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셍셍칩 2018. 7. 5. 20:40

「종의 기원」

 

정유정

 

★★★★☆

 

읽은 기간: 18.06.20~26 / 7일

 

 

 

 

 고작 책 몇 권에 정신이 공격받다니 내가 생각보다 유리멘탈이었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미리 알아보고 빌리는 건 귀찮아서 미루다가 그냥 한국소설이라 집어든 책이 이 책이었다. 제목에서 약간 거부감이 일었지만 뭐 최소 그냥저냥한 조용조용한 분위기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고른 거였는데 이건 뭐 요즘 꾸준히 읽어왔던 책들의 연장선이었을 뿐... 사실 제목만 봐도 이건 절대 내가 기대했던 류의 소설은 아니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긴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책이 어떻게 해야 서정적인 분위기일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읽었고 빠른 전개에 마음에 드는 문장력을 발견했으니 괜찮은 작가님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소설 속 시간은 고작 며칠밖에 흐르지 않지만 작가는 그 안에 주인공 한유진의 삶을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어린 시절 형과 아버지를 동시에 잃고 어머니가 간질을 앓는 자신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동급생이었던 해진을 어머니가 어떻게 입양하게 됐는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수영을 어떻게 그만뒀는지 하는 과거의 굵직한 사건들을 지금 유진이 처한 현재 상황과 함께 빠르게 오가며 서술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기술되기만 한다면 역시 재미가 없었겠지만 이건 좀 달랐다. 약을 끊으면 몸이 개운해지고 힘이 솟는 걸 알고있는 유진이 로스쿨 시험이 끝나고 며칠간 어머니 몰래 약을 끊고 술까지 한 잔 마시고 들어온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데 온 몸이 피를 뒤집어 쓴 것 마냥 피범벅인 걸 발견하고 1층으로 내려간다. 1층에는 어머니가 목이 갈라진 채 죽어있고 유진의 기억은 오리무중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은 유진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진행된다.

 자고 일어나니 어머니가 죽어있고 나 자신은 어젯밤 개병이 도져서 어머니 몰래 집안을 빠져나가 미친듯이 달린 기억밖에 없는 이 어이없는 상황과 유진의 어렴풋한 어젯밤의 기억, 그리고 유진의 과거가 순간 이동을 하듯 전개되며 내 머릿 속으로 휘몰아치듯이 들어오면 어느 샌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망각으로 눌러보려 했던 지난 밤의 기억은 서서히 돌아오고 유진은 자신이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기억해낸다. 한참 달리다 돌아오니 바른 생활의 아이콘인 어머니가 깨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유진이 아버지의 유품인 면도칼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넌 살아있으면 안된다느니 함께 죽자느니 하며 덤비고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의도와는 다르게 어머니를 죽이게 된 것인데 유진은 대체 아버지의 면도칼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던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그 이유에 대해서도 기억나기 시작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일 때문에 외박한 해진이 지난 새벽 집 앞 바다에서 살해 당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어오고 유진의 기억이 살아남과 동시에 그 여자 또한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난 투머치 토커니까 또 이렇게 줄거리 적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런 식의 줄거리 서술을 그만 해야겠다. 이미 앞부분 만으로 저렇게 길게 써놨으니 나도 참...
 자신이 간질 환자라서 어머니와 정신과 의사인 이모에게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관리 받으며 약을 먹고 사랑해 마지않던 수영도 그만 둬야 했던 걸로 알고 있던 유진은 어머니의 일기와 상황을 통해 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15년 전 죽은 형과 아버지도 사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유진의 행동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이모가 유진의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데 유진의 엄마는 이 사실을 외면하며 동생과의 연도 끊으려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뒤 여행에서 유진이 형 유민을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상황을 목격하게 되고 그 때문에 유민을 구하러 간 남편까지 잃게 되자 제 발로 유진을 데리고 동생의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게 되는데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사이코패스, 그 중에서도 상위 1%인 프레데터. 그 때부터 유진의 엄마 지원은 동생 혜원과 함께 유진을 무해한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에 인생을 바친다. 어느 순간 자신이 간질 환자인 줄 알게 된 유진의 곡해를 바로잡아주지 않고 그대로 오해하게 놔두면서 정신과 약을 먹이고 수영도 포기하게 하고 외박은 당연히 불가능, 다 큰 아들에게 음주도 금하게 하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왕왕 약을 끊었고 종종 그렇게 오밤중에 뛰쳐나가 어두운 바다 옆 한적하고도 적막한 길에서 홀로 귀가하는 여성들의 불안감을 즐기는 위험한 취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그 날도 어김없이 뛰쳐 나갔다가 비릿한 피냄새를 맡고 주머니에 넣고 간 아버지의 면도칼로 젊은 여자를 죽이게 된 것이다. 지원은 유진이 나간 걸 눈치 채자마자 유진을 찾아 온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고 그러다 유진의 살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유진을 기다리던 지원은 유진을 보자마자 널 죽이고 나도 죽겠다며 달려들고 변을 당한다. 유진은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 이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러던 중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던 혜원이 집을 방문하면서 유진이 숨겨놓은 지원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유진은 이모까지 죽이고 옥상에 숨겨놓는데 외출했다가 돌아온 해진이 이를 눈치 채고 유진의 입을 통해 모든 사실을 듣고는 자수를 종용한다. 당연히 유진은 자수할 생각이 전혀 없고 그저 도망칠 생각만 하는데 해진에 의해 그게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자 마지막에는 해진을 배신할 계획을 세운다.

 해진은 끝까지 유진에게 자수할 기회를 주고자 하지만 유진은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해진과 함께 자수하러 경찰서에 가는 척 하면서 운전대를 돌려 바다에 빠지게 한다. 해진은 결국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죽고 유진은 왕년의 수영실력을 살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바로 새우잡이 어선에 자진해서 일하러 들어간다. 1년 후 유진은 뭍으로 나오고 그 사이 사건은 종료되어 있다. 정황상 유진의 계획대로 해진이 범인인 채로.

 아 나 또 엄청 엄청 길게 써버렸네... 뭐 아무튼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재미없게 써서 그렇게 책은 엄청나게 빠르게 읽히고 재미있었다. 특유의 짧은 문장이 묵직하게 시선을 강탈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사이코패스 이야기였네. 진짜 다음번에는 마음이 따뜻한 책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