 망설였고 자기 자신의 마음 또한 확신할 수 없었기에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것.
캐롤은 그 날 밤 테레즈에게 애비와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동네 친구였고 애비가 유학을 떠나면서 멀어졌지만 캐롤이 결혼한 후 가까이 살면서 다시 가까워졌고 하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애비와 연인이 된 적 있음을 이야기 해준다. 하지만 불꽃같던 애비와의 사랑은 열병처럼 두 달만에 사라졌고 둘의 관계는 다시 친구가 되어 이어왔었던 것이라며 테레즈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자신이 테레즈와 정말 연인이 될 생각이 있는 건지 확신이 없어 이제까지 참았다고 고백한다. 이 과정에서 리처드는 테레즈가 정말 자신을 떠났음을 인지하고 테레즈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아 그녀를 모욕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꿈 같은 여행을 즐기던 중 캐롤은 애비와의 통화에서 하지가 캐롤과 테레즈에게 미행을 붙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탐정을 따돌리기 위해 일정을 변경해가면서도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캐롤은 애비와 헤어진 후 하지와 이혼하기로 결심하면서 애비와 연인관계였음을 고백한 바가 있었고 하지는 캐롤이 젊은 테레즈와 여행을 떠나자 합리적 의심으로 그녀에게 사람을 붙였던 것이다. 그러다 미행하던 탐정과 조우하게 되고 캐롤은 용기있게 몰래 녹음한 녹음본을 요구한다. 탐정은 이미 뉴욕에 있는 하지에게 많이 보냈기 때문에 의미없다고 말하지만 돈을 받고 가지고 있던 녹음본을 넘긴다. 탐정은캐롤에게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라고 제안하지만 캐롤은 거절하고 테레즈와의 여행을 계속한다. 하지만 결국 캐롤은 뉴욕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고 테레즈는 여행지에 남아 하염없이 캐롤의 연락을 기다린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처음 보는 마을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리처드를 통해 알던 대니가 찾아오고 테레즈에게 자신이 취직한 지역으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받지만 거절한다.
연락이 더딘 상황에서 확실한 건 캐롤이 이혼 소송에서 매우 불리한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었고 연락을 취할 때마다 어딘가 차갑고 변한 것 같은 캐롤의 태도에서 테레즈는 낙담한다. 그리고 어느 날 캐롤은 하지가 모아둔 증거로 자신을 압박했으며 린디를 캐롤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에 거의 성공해간다는 소식을 전한다. 하지는 린디를 두고 캐롤을 협박하는데 앞으로 테레즈와 같은 여자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린디를 만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린디를 너무 사랑한 캐롤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결국 캐롤은 소송에서 지게 되고 린디를 빼앗기는데 캐롤에게 상처받고 실망한 테레즈는 캐롤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테레즈는 더 이상 캐롤과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무대 연출 일을 따내는 것에 몰입하고 과거 너무도 쉽게 끊어냈던 지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로 한다. 테레즈는 여행에서 캐롤이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가면서 맡게 된 차를 돌려주기 위해 애비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캐롤이 차를 받을 때 만나고 싶다고 해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캐롤은 다소 수척해진 상태였고 차를 마시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하지가 린디를 볼모로 자신을 협박했고 소송을 겪으면서 심신이 힘들었던 나날들을 설명하며 캐롤은 이혼소송이 끝났고 자신은 일자리를 구했으며 둘이 살기 좋은 아파트를 구했으니 테레즈에게 함께 살자고 권유한다. 결국 캐롤은 린디보다 테레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테레즈는 잠시 고민하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캐롤을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에 제안을 거부하고 일어선다.
그 날 테레즈는 무대디자인 연출 자리를 소개받을 수 있는 파티에 초대받아 가는 길이었는데 그 곳에서 그 무대의 여주인공인 배우를 보고 캐롤을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여배우도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느낀다. 여배우는 방에서 따로 몇 명이서 자리를 이어갈 것이라며 테레즈를 초대하는데 문득 테레즈는 자신이 사랑과 비슷한감정을 느낀 여배우지만 절대 자신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다. 테레즈는 그 길로 파티장을 나와 캐롤이 간다고 했던 약속장소로 향한다. 그 곳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는 캐롤을 향해 걸어가고 캐롤과 눈이 마주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테레즈는 캐롤이 여자라서 사랑하게 된 게 아니라 캐롤이라서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소설에서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번역 때문인지 문체가 주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문체 때문에 감정선도 잘 잡히지 않았고 좀 지루하기도 했다. 그래서 집중이 안돼서 별 2개로 떨어진 나의 평점... 그 당시 녹음기계 명칭도 처음 들었고 전화 교환원이라던가 전보도 생소해서 신기했다. 배경이 50년대 미국이다보니 흥미롭고 신기한 부분이 많았다.
배경이 보수적인 시대인 만큼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분류되던 그 당시 상황에 맞는 스토리 전개가 인상 깊었다. 뭐 물론 현재의 우리나라였어도 애까지 낳은 유부녀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이혼소송에서 지겠지만 그 시대에 그런 상황에서 테레즈를 선택한 캐롤의 용기가 인상 깊었다. 그래도 지금은 용기있는 성소수자들은 유튜브도 하고 언론에도 노출하며 살아가는데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가 테레즈 시점으로 흘러가다 보니 리처드에 대해 쭉 좋지 않게 생각했다는 걸 인식한 순간 깨달았다. 어쩌면 리처드는 정말 지고지순한 사랑의 정석이었을 수도 있는데 (물론 뒤에서는 매우 찌질했다.) 그런 리처드와 만남을 유지했기에 어쩌면 테레즈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