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셍셍칩 2021. 5. 10. 15:58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

읽은 기간: 21.03.03~27, (중단) 05.08 / 26일

 

 

 와 내가 이걸 다 읽을 줄이야. 사실 좀 감격했다. 3월에 펼쳤다가 몇 주만에 포기하고 다른 책으로 넘어갔었는데 어제 문득 침대 머릿맡에 올려진 이 책을 쳐다보다가 보람선으로 갈려진 모호하게 남은 부분을 보는 순간 아 그래도 한 번 시작한건데 지금이라도 마저 읽자 싶어서 다시 꺼내들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뭐 그건 아니고 어쨌든 저녁식사 시간까지 시간이 알맞게 남았기에 후다닥 읽어버렸다. 읽은건지 그냥 눈만 따라간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마지막 장까진 넘겼다. 후... 끝!
 프리즘을 다 읽고 이 책을 시작하기까지 열흘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그동안 두 권의 책이 스쳐지나갔다. 한 권은 어렵고 두꺼운 인문도서였는데 원래 한 번 시작하면 지루해도 끝까지 읽는 편인데 빌린 책이라 이 속도로 읽다간 절대 못 읽겠는데? 하면서 대여 기간을 핑계로 그냥 포기해버렸다. 예전부터 한 번 읽어보자 했던 책이라 빌린 거였는데 처음 마주했을 땐 그 두께에 놀랐고 펼쳐읽기 시작했을 땐 방대한 지식에 놀랐다. 눈은 활자를 읽고 있는데 머리는 못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엄청나게 더딘 속도로 읽다가 그냥 덮었다. 요즘처럼 정신이 피폐해졌을 때 이런 거 읽어서 내 무지를 괜히 한 번 더 깨닫고 더 우울해질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나중에 심적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읽는 걸로. 초반 내용으로 보아 영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건 또 아니라서 다음 기회로 넘겨보기로 했다. 여기서 교훈. 나는 헛짓하지말고 소설이나 읽어야겠다.
 또 한 권은 진짜 모르고 빌렸는데 읽었던 책이었다. 첫 문장부터 묘한 기시감이 들었는데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지 하고 다음 장을 넘겼을 때 확신했다. 이거 분명 읽은건데... 근데 또 온도니에 검색하니까 나오지 않아서 뭐지 싶었는데 온도니에 줄거리를 기록하기 전에 읽은 책이었다. 그래, 히가시노 게이곤데 읽었을 법도 하지. 그 때 한창 히가시노 게이고한테 빠져있을 때니까. 그런데 또 뒷내용이 도무지 생각이 안났다. 4년 전에 읽은건데 이렇게 기억이 안날 수가 있나...? 어차피 줄거리 리뷰도 안한 책이고 읽었던 책 다시 읽을 때 중간중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을 재회하는 것도 은근 재밌는 일이라 그냥 읽으려 했는데 쉬는 날 이틀 내내 아무것도 안하고 보냈더니 흥미가 떨어져서 반납해버렸다. 여기서 또 하나 깨달은 건 나 진짜 기억력 없구나.
 어쨌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 책은 작년 말에 오빠가 문화상품권 남는 거 있으면 책 몇 권만 사달래서 샀던 책 중 한 권인데, 뭐 그러니까 오빠의 픽이었다. 티비에서 책 소개를 보고 읽어보고 싶어졌다며 고르더니 다른 책부터 읽어서인지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기에 내가 먼저 본다고 가지고 왔다. 나치스 재판 관련 책이란 것만 알고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생각보다 장벽이 높았다. 번역도서라 그런건지 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인지 좀 많이 버벅댔다. 무엇보다 접속부사의 쓰임이 안 맞는 문장이 너무 많았다. 처음엔 설마 싶었는데 그런 문장이 계속 나오자 진짜 '번역'만 한 거구나 싶었다. 가뜩이나 내용도 눈에 안들어오는데 문장 연결도 어색해서 더 머리에 안들어왔다. 아무리 '사실'에 대해 쓴 거라지만 그래도 교정볼 때 이런 건 안 보나... 방송 보고 이 책 구매한 사람들은 나처럼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이렇게 대충 해도 되는 겁니까?
 나치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책과 영화로 나와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없어도 다들 조금은 지식이 있을 것이다. 나도 딱 남들만큼만 아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덜 아는 정도? 히틀러에 대한 것도 그냥 유튜브에 있는 히틀러의 인생 컨텐츠에서 떠먹여주는 정보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세세한 이야기까진 잘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은 정말 많았지만 기억나는 것만 적어보려 한다. 그럼 몇 줄만에 끝나겠지만... 정말 내 기억력... 책은 대체 왜 읽니...
 히틀러 시절 아이히만은 유대인 대량학살 집행자로 근무했다. 그는 근무기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자 두려움을 느끼고 수용소를 탈출해 도망쳤다. 그렇게 한적한 시골에서 4년 동안 숨어지내다가 50년 초 아르헨티나로 망명을 해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신분세탁을 한 것이다. 2년 뒤 그는 독일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을 아르헨티나로 불러들인다. 온갖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아이히만은 8년 뒤인 1960년 5월, 이스라엘 비밀경찰에게 납치 된 후 체포된다. 그는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유대인계 미국인이자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관한 후 이 책을 집필한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그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어처구니 없게도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라'라고 주장했는데 이유는 자신은 그저 상부의 명령대로 행동했고 그것은 합법적이기에 무죄라는 것이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확인한 바로는 그는 싸이코패스도 아니었고 정신병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건강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좋게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거 그의 행적에서 유대인을 도와줬던 일들이 밝혀졌기도 했고 초기 유대인 이주 시기에는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구출해주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양심을 오랫동안 힘들게 했던 사건은 다른 것도 아닌 한 유대인에게 의도치 않게 작은 상처를 낸 기억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유대인을 증오한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사실, 차라리 아이히만이 광신도였거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였다면 이 재판을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평범했다. 그는 가정적인 남편이었으며 마음은 심지어 유약했다. 그런 그가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이주시키고 고통스러운 죽음 속으로 내몰았고 몇십년이 지나 법정에 서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만든 용어인데 개념만 말하면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말한다. 바로 아이히만 같은 사람이 그러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물며 이건 대량학살이었다. 이런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판단했다면, 그리고 내가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일을 그만 두면 되는 것이다. 당시 아이히만이 그 임부를 거절한다 해서 그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명령을 수행했다. 처음 그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강제로 추방시키는 업무를 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혀 죄책감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주와 학살에 관여하게 되었을 때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고 시행했다. 그에게는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판단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진급하기 위해,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상부의 지시에 끊임없이 복종했다. 결국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에 빠지고 만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있다고 해서 다 선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평범하게 행하는 행위들이 악일 수도 있다. 그런 반인륜적인 지시에 무조건 따르다보면 아이히만처럼 악의 평범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그런 많은 일을 겪으면서 도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그 일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 이게 맞나? 이게 옳은 행동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는 게 아이히만의 죄라고 할 수 있겠다.
 제목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지만 아이히만의 일대기를 적은 책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어떤 고문을 당하고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는지 접해왔지만 그 많은 유대인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주했으며 어떻게 잡혀서 수용소로 들어가게 됐는지에 대한 것은 난 사실 처음 알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독일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 퍼져있었고 그들은 조금씩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주변 국가들의 태도가 잘 이해되진 않지만 그건 내가 무지한 탓이고 확실한 건 끔찍했다는 거다.
 수용소는 상상 이상이었다. 최초의 가스방은 대체 왜 약물 주입같은 방법이 아니라 가스방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한다는 이유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히틀러는 살인이란 말 대신 안락사 제공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실 저런 표현의 개조는 학살 집행자들이 다 아이히만처럼 악의 평범성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분명 이런 일을 처리하는 수행자들 중 양심에 가책을 느낄 사람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사고를 차단시키기 위해 이런 언어규칙을 만든 것이다. 학살 대신 안락사, 최종 해결책, 재정착 등의 단어를 사용함으로 행정적인 업무처리로 느껴지게끔 만드는 방법이었다. 나치스는 유대인 학살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수용소의 가스실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동하면서 '안락사를 제공'하기 위해 열차에도 가스실을 설치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읽는 내내 기분이 굉장히 비참하고 언짢았다. 그리고 그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한 가스실은 샤워실이나 목욕실로 위장됐다고 한다. 결국 그들도 이 일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라는 게 더 끔찍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멸종시키려 했다는 건 얼마나 참혹한 일일까. 그들은 유대인들의 임신을 금지시켰고 유대인과의 결혼도 금지시켰다. 유대인을 도와주는 비유대인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이 책의 주요 주제는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이었지만 난 그보다 이 참담함에 더 눈이 갔다.
 아이히만은 재판장에서 독일 청년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하지 않은, 아버지 세대 때 일어난 일들 때문에 죄책감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건데 아이히만이 과연 독일 청년들을 그렇게까지 생각했을까? 정말 그랬다면 비밀 경찰에게 납치되기 전에 스스로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책에 나왔듯 그의 이 말은 그저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책의 내용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반의 반의 반이라도 제대로 읽었나 모르겠다.) 리뷰를 쓸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어찌저찌 쓰긴 썼다. 맞게 쓴진 모르겠고 10%라도 책의 내용이 담겼는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도 리뷰 완료! 그리고 추가로 우리나라는 왜 친일파를 이렇게 처단해 뿌리 뽑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이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옮겨적어본다.

-인간들이 자기를 이끌어주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판단 뿐이고, 게다가 그 판단이 자기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간주해야만 하는 것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일 때 조차도, 사람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줏대가 없어서 이리저리 잘 끌려다니는데 그래서 더 '악의 평범성'에 두려움을 느꼈다. 후... 정신의 기립근을 튼튼하게 단련시켜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