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온다」
「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
읽은 기간: 21.09.10~13 / 4일
스무살에 갑자기 빠져들었던 츠지무라 미즈키. 재수생 신분으로 간신히 학생기간을 연장하고 들락날락 거리던 송파도서관에서 츠지무라 미즈키를 처음 만났다. 공부에 집중이 안될 때마다 들어갔던 어문학실에서 어느 순간인가 열람실에서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한창 빠졌던 게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들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몇 번 일본 소설을 접했을 때 이미 내 취향이 아님을 느끼고 매력을 잃었던 터라 작가의 이름을 보고도 손이 갔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특이한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은 전혀 지루하거나 텅 빈 느낌이 없었다. 당시 일본 소설을 싫어했던 건 그 때까지 접했던 일본 소설에서 허무하고 완성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 맥락이 없고 어딘가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그 때 읽은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이 예상 외로 재밌어서 어떻게 보면 나에게 일본 소설에 대한 문을 다시 열어준 작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츠지무라 미즈키의 안 읽어본 다른 책들을 몇 권 사읽고 살짝 실망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는 내 베스트 작가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이번에 오랜만에 책을 사러 알라딘 사이트를 열었을 때 이 이름을 검색하게 됐다. 한동안 안 읽었는데, 오랜만에 츠지무라 미즈키의 새로운 책을 읽어볼까, 짧지 않은 세월동안 무언가 달라진 게 있을까, 필력이나 문장은 좀 달라졌을까, 여전히 내가 좋아하던 그 느낌을 지니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아무래도 근 몇 년간 내가 읽은 일본 소설은 미스터리나 스릴러 분야가 대부분이었기에 간만에 츠지무라 특유의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을 빠르게 읽어버리고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른 책들로 넘어가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 책을 집어들고 있었다. 다음 타자였던 「우리와 당신들」이 너무 두껍기도 했고 왜인지 프레드릭 배크만은 추석 연휴에 느긋하게 읽고 싶기도 해서 추석 연휴가 되기 전에 호다닥 읽을 용도로 상대적으로 얇고 제목도 따뜻한 이 책을 골랐다.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고른 책. 츠지무라 미즈키는 나에게 어렴풋하게 판타지적 느낌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었고 묘사나 서술도 디테일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알던 츠지무라 미즈키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싫었다는 건 아니다. 또 다른 느낌으로 좋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아사토를 키우는 사토코는 아사토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아사토는 사토코 부부가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였고 부부는 그런 아사토를 진심을 다해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아사토가 친한 친구를 정글짐에서 밀었다는 전화가 걸려오자 놀란 사토코는 유치원으로 달려가는데 의기소침해보이는 아사토는 사토코를 보며 자신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토코는 아들을 믿어야 할지 다친 아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지만 진심을 다해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어린 아사토를 보고 아들을 믿기로 결정한다.
사토코는 같은 아파트에 살며 이제까지 잘 지냈던 다친 아이의 엄마에게 아사토가 아이를 민 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이 때문에 다친 아이의 엄마가 아파트에 사토코와 아사코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니게 되면서 마음 고생을 하게 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친한 친구와 놀지 못하게 된 아사토가 차라리 자신이 했다고 말하면 친구와 다시 놀 수 있냐고 사토코에게 물어봐 사토코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런 아사토의 표정에서 사토코는 아들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사토코와 남편 기요카즈는 그 동안 몇 번이나 아사토에게 정말 네가 민 게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꾹 참고 아사토를 믿어주고 시간이 지나 다친 아이가 사실은 자기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며 엄마에게 혼날까봐 거짓말을 한 거라는 진실을 고백하자 긴 인고의 시간 끝에 평안을 찾게 된다.
그 시기가 지났을 때, 사토코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최근 말없이 끊기는 전화를 주기적으로 받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기에 기요카즈에게 말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전화에서는 상대가 말을 했다. 왠지 음울한 목소리의 여자는 자신이 아사토의 친모라고 소개하며, 아사토를 데리고 가고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아사토를 주지 않을거면 대가를 지불하라며 돈을 요구하는 말을 덧붙인다. 돈을 주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아사토가 입양아라는 것을 소문낼 거라는 협박과 함께.
사실 아사토는 입양아였다. 사내커플로 1년의 연애 후 결혼한 사토코 부부는 처음에는 신혼을 즐기기 위해 피임을 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피임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의 생활이 좋았고 아이야 언젠가 생길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걸려온 친정엄마의 전화로 자신이 이미 자연임신이 가능한 나이를 지나버렸다는 걸 알았을 때 사토코는 확인을 위해 병원으로 가지만 큰 이상은 없었고 병원에서 제시하는 방법대로 조금씩 임신을 위해 힘을 쏟지만 자연임신은 되지 않았다. 바쁜 남편에게 시간을 내 검사를 권했을 때 기요카즈는 짐짓 못마땅해보였지만 결국 병원 검사에 응했고 얼마 뒤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
임신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말에 희망을 가진 사토코 부부는 휴가를 맞춰가며 비행기를 타고 오카야마의 유명한 난임치료 병원까지 다니지만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몇 번의 시도가 남아있는 상황이었지만 4년간의 불임치료로 두 사람은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고 결국 사토코는 차마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는 기요카즈에게 치료를 포기하자고 말한다. 사실 임신에 대한 노력을 하기 전까지 두 사람만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아이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부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후 기요카즈와 함께 티비를 보던 사토코는 우연히 티비에서 특별 양자 결연을 중개하는 베이비 배턴이라는 단체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방송에 크게 감동받지만 남편에게는 티내지 않는다. 입양은 부모를 위한 제도가 아니고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한 활동이라는 단체의 설명은 사토코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고 얼마 후 남편과 공동으로 사용하던 컴퓨터에 베이비 배턴에 대해 검색하려던 그녀는 이미 인터넷 검색 내역에 베이비 배턴이 검색된 적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남편도 지난 며칠간 몇차례나 양자 결연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마음을 확인한 사토코는 기요카즈에게 단체 설명회에 나가보자고 권하고 설명회에 나가 다른 입양가정들을 접하게 된 부부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만났다. 아사토와 사토코 부부는. 양가의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부부의 결심은 확고했고 베이비 배턴에 등록한 후 몇 달 뒤 아이가 태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히로시마로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베이비 배턴의 대표 아사미는 이례적이지만 부부에게 아이의 엄마를 만나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를 만나자마자 푹 빠진 부부는 그 제안을 승낙한다. 그렇게 호텔 1층 식당에서 마주한 아이의 친모는 자신들과 동년배로 보이는 부모를 둔 어린 여중생이었다. 히카리라는 이름의 작은 여학생은 부모와 언니와 함께 나와있었고 그런 친모에게 사토코 부부는 고맙다며,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한다. 그로부터 6년 뒤인 지금, 자신을 아사토의 친모인 히카리라고 소개한 한 여자가 사토코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돈을 요구한 것이다.
기요카즈와 의논을 한 사토코는 전화를 건 여자가 아사토의 친모가 아니라는 결론을 낸다. 베이비 배턴은 2년 전 사라졌고 다른 기관에 흡수됐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 가족의 신상정보가 유출돼 누군가 그 정보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려는 게 아닐까 하고 부부는 추측했다. 그들 부부가 6년 전 갓 태어난 아사토를 데리러 갔을 때 만난 아사토의 친모는, 그러니까 아사토가 히로시마 엄마라고 부르는 '우리의 엄마'는 적어도 아사토를 이용해 돈을 요구할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말 아사토를 데려가기를 원했다면 모를까. 아사미씨는 '우리의 엄마'가 다른 미혼모들과 달리 아사토를 임신했을 때 배를 자주 만지며 아사토를 기다렸고 하루하루 일기를 썼다고 했었다. 그리고 사토코 부부를 만났을 때 아사토에게 보내는 편지를 핑크색 편지지에 곱게 적어서 언젠가 아사토에게 진실을 말하게 된다면 전해주길 부탁한다며 건넸었다. 그런 히로시마 엄마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사토코는 협박범을 아사토가 유치원에 있을 시간에 집으로 그녀를 불렀고 회사 일로 바쁜 기요카즈도 시간을 내 함께 여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여자는 오지 않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별 일 아닌 해프닝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부부가 안심하려던 순간 초인종이 울린다. 하얀 구두를 신고 나타난 여자의 얼굴에서 사토코는 6년 전 만난 히로시마 엄마의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사토코와 기요카즈는 보통의 특별 양자 결연에서는 친모와 양부모가 만날 일은 없지만 자신들은 6년 전 아사토의 친모를 본 적 있다며 여자에게 당신은 히로시마 엄마가 아니라고, 히로시마 엄마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사토와 이 동네로 이사왔을 때부터 아사토가 입양아라는 걸 주변인들에게 스스럼없이 공개했었고 아사토 또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던 시기부터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했기에 여자의 협박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도 설명한다. 더구나 여자는 아사토의 나이도 제대로 몰랐다. 아사토는 내년이 돼야 학교에 입학할 나이였는데 통화할 때 여자는 아사토가 학교에 다닐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엄마가 아이의 나이조차 모를리가 없다며 사토코는 여자에게 정체를 묻고 바로 그 때 아사토가 유치원에서 돌아온다. 결국 여자는 그대로 집을 떠나고 사토코 가족은 다시 평화를 얻는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사토코가 아사토와 집에 있을 때 집으로 경찰이 찾아오고 한 달 전 이 집에 왔던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여기 온다는 말과 함께 실종됐다며 협조를 요청한다. 사토코는 여자가 이 집에 온 건 맞지만 누군지 모른다고 대답하며 대체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묻자 경찰의 입에서는 아사토 친모의 이름이 흘러 나온다. 여자는 아사토의 친모, 히카리였던 것이다. 순간 사토코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눈 앞이 캄캄해진다.
중학생 히카리는 고지식한 교사 부모 밑에서 자랐다. 히카리의 부모는 친구들의 부모님과 비교해도 매우 보수적이었다. 히카리와 언니에게 휴대폰을 사주긴 했지만 사용은 거실에서만 가능했고 방에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거실에서도 휴대폰만 붙잡고 있으면 잔소리 하기 일쑤였고 그런 문제로 이따금 언니와 몰래 부모님 험담을 하긴 했지만 처음엔 그게 다였다. 어느 날 언니는 히카리에게 부모님이 문자를 몰래 훔쳐본다며 비밀번호를 걸어놓으라고 조언한다. 사실 히카리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문자로 친구와 다른 친구에 대한 험담을 했을 때 엄마가 히카리에게 넌지시 학교에 왕따문제 같은 건 없냐고 물어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히카리의 문자 상대들은 그래봤자 친구들이었기에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고 얼마 뒤 남자친구가 생기자 그제야 히카리도 언니처럼 휴대폰에 암호를 걸어놓게 된다.
상대는 같은 학교의 성격좋고 인기도 많은 남학생 다쿠미였는데 자신이 짧은 머리에 인기 있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고백받았을 때 히카리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다쿠미같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꼈다. 그렇게 다쿠미는 히카리의 첫사랑이 된다. 첫 연애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첫키스는 달콤했고 다쿠미와의 비밀스러운 시간은 늘 자신을 억압하는 부모님에 대한 반항으로도 느껴져 더 짜릿했다. 여전히 딸들을 구속하는 부모님을 보며 속으로 나는 당신들이 모르는 걸 하고 있어 라는 생각에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프라이드도 스멀스멀 피어나기도 했다. 다쿠미의 집에 들락거리던 히카리는 자신의 순결을 다쿠미에게 주기로 결심했고 둘은 잠자리까지 함께 하게 된다. 첫 경험 후 아직 초경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히카리의 고백에 다쿠미는 안심하며 관계를 가질 때 피임을 하지 않는다.
다쿠미와의 관계가 진전될 수록 히카리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새로운 지식들을 쌓아갔지만 한가지는 몰랐다. 초경을 시작하지 않아도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난히 몸상태가 안좋았던 날, 엄마에게 끌려 학교 대신 병원으로 향했을 때 의사의 입에서 나온 임신소식에 히카리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은 엄마도 히카리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의사는 심지어 지금은 중절이 불가능한 시기라고 했고 그 날 이후로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히카리의 의견을 묻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그 사이 모든 결정이 내려졌다. 늘 속으로 부모님을 경멸하고 비웃었던 히카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이 닥치자 가족의 울타리가 안전하게 느껴졌고 얌전히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
부모님은 다쿠미의 부모님과 연락을 취했고 다쿠미의 부모는 필요한 금액을 다 대겠다며 아이를 지우라고 권한다. 그 날부터 히카리는 다쿠미를 만나는 게 금지됐기에 다쿠미의 생각이 어떤지는 히카리도 알 수 없었다. 부모님의 결정이 끝났을 때도 그 결정에 다쿠미의 의사가 반영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히카리의 부모는 히카리의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결정하고 히카리를 히로시마에 있는 입양센터인 베이비 배턴의 기숙사로 보낸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히카리는 그렇게 엄마가 알려준 곳으로 가 베이비 배턴의 대표 아사미씨를 만났고 기숙사에 입소하게 된다. 학교에는 히카리가 아픈 걸로 되어있었고 아이만 낳고 돌아오면 바로 학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부모가 다 계획을 세워놨기에 히카리는 그렇게 처음 가 본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아이를 낳을 때까지 몇 달동안 함께 생활하게 된다.
기숙사 생활은 이제까지 히카리의 삶과 매우 달랐다. 방은 다른 임신부와 함께 써야했고 음식이며 뭐며 다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이 곳에서 드는 모든 비용은 나중에 아이를 입양해가는 부부가 부담하게 된다고 했다. 히카리와 같은 방을 쓰게 된 임신부 고노미도 그렇고 다른 임신부들도 타지역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히카리처럼 어린 사람은 없었고 스무살 안팎의 임신부들은 뱃속의 아기를 짐으로 생각하며 대부분 아이를 빨리 낳아버리고 싶어했다. 룸메이트 고노미는 히카리와 나이차이는 조금 났지만 밝고 스스럼없는 성격이었고 때문에 히카리는 그녀에게 금방 말도 놓고 함께 밥도 차려먹으며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임신부들은 막달에 들어와 한달정도 살다 아이를 낳은 뒤 바로 나갔기에 히카리가 몇 달 동안 머무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임신부들을 만나게 된다. 고노미도 히카리보다 먼저 아이를 낳고 퇴숙하게 되었는데 아이를 빨리 낳아버리고 다시 일하러 돌아가겠다던 처음 계획과 달리 떠나던 날의 그녀의 말에서는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사미씨의 말에 따르면 고노미가 아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아봤을 때 언젠가 만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만나지 못하더라도 당당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은 히카리의 앞으로의 삶에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 히카리가 방황을 할 때, 홀로 남겨졌을 때, 그래서 비교적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술집에 취직할까 하는 생각이 종종 히카리를 유혹할 때마다 히카리를 지켜줬던 것이다.
기숙사에 살며 산책을 하거나 장을 봐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히카리는 종종 아이와 대화를 하곤 했다. 이 곳에 있는 다른 임신부들과 달리 히카리는 불러온 배를 만지기도 했고 아이가 예정일보다 며칠만 더 늦게 태어나줘서 자신과 생일이 같아지길 바라기도 했다. 어느 날 홀로 동네를 걷던 히카리는 아름다운 하늘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앞으로 만날 일 없는 아이지만 아이와 함께 눈부시게 아름다운 히로시마의 하늘을 봤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겠다고.
히카리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예정일에 맞춰 태어났기에 히카리와 생일이 같을 순 없었다.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베이비 배턴의 규칙에 따라 히카리는 아이와 헤어지는 그 순간에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이를 안아볼 수 있었다. 아사미씨는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들이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히로시마까지 왔다며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전해줬다. 히카리는 아이와 헤어지면서 아사미씨에게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하고 아사미씨는 좀처럼 없는 일이지만 아이의 새 부모에게 물어보겠다고 답한다. 그래서 히카리는 히카리를 데리러 온 가족들과 함께 호텔 라운지에서 아이의 새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나이가 있어보이는 부부는 어린 히카리에게 아이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막상 그들을 만나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히카리도 연신 죄송하다는 말고 고맙다는 인사만 반복했다.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아사토라고 정했다며 잘 키우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떠났고 히카리도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히카리의 부모는 히카리를 다시 학교에 보냈고 친구들은 히카리가 아파서 학교를 못나온 걸로 알고있었기에 히카리도 그런 척 했다. 여전히 다쿠미와는 따로 만날 수 없었지만 멀리서 본 다쿠미는 자신이 몇 달 동안 학교를 떠나 아이를 낳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온 동안 여전히 몇 달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히카리는 단 한순간도 다쿠미를 잊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다쿠미와 따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들 관계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쿠미는 히카리에게 사과를 했고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히카리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다쿠미의 말에서 히카리는 다쿠미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잘못됐다고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히카리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후 다쿠미는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렇게 어린 연인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이제까지 부모의 뜻대로 했듯이 앞으로도 그래야했지만 히카리는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엄마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남몰래 털어놓은 언니도 히카리 눈에는 자신에 비해 한없이 경험이 없어보였고 부모님 또한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와 동네에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숨겼으면서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외삼촌에게는 사실대로 말했다는 것에 부모에 대한 환멸이 되살아났다. 자신과 아이에 대해 숨기기 급급했으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예의없고 배려없는 친척들에게는 모든 걸 말했다니. 집과 현실이 견딜 수 없어진 히카리는 가출을 감행한다. 목적지는 히로시마였다. 히카리는 아사미씨를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좋으니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히카리도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임신부들이 대부분의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딱히 할 일이 없을 걸 알고 있었지만 아사미씨는 히카리의 가족에게 히카리가 어디 있는지 알린다는 조건으로 히카리를 받아주고 방 하나를 내어준다. 히카리는 히로시마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 기약없는 가출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져 몇 달이나 히로시마에 머물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사미씨는 히카리를 따로 불러 베이비 배턴이 조만간 사라진다는 소식을 전한다. 더이상 베이비 배턴을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다른 단체에 베이비 배턴을 양도하기로 했으며 곧 문을 닫을 거라는 것이었다. 아사미씨는 히카리에게 다시 본가로 돌아가기를 권하지만 히카리는 그 권유를 거부하고 히로시마에 남겠다고 한다. 그래서 아사미씨는 숙소를 제공하는 신문배달 일자리를 히카리에게 소개시켜준다.
히카리가 아사토의 가족의 연락처를 알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사미씨가 자리를 비운 어느 날 아사미씨에게 온 우편물을 방에 갖다놓으러 간 히카리는 수많은 서류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베이비 배턴을 인수할 기관에 넘기기 위해 아사미씨가 정리중인 것 같았다. 히카리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서류더미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냈고 거기서 아사토가 살고있는 집주소를 발견한다. 이 집에 연락할 일은 아마 평생 없겠지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히카리는 그 정보들을 따로 메모해둔다.
신문회사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히카리는 그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직원이 자주 바뀌는데다 상대적으로 여자가 적었기 때문에 남자들의 대쉬도 많이 받았고 그 중 잠자리까지 가진 남자도 있었지만 더이상 옛날 다쿠미에게 느낀 감정은 느낄 수 없었다. 어떤 남자는 온갖 달콤한 말로 히카리를 유혹하고는 잠자리를 갖고 바로 퇴사하기도 했다. 숙소가 제공되는 일자리가 흔치 않은 만큼 큰 돈도 벌 수 없었다. 사실 숙소가 있으면서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직업이 있기는 했다. 히카리는 젊었기에 충분히 그런 곳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히카리는 고노미를 생각하며 힘들어도 이 곳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와 가까워진 히카리는 어느 날 여자에게 의외의 부탁을 받는다. 여자는 히카리에게 보증을 부탁했고 히카리는 그것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거절했다. 여자도 순순히 물러났기 때문에 별 일 없을 줄 알았다. 얼마 후 여자는 자취를 감췄고 이걸로 끝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웬 정장입은 남자들이 신문사에 찾아와 히카리의 이름이 적힌 보증 서류를 들이대며 히카리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히카리에게 그 돈을 갚을 의무나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사인은 히카리의 것이 아니었고 그저 사라진 여자가 보증 서류에 히카리의 이름을 적었을 뿐이었기에 거부하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남자들은 막무가내였고 끊임없이 히카리에게 겁을 줬다. 원한다면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도 했다. 남자들이 말하는 일자리란 분명 술집일 터였다. 견디다 못한 히카리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도주한다. 자신과 전혀 연이 없는 곳으로,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지역, 허름한 호텔에 몸을 숨긴 히카리는 얼마간은 모아놓은 돈으로 숙박료를 지불하며 지내지만 돈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숙소를 제공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던 중 히카리가 묵던 호텔에 청소 아주머니가 일을 그만두면서 히카리는 그 자리에 운좋게 들어가게 된다.
호텔 청소일을 시작한 히카리는 시간이 흐르자 신문사에서 도망나올 때 역까지 신문사 소유의 자전거를 타고 갔다는 죄책감에 신문사에 사죄의 편지를 보낸다. 자전거를 어디다 두었는지를 적은 짧은 편지였다. 편지를 보내고 얼마 뒤 히카리가 있는 곳에 일전의 그 남자들이 찾아온다. 히카리는 보내는 주소를 쓰지 않았지만 우체국 소인을 보고 남자들이 이 지역에서 여자가 숙박하며 일할 수 있는 일자리들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 것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고 다시 남자들에 의해 압박 당하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신문사에 있던 서류에서 히카리 본가에 대한 정보까지 입수해 가족들을 빌미로 히카리를 협박하기까지 했다. 히카리는 가족들에게 이런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면 안되는 선택을 하고 만다.
호텔 직원들 중에는 가장 나이가 많고 사장의 신임이 두터운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다른 직원들의 고민도 종종 들어주며 직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다. 그런 노인이 호텔의 현금을 넣어두는 금고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히카리는 노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금고를 열어 현금을 훔치고 만다. 당연히 갚을 생각이었고 빨리 빚 문제를 해결해 남자들에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돈을 챙긴 남자들은 만족해하며 떠났고 히카리는 기회를 봐 남은 돈을 일단 금고에 다시 넣어두려 했다. 하지만 히카리의 소행이라는 것을 노인은 알고 있었다. 히카리를 따로 불러낸 노인은 히카리의 이야기를 듣고 갚지 않아도 될 돈을 갚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히카리를 안타까워하지만 돈은 빠른 시일내로 돌려놔야 한다고 말한다.
순간 히카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사토와 그의 부모였다. 히카리는 결국 노인에게 근처에 친척이 있다고, 돈을 구해오겠다고 말하지만 선뜻 아사토 가족 앞에 나설 수 없었다. 몇 번의 전화를 여보세요 만 듣고 끊던 히카리는 더는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약속을 잡는다. 약속의 날 히카리는 아사토의 집에 가져가기 위해 유명한 화과자점에 줄까지 서서 오픈을 기다리지만 하필 그 날 오픈 시간이 늦어지고 약속 시간에 늦고 만다. 돈을 요구하러 가는 주제에 선물을 사갈 생각을 했다니, 자기 자신이 한심해진 히카리는 과자를 사는 걸 그만두고 이왕 늦은 거 초라해보이지 않기 위해 옷집에 들어가 몸을 단장하고 아사토의 집으로 찾아간다.
아사토는 학교에 갔는지 집에 없었고 사토코 부부가 히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토코와 기요카즈는 히카리를 다다미방으로 안내하고 히카리에게 당신이 아사토의 친모일리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진짜 히카리라면 아사토의 나이를 모를 수 없을 거라고. 그제야 히카리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토코가 꺼내온, 아사토를 입양보낼 때 함께 보냈던 히카리 자신이 과거에 쓴 편지봉투를 보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느낀다. 사토코 부부와 아사토가 친모인 '히로시마 엄마'를 얼마나 신임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히카리는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사토코가 히로시마 엄마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화를 내자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현재의 자신은 비록 그럴 수 없겠지만 그들의 '히로시마 엄마'는 지금처럼 이 따뜻한 집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계속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때 아사토가 유치원에서 귀가하는 소리가 들리고 깜짝 놀란 사토코 부부와 히카리는 숨을 죽인다. 집이 비었다고 생각한 아사토는 함께 온 아사토 친구의 엄마가 잠시 맡아주러 데리고 가고 그 사이 사토코 부부는 히카리를 내보낸다.
돌아갈 곳이 없던 히카리는 방황하기 시작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아사토의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날, 육교 위에 있던 히카리 뒤에서 난데없이 누군가가 나타나 히카리를 껴안는다. 찾았다- 라는 말과 함께. 히카리의 뒤에는 한 달 전 만났던 사토코가 서있다. 세차게 퍼붓던 비가 주춤할 때, 사토코 뒤에 숨어있던 아사토가 히카리를 보며 누구냐고 묻고 사토코는 주저없이 '히로시마 엄마'라고 소개한다. 사토코의 단호한 대답 놀란 히카리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처음으로 마주친 아사토의 눈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히카리에게 시선을 옮긴 아사토는 눈을 빛내며 아앗! 히로시마 엄마라고? 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어두웠던 히카리의 삶에 아침이 온다.
이 책에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난임으로 고생하던 사토코 부부와 어린 나이에 임신하게 된 히카리. 사토코 부부는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실패하고 포기한 채 살아가다가 입양에 대해 접하고 비로소 아사토를 만나게 된다. 비록 피가 섞인 친자식은 아니지만 친자식보다 더 사랑과 믿음을 주며 키우고 그래서인지 아사토는 심지가 굳은 아이로 자란다. 아이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입양 사실을 공개했고 당당하게 가족을 만들어 살아간다. 그렇게 혈연관계 없는 세 사람이 만나 진짜 가족을 이루어낸다.
히카리는 부모와 언니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 받지도 못했다. 히카리의 부모는 자식을 소유물로 보고 휘두르려만 했고 히카리의 감정이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식보다 외부에 보여지는 모습을 중시했기에 히카리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떠나게 만든다. 아직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히카리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나가게 되고 나름대로 삶을 개척해보려 분투하지만 미래는 점점 꼬이기만 한다. 더는 도망갈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이르렀다고 생각됐을 때 한 잘못된 선택으로 진정한 나락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사토코는 나락 속에 허우적거리던 히카리를 찾아냈다. 부부에게 아이를 선물한 히카리를, 그게 히카리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열심히 찾아다녔을테고 비오는 날 저 멀리 히카리를 발견했을 때 다시는 놓치지 않기 위해 달음박질쳤을 것이다. 비록 피가 섞인 진짜 가족에게는 외면당했지만 전혀 연결성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히카리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 것이다. 히카리도 말로만 존재하던 '히로시마 엄마'에서 현실의 '히로시마 엄마'로 아사토 앞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일본도 혈연을 중시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자신의 핏줄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때문에 부모없는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아이를 입양하더라도 비밀에 부치고 친자식인 것처럼 키운다. 뭐 이런 것들은 대부분 자극적인 드라마로 접한 내용이라 진짜 다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츠지무라 미즈키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취재했을 때 의외로 입양 사실을 공개하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의 친모도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그 사실이 너무 생소해서 좀 충격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핏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좀 어폐가 있는 것 같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진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족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서로를 무한대로 사랑하며 죽을 때까지 서로를 믿을 거라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가족들이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서로를 헐뜯는다. 피가 섞인 진짜 가족인데도 그렇다. 오히려 내 친자식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가. 그런 모습들이 주변에서 왕왕 보인다.
사토코의 친정엄마의 발언도 히카리의 부모님을 연상시켰다. 평온하게 잘 사는 딸에게 난데없이 전화해 아이 이야기를 꺼내질 않나 오랜 불임치료 끝에 입양을 결심한 딸에게 거침없이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나. 그런 언행은 자식의 인생도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박힌 사람들이 주로 하는 행동들 아닐까. 어쩌면 사토코도 그런 엄마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히카리를 더 잘 이해할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토코가 물색없는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은 뒤 독백하듯 생각한 말이 꽤 오래 여운에 남았다. 내 속으로 낳기만 하면 자식이 뜻대로 키워진다는 말인가. 단지 그것만으로 더 따질 것도 없이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오만하지 않은가. 사토코는 이렇게 생각했다. 난 아직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지만 만약 혹시라도 아이를 갖고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끊임없이 확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의 의사를 내 의사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끝까지 믿고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진짜 가족'이 되는 건 이렇게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