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짜장면」
안도현
★★★★☆
읽은 기간: 18.10.23~26 / 4일
신간도서에서 벗어나고 싶다, 일본 소설 그만 읽고 싶다, 뭐 그런 생각으로 도서관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이 책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었다. 초등학교? 어쩌면 중학교? 어찌됐건 엄청 오래 된 것만은 사실이다. 손이 가서 책을 뽑아 들었을 때 뭔가 찌르르 한 게 느껴졌으니까. 내용은 기억 안났지만 어릴 때 살던 집 오후의 주홍빛 햇살이 생각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집 어딘가에 이 책이 있겠지. 아 지금은 옥탑방에 옮겨놓은 박스 안 어딘가에 있으려나. 아무튼 그래서 빌렸고 그래서 읽었다. 어린 날의 내가 뭘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겉표지에 어른이 읽는 동화 라고 써있는 만큼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어른이 읽는 동화를 읽어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는 '나'가 과거 자신의 열일곱 가출 청소년이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집을 나와 숙식제공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다가 깔끔한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무작정 들어선 만리장성. 사장은 크게 따지지 않고 '나'를 받아준다. 사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것 말고는 문제아적인 성향은 전혀 없던 주인공. 작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세상 담백하게 써내려간다. 바다냄새가 물씬 나는 바닷가 마을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가정부처럼 묵묵히 살림을 꾸려나가는 어머니 사이에 장손으로 태어나 금지옥엽 자란 주인공이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게 된 이야기를. 불량청소년은 커녕 매번 1등을 도맡아 하던 모범생이었던 주인공은 어느 날 아버지가 무슨 상을 받으러 서울에 간 사이 때마침 해변 축제날이 겹치자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기로 약속한다. 어머니 몰래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던 주인공은 속도를 올리다가 도로에 나와있던 구렁이를 만나면서 사고가 나고 크게 다친다. 상을 받고 바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모든 책임은 어머니에게 돌리며 손찌검을 한다. 자신에게와는 달리 늘 어머니를 종처럼 부리던 아버지. 거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혀 대응하지 않고 모든 걸 받아들이듯 마치 파출부처럼 집안일을 하고 자신은 한 번도 태워준 적 없는 오토바이를 깨끗하게 닦던 어머니. 그래도 손찌검만은 한 적이 없던 아버지였건만 오토바이를 몰래 타고 간 것도, 사고를 낸 것도 자신인데 아머니만 쥐 잡 듯 잡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니 그 소리를 듣고도 방 안에만 처박혀 나가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주인공은 집을 나온다. 집을 나와서도 아버지가 안 계실 시간에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지만 자신이 다 잘못했다며 제발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던 주인공은 전화를 끊어버린다. 오히려 그런 어머니가 밉기만 하다.
그렇게 구한 중국집 배달부 일을 착실히 해가며 주인공은 그 도시의 상가 어른들을 알아가고 그 동네의 폭주족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여자아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렸던 주인공은 몇 달을 그 아이를 뒤에 태우고 달리면서도 입 한 번 맞출 생각도 못하는데 드디어 여자아이의 가슴을 만져보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폭주를 하다 친구 한 명이 경찰에 잡히면서 모든 게 끝이 나고 여자아이와도 헤어지게 된다. 경찰에 잡히기 전에 다른 곳으로 피하라는 여자아이의 전화를 받고 무작정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주인공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집에 전화를 건다. 악에 바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날아갈 듯 기뻤던 주인공은 당장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출발 하기 전 제자리에서 180도 돌리 기술을 구사하려다 벼랑으로 떨어진다. 다행히도 바다는 오토바이를 집어삼켰지만 주인공은 나무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 바닷가의 팽나무 위에서 주인공은 엉엉 운다. 막 허물을 벗고 최초로 울어보는 매미처럼.
그게 주인공의 열일곱 시절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모범생인 외동아들 청소년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모든 걸 수용하고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겨워 집을 나오고 잠시 일탈하듯 중국집 배달원 겸 폭주족을 하며 첫사랑을 겪게 되고 결국엔 집으로 돌아가 누구나 그렇듯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며 살아간다...하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면서 뻐근하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뭔가가 있다. 나 또 설명 못하겠네... 아무튼 그런 게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어른이 읽는 동화라고 했나보다. 오래된 책이라 주인공이 9년 전을 회상한다고 해도 더 옛날 배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 겪고 보았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큰 괴리감 없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나처럼 요약 못하는 사람도 없겠다. 글쓰기 책이라도 사서 봐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