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아몬드」
손원평
★★★☆☆
읽은 기간: 19.11.15~20 / 6일
이 이야기는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결여된 한 남학생의 이야기이다.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게 태어난 윤재는 어릴 때부터 뭔가 다른 아이였다. 반대하는 결혼으로 엄마와도 연을 끊은 윤재의 엄마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표정이 없는 아들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게 태어나 아들이 공감능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윤재 엄마는 윤재가 다른 사람들 틈에서 평범하게 크길 바라며 여러가지 훈련을 시킨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이나 말, 표정을 지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굳이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윤재는 어려서부터 배우고 자란다. 여자 혼자 아들을 키우기 버거워진 윤재모는 결국 친정엄마에게 연락을 하고 어린 윤재는 자신을 예쁜 괴물이라 부르는 외할머니와 엄마와 셋이 살게 된다.
윤재엄마와 할머니에게 감정 교육을 받으며 그럭저럭 자라는 윤재는 어느 정도 엄마의 뜻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섞여서 살아간다. 윤재의 16살 생일,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무슨 일이 있어도 번화가로 나가 늘 가족 외식을 하는 날이었다. 엄마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그 날만 되면 환하게 웃었고 며칠 전 윤재가 흘리듯 꺼낸 냉면 이야기를 기억한 할머니는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맛없는 프렌차이즈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고 나오면서 엄마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자두맛캔디 껍질이 바구니에 담긴 걸 본 윤재는 직원이 사탕바구니를 채워줄 때까지 기다려 사탕을 챙긴다. 그 때 가게 밖으로 미리 나가있던 엄마에게 한 남자가 망치질을 하고 윤재는 유리문을 통해 그 광경을 목격한다. 문 밖으로 나가려는 윤재를 본 할머니는 바깥에서 문을 막아서고 남자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칼로 찌른다. 여러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던 남자는 마지막엔 자기 자신을 찌르고 사건은 마무리 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최근까지 불행한 삶을 살아왔고 3년간 집에만 처박혀 있다가 누구든 웃는 자는 나와 함께 갈 것이라는 유서를 쓰고 나온 사람이었다.
윤재는 그렇게 혼자가 되고 엄마가 운영하던 헌책방 위에서 빵집을 하는 심박사가 나타나 엄마와 친구였다며 윤재를 돌봐주겠다고 하고 윤재는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자신에게 늘 조언과 감정 교육을 시켜주던 엄마가 없어지자 윤재는 조금씩 자신의 원래 모습대로 행동하게 된다.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희생자였다는 것과 맞물려 이슈를 좋아하는 동급생들의 타켓이 되지만 윤재는 역시 윤재답게 아무렇지 않다. 엄마의 헌책방을 그대로 운영하며 윤재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엄마를 돌보러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눈여겨 보고있다는 걸 깨닫는데 며칠 뒤 그 남자는 책방으로 윤재를 보러 나타난다. 죽어가는 자신의 아내를 만나달라고 부탁한 남자는 유명한 대학교수로 오래 전 아들과 놀이공원에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린 아내가 자색감에 마음의 병으로 앓아누웠다가 곧 세상을 뜰 것 같자 아들과 비슷하게 생긴 윤재에게 아들 역할을 부탁한 것이다. 윤교수는 사실 얼마 전에 아들을 찾았지만 아내에게 보여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윤재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고 윤재는 잠시 망설이지만 제안을 수락하고 윤 교수의 아내는 윤재를 아들로 알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며칠 뒤 숨을 거둔다. 그리고 그녀의 장례식에서 윤재는 얼마 전 찾았다는 윤 교수의 친아들을 보게 된다. 얼마 전 윤재의 반으로 전학 온 윤이수 라는 아이였는데 소문에 의하면 살인 빼고 다 해봤다는 엄청난 비행 청소년이었다. 이수는 자신을 곤이 라고 불렀고 곤이는 윤재가 자기 대신 아들 역할을 맡았던 아이라는 걸 알게 되자 노골적으로 윤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감정표현 불능증인 윤재는 곤이의 괴롭힘에 끄떡도 하지 않고 곤이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줄 수가 없다. 결국 곤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윤재를 심하게 폭행하고 모든 걸 알게 된 윤 교수는 곤이에게 손찌검을 하며 부자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윤재가 어떤 아이인지 알게 된 곤이는 윤재의 헌책방에 드나들며 조금씩 윤재와 가까워진다. 곤이는 윤재의 반응을 보기 위해 윤재 앞에서 나비를 바늘로 찌르고 날개를 찢는 걸 보여주지만 오히려 본인이 더 괴로울 뿐이다.
윤재는 어느 날 같은 반 여학생인 도라가 뛰는 모습을 보게 되고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 된다. 심박사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심박사는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윤재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걸 이야기하던 심박사에게 조금씩 이야기를 숨긴다. 남들과 다른 모습의 윤재에게 흥미를 느낀 도라는 어느새 윤재의 친구가 되고 윤재와 점점 가까워진다. 윤재는 곤이에게 이 이야기를 할까 하지만 망설이다 하지 않고 그러던 중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에 윤재는 가지 않았던 수학여행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한다. 모두들 곤이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곤이가 아니라 해도 믿지 않는다. 곤이는 자신이 하지 않았다며 윤재에게 너도 내가 범인이라 생각하느냐고 묻고 윤재는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다고 대답한다. 곤이가 원하던 대답은 너를 믿는다는 말이지만 윤재에게는 그런 감정은 없었고 그랬기에 그런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곤이는 그 길로 소년원 시절 만났던 악명높은 철사형에게로 가고 뒤늦게 윤재는 심박사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심박사는 곤이는 너에게 어떻게 했느냐고 묻고 나를 찾아와줬다는 윤재의 말에 심박사는 그럼 너도 그렇게 해주면 된다고 대답한다. 윤교수는 뒤늦게 자신이 곤이와 많은 대화를 나눈 적 없다는 걸 깨닫고 윤재는 곤이가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야 하며 자신 또한 곤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윤재는 곤이가 갔다는 철사형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 그 곳에서 피폐해진 곤이를 발견한다. 윤재는 곤이에게 돌아가자고 하지만 곤이는 듣지 않고 그 때 철사형이 나타난다. 철사형은 곤이에게 칼을 쥐어주며 이제 너가 행동해야 할 때라고 하고 곤이는 차마 윤재를 찌르지 못한다. 윤재는 알고 있었다. 곤이는 자신이 아픈 것보다 남이 아픈 것을 더 보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걸. 격투 끝에 윤재는 곤이를 찌르려는 철사의 칼을 대신 맞아 중퇴에 빠지고 때마침 윤교수가 끌고 온 경찰에 철사형은 잡히게 된다. 병원으로 옮겨진 윤재는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고 깨어난 윤재에게 곤이는 차마 나타나지 못한다. 하지만 곤이는 편지를 통해 다시 잘 살아갈 것임을 전하고 심박사는 윤재에게 기적적으로 깨어난 엄마를 만나게 해주며 윤재는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걸 흘리게 된다.
어찌보면 한 아이의 성장기를 그린 거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기적같은 이야기를 그린 거 같기도 한데 어찌됐건 생각을 좀 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윤재는 선천적으로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태어난 아이지만 새로운 관계를 통해, 많은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 감정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런 성장이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간의 뇌라는 건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거니까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겠지.
윤재가 선천적인 괴물이라면 곤이는 후천적인 괴물이었다. 너무 어렸을 때 가족을 잃어버리고 중국인 노부부 사이에서 자라다가 여기저기 옮겨가며 힘들게 살아온 아이였다.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저 시설에서 또 이 시설로 옮겨다니며 작은 몸집으로 살기 위해 악바리처럼 표독스럽게 행동했지만 마음은 여린 아이었다. 가까스로 다시 만난 아버지는 자신을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보여주지 않았고 그렇게 엄마를 다시 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뒤 아빠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더 엇나가게 되는 아이었다. 불량 청소년으로 살다가 결국 집을 떠나 더 악한 곳으로 발을 디디지만 자신을 찾으러 온 친구를 찌르지 못했고 갱생할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정상적이라는 것, 인간적이라는 것, 평범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윤재엄마가 윤재에게 가르친 것처럼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인지에 대한 메뉴얼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어느 기준으로 정할 수 있는 걸까. 오히려 그런 것으로 우리가 서로를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공감이라는 건 무엇일까. 타인에게 공감을 한다는 것, 마음 깊이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옳은 감정'이라는 게 무엇인지, 사실 감정에 옳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어느 정도 범위를 넘어서면 안되겠지만 어느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것이다. 남들이 그 상황에 화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나도 화가 나면 안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감정이란 것은 본디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우리가 너무 각박한 테두리에 각자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윽 그럼에도 모르겠다. 이런 상대적인 감정에 테두리를 정해놓는 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도를 벗어나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 말이다.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