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
읽은 기간: 22.07.20~27 / 8일
책을 놓고있던 몇달동안 뭘 하면서 살았는지 이 책을 다 읽고나서야 되짚어봤다. 한단어로 표현하면 그냥 망나니? 그래 망나니였던 것 같다. 우울감을 핑계로 순간의 즐거움만 찾고, 불면증을 핑계로 절제하지 못할만큼의 술을 마시고, 유일하게 정상적이었던 시간마저 아무렇게나 팽개쳐뒀으니.
그러고나서 뒤늦게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다시 책을 펼쳤을 땐 왠지 예전처럼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집중...이라기보단 읽다 덮은 책을 다시 펼치고 이어 읽는 게 잘 안됐달까.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냥 언제나처럼 모로 눕거나 엎드려서 펼치고 활자를 읽기만 하면 되는건데 그게 그렇게도 안되더라... 그래서 선택한 게 이 책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 마음 속 1순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물론 공동 1위지만) 「앵무새 죽이기」.
어릴 때부터 시도때도 없이 읽어서 정확히 몇번이나 읽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참 많이도 읽었던 것 같다. 화자가 어린이여서 마냥 귀여워서 좋았고 그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는 또 전혀 귀엽지 않아서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마음 속 1위면서도 다른 책들을 읽느라 20대 중반인가부터 굳이 안읽었던 거 같은데 거의 10년만에 읽어도 변함없이 재밌었고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90년도에 출판된 구번역판으로만 읽어오다가 개정판으로는 처음 읽어봤는데 경어체 번역으로 읽으니 느낌이 색달랐다. 정말 어린 소녀가 설명하는 듯해서 순진무구한 화자의 시선이 느껴졌고 후반부로 가면서 스카웃이 성장하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실감이 됐다. (그래도 예전 번역본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중고서적으로 구판도 새로 샀다. 집 어딘가에 있을텐데 도저히 못찾겠어서... 해리포터 구판도 그렇고 대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새로 샀으니 이제 다 소중하게 보관해야지.)
이 책 줄거리는 너무 머릿속에 가득해서 굳이 정리 안해도 될 것 같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평소에 책을 읽고있는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주저없이 이 책을 말하곤 했는데 제목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앵무새를 왜 죽이냐고, 잔인한 내용이냐고. 그럼 나는 책 속에 앵무새는 나오지 않고 앵무새를 죽이는 장면 또한 나오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여야했다.
여기서 말하는 앵무새는 새가 아니다. 앵무새처럼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앵무새는 소외된 이웃으로 표현되는 부 래들리나 누명을 쓰고 수감된 흑인 톰 로빈슨같은 인물이 바로 그러하다. 스카웃과 젬 남매는 작은 마을 메이콤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하고 경험하며 고통과 좌절을 겪고 주변의 현명하고 또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통해 삶의 교훈을 배워간다.
어릴 때도 지금도 핀치 남매의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는 내 인생에서 현명한 어른의 대명사다. 어린 딸 스카웃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이해하기 쉽게 정답을 설명해주는 게 어릴 때는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더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나도 크면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고 누가 봐도 어른인 나이의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참담하기 이를데가 없다. 그래서인가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꽤 많은 문장에서 멈칫했고 꽤 많은 문장을 체크하게 됐다. 그 지혜를 조금이라도 담아두고 싶은데 가끔씩 읽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아직 결혼을 할 생각도 없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더더욱 없지만 만약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내 워너비는 역시 애티커스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삶과 아이들이 했으면 하는 행동, 가졌으면 하는 생각과 마인드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쉽게 말해 모범이 되는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이랄까. 세상에 이런 양육자만 있다면 잘못 자라는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 나도 만약 언젠가 부모가 된다면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는 앞마당에서 하지 않으실 일은 절대로 집 안에서도 하지 않으세요."라고 당당하게 소개되는 부모가 되고싶다. 그러려면 그냥 다시 태어나야 하려나...
확실히 시대적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스카웃이 숙녀로 성장하기를 강요받는 장면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긴 했다. 아무래도 1930년대면 90년 전이니까. 약 100년 전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갖고 살았구나, 저런 게 일반적이었구나 싶어 낯설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나아지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아 아직도 우리는 발전해야 하는 인식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