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
읽은 기간: 20.06.03~18 / 16일
트렌드에 맞는 제목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들려와서 제목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딱히 당기지 않아 안 읽고 있다가 어느 날 읽어볼까 하고 후기를 살짝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별로라는 평이 있어서 팔랑귀는 또 그렇게 훌렁 넘겨버렸었다. 그러다 다시 그럼 가볍게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가볍게 읽을 수는 없었다. 내용 자체가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내용있고 자꾸 중간 중간 다시 한 번 읽고 체크하느라 더 시간이 걸렸다. 나는 괜찮았다. 공감가는 게 꽤 있었고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작가에게서 내 모습을 조금 발견해서인지 좋았다. 별로라는 사람들은 공감할 부분을 못 찾은 사람들이겠지?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들이 부럽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책 표지에도 떡하니 백세희 에세이 라고 써있다. 말 그대로 수필.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작가는 기분부전장애라는 일종의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고 자신처럼 이런 기분부전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 앞에 책으로써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숨기고 살아간다. 드러내기 싫어하고 그걸 드러내는 건 나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흠, 약점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일정 부분 그런 생각을 해왔기에 그 말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꼭 숨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것도 안다. 상대방 혹은 타인이 원하고 좋아할만한 말과 행동만 하고 산다면 그건 더이상 내가 아니니까. 책의 대부분은 작가와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상담 녹취록을 기록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작가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은 상당 부분 나와 달랐지만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것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은 공감도 되었기에 그런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해주는 선생님의 대사에서 해결책을 찾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 속에 좀 담아둬야 할텐데 안 적어놓으면 또 까먹을 게 뻔해서 그런 부분들은 메모해뒀다.
우리나라는 정신과 치료에 대해 너무 보수적이다.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바로 시선이 달라지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쉬쉬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거다. 우울증도, 정신적인 어떠한 문제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을 가는 것이 당연하듯 이 또한 병원으로 가서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건데 그걸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지 못하니 내 마음이 다치고 아픈 걸 인식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병은 더 곪아가는 것이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정신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인물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외국에 살아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일단 스크린 안에서는 그런 인물들을 이상하게 보진 않는다. 전과자를 피하고 혐오하는 장면은 자주 나오지만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들을 우리나라처럼 기피하진 않는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그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학교 끝나고 상담을 가고 돌아와서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고 저녁을 먹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활한다.
난 진지하게 상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럽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지만 (있었는데 크게 인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요즘처럼 회사 일이 버겁고 사람들에 치여서 힘들 땐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알맞는 방향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힘겨울 때도. 내가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다. 친구도, 동료도, 가족도 충분하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조언을 해주는 친구도 사람인지라 틀릴 수가 있다. 거기다 내 성격 자체가 너무 상대에게 휘둘린다는 것도 문제다. 내 고민을 듣고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 그런가?'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타인에게 의지한다고 해야하나. 결정을 미룬다고 해야하나... 주관이 없다고 해야하나... 저게 다 맞나... 아무튼 그래서 올바른 답변이 늘 궁하다. '그런가?' 싶다가도 상대방의 답이 정확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닌가?' 싶기도 해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작가의 이야기에서 공감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단 선생님의 말에서 더 위로를 받았다. 그랬구나, 내 감정이 그런 거였구나 싶고 내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하는 걸 인지하게 돼서 좋았다. 물론 선생님의 말이 무조건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그 말에서 많은 부분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따로 적어둔 건 여기 굳이 안 적어도 되겠지. 너무 많기도 하고, 따로 읽으면 되니까. 이 에세이에 결말이 없는 게 마음에 들었다.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니까. 그래서 주인공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아니라 앞으로도 쭉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게 좋았다. 2부에서 계속-으로 마무리 짓고도 아직 책이 한참 남았기에 넘겨보니 작가가 일기처럼 느꼈던 것들을 한 편 한 편 적은 부분이 있었다. 남의 일기를 읽는 느낌으로 한 장 한 장 넘겼는데 그 부분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고 괜찮았다.
또 주절주절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그냥 느낀 것 중에 하나만 적고 끝내야지. 많은 책과 글에서 봤던 인간은 입체적 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많이 등장했고 그래서 더 주목하고 읽게 됐다. 사람이 입체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타인을 볼 때 그걸 적용시키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이건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인식시키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나에게 이런 면과 저런 면이 있듯 남에게도 그렇다는 것을 왜 잘 이해하지 못할까. 이미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이라도 찍듯 판단해버린 누군가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건 안다. 이건 결과적으로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 아닐까. 요즘 부서 사람들 때문에 사사건건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사람들이 마냥 그렇게 나쁜 면만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미워할 수 있는 대신 죄책감이 뒤따른다. 그리고 내가 욕하던 그 사람들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할 때 자괴감 마저 들게 된다. 아닌 걸 맞다고 하자는 건 아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머리 아프게 하는 면들은 미워할 수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모든 건 아니라는 거 정도는 늘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까지 쓰고 바로 '못하겠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아마도 못할 것이다. 그게 된다면 이미 예전에 됐겠지. 그래도 노력 정도는 해야되지 않을까. 당장 내일부터 회사에서 한 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