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셍셍칩 2021. 8. 25. 07:37

「아가미」

구병모

★★★☆☆

읽은 기간: 21.08.12~18 / 7일

 


 한 1년 전이었나, 머리하러 갔는데 읽던 책을 안가져가서 이 책을 교보 e-book으로 잠깐 대여해서 앞부분을 살짝 읽은 적이 있었다. 별 감흥이 없어서 이어서 쭉 읽진 않았고 나중에 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도 딱히 빌릴 생각은 안했었다. 일단 제목이 마음에 안들었고 미용실에서 잠깐 읽었던 부분의 느낌이 썩 좋게 다가오지 않았달까. 그래도 작가님 이름이 특이한 편이었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후 같은 작가가 쓴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게 되었을 때 나쁘지 않았고 그 때 느꼈던 서두의 지루함이 여전할까 싶어 다시 한 번 시도해봤다. 근데 달랐다. 그 날 그 미용실에서 느꼈던 지리한 느낌은 일단 없었고 내용도 참신했고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그래서 완독- 물론 뭐 시작하면 웬만하면 다 읽지만.
 이야기는 한 술에 취한 직장인 여성이 회식을 마치고 한강 다리를 건너다 난간 사이에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휴대폰을 줍기 위해 다리를 넘다가 한강물에 빠지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여자는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모시는 고단한 현실에 힘든 회사 생활까지 겹쳤기에 투신자살을 한 게 아닌가 했지만 여자는 자신은 절대 투신한 게 아니라고 진술한다. 한강 물속에 빠진 여자를 발견한 강변의 목격자들이 급하게 119를 불렀지만 여자는 물속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구조된다. 남자는 여자를 붙잡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까운 쪽이 아닌 한강 반대편으로 가 여자를 강가에 올려준다. 남자는 심지어 자기의 편의대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며 여자의 저체온증을 걱정하며 신문지라도 덮고 있으라고 충고하고 다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 속으로 사라진다. 여자는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분명히 보았다고 한다. 그의 귀 뒤에 있는 마치 아가미를 연상시키는 구멍을. 그리고 그의 뒷목에 보이는 반짝이는 비늘을. 자신이 미친 소리를 하는 걸로 보인다면 보고서를 다르게 해서 올려도 상관없다며 여자는 진술을 마치고 치매 걸린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몇십년 전,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이미 몇 달간의 월급이 밀린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동시에 아들과 단둘이 사는 집의 월세도 몇달째 밀려있었다. 집주인의 최후통첩이 있던 날, 남자는 아들을 데리고 회사 사장을 찾아가지만 사장은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하며 어린 아들을 힐끗 보고 정 힘들면 아이라도 앵벌이단에 팔아버리라고 말한다. 그 말에 남자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근처에 있던 모조 백자로 사장의 머리를 내리쳐 죽인 뒤 아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이내촌으로 들어간다. 남자는 이내촌 안에 있는 이내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없는 세상을 홀로 살아갈 아이를 상상한 뒤 아들과 함께 이내호에 몸을 던진다.
 무언가 호수에 빠지는 소리를 들은 노인은 지난 10년간 접근이 차단되어있지만 다들 몰래몰래 들어가곤 하는 이내호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건져올린다. 아직 다섯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였지만 늙은 노인이 들기엔 역부족이었고 힘에 부친다 싶을 때 입버릇이 고약한 노인의 손자 강하가 나타나고 투덜대면서도 아이를 업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들여다보던 노인과 강하는 아이의 귀 뒤에서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상처인 줄 알았지만 상처가 아닌 무언가가 아이의 양쪽 귀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 날, 이내호에서는 성인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고 남자의 차로 추정되는 버려진 차 안에서 어린이용 음료가 발견되자 경찰은 유아 시신이 한 구 더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수색을 시작한다. 노인은 지금이라도 아이를 경찰에 넘기려 하지만 강하는 지금 이 아이를 경찰에 넘긴다면 물고기 사람이라는 이유로 어디 이상한 연구실 신세가 될 거라며 강하게 만류한다. 그렇게 아이는 그 집에 살게 된다. 깨어난 아이는 이전 기억을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기에 노인과 강하는 아이를 곤이라고 부르며 함께 지내게 된다.
 강하는 노인의 딸인 이녕이 아비에게 버리고 간 아이였다. 이녕은 젊은 시절 배우를 꿈꾸며 상경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고 기획사 사장과 동거하며 그에 의해 여러 술자리에 불려나가다 강하를 낳게 된다. 언젠가는 꼭 배우를 만들어주겠다는 사장의 말을 믿은 이녕은 어린 강하를 아버지에게 버리듯 맡겨놓았고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강하를 찾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강하는 입이 걸었으며 성격 또한 불같았다. 강하의 분노는 곤에게도 향해있었는데 적어도 곤에게는 분노로 느껴졌다. 강하는 걸핏하면 곤에게 언제든 횟집에 갖다가 팔아버릴 거라고 협박하고 괴롭혔기에 곤은 늘 위축된 채로 지내야 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강하가 근처 술집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집에 이녕이 나타난다. 처음 이녕은 곤을 보고 강하인 줄 알았지만 이내 아니라는 걸 알고 예의상 곤에게 누구냐 묻지만 딱히 대답을 기대하진 않는다. 사실 이녕은 결국 사장에게 버림받은 뒤 사장이 결혼한 재력가 여성에게 얼마간의 돈을 받아 그 돈으로 환각제를 사서 고향집에 내려온 것이었다. 강하와 노인은 이녕의 등장에 진저리를 치며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라도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갔기에 곤은 자연스럽게 이녕과 함께 있을 시간이 늘어났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없는 사람인 냥 살아가던 곤이었기에 사회성이 턱없이 부족했고 때문에 곤은 이녕이 먹는 약들이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내는 이녕에게 식사를 챙겨주며 살뜰히 보살핀다. 그런 곤에게 이녕은 자신이 보는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약을 먹고 잠이 들면 항상 아름다운 거대한 물고기를 보는데 물고기와 닿기 전에 언제나 꿈에게 깨어버린다고. 약을 늘려보아도 잠든 시간만 늘어날 뿐 환상이 끝나는 지점은 늘 똑같다고.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서 머리를 감던 곤의 등에서 아름다운 비늘을 목격한 이녕은 곤에게 다가가 예쁘다고 말해준다. 늘 강하에게 물고기 새끼라는 욕만 듣고 자란 곤은 이녕의 그 한마디에 격한 감격을 느낀다.
 이녕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곤은 그제야 이녕이 먹는 약들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곤은 그 사실에 대해 일터에서 돌아온 강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보지만 강하는 니가 뭘 아냐며 언제나처럼 곤을 무시하고 정 그렇게 이녕이 걱정되면 약을 다 버려버리라고 내뱉듯 말한다. 그리고 곤은 정말 강하의 말대로 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단 분풀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약을 먹지 않으면 이녕의 상태가 더 심각해질 거라는 걸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약이 사라진 걸 알게 된 이녕은 온 집안을 뒤지지만 약은 보이지 않고 곤은 약을 한봉지 한봉지 열어 변기에 내려보냈다고 고백한다. 이녕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다가 곤을 보고 일순 무언가를 떠올린다. 자신이 늘 꿈속에서 놓치고 마는 물고기와 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날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있던 강하는 곤의 전화 한 통에 집으로 달려온다. 곤은 이녕이 죽었다고 말했고 강하가 집에 도착했을 땐 정말 이녕이 피를 흘린 채 죽어있었다. 벌벌 떠는 곤의 뺨을 한 대 쳐 정신을 차리게 만든 강하는 어쩌다 이 사단이 났는지 물었고 곤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녕이 하고싶은대로 내버려두려 했으나 자신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밀쳐냈다고 설명한다. 아마 이녕은 수레에 튀어나온 못에 부딪치며 죽은 모양이었다. 강하는 순간적으로 얼마 전 이내호에서 자꾸 발견된다는 미생물체를 촬영하러 온 방송사가 기억났고 곤이 경찰에 붙잡히면 어떻게 될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 떠오르며 곤에게 떠나라고 지시한다. 돈이 든 조끼를 입히고 아가미를 가려주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어디로든 떠나라고. 이 곳은 자신이 수습할 수 있고 절대 붙잡혀갈 일은 없을거라고 말하며. 자신을 죽이고 싶지 않냐고 묻는 곤에게 강하는 말한다.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라고. 그 말은 이녕에게 들었던 예쁘다는 말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후로 곤은 강하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강하 말대로 다시는 이내촌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강이 있는, 물이 있는 곳을 떠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살아갔다. 간간이 지나가는 행인의 휴대폰을 빌려 자신이 있는 곳의 풍경을 찍어 강하에게 전송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며. 언제나 자신을 괴물 취급하고 괴롭히고 진저리치던 강하를 떠올리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성인이 된 곤은 강가에 위치한 허름한 엠티촌에서 구멍가게와 민박집을 운영하는 한 부부의 일을 도우며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 곤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는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며 곤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방을 잡는다. 주인 아저씨는 여자 혼자 온 손님인만큼 혹시 이상한 생각을 하지는 않나 곤에게 잘 감시하라고 일러두지만 곤은 여자에게서 그런 느낌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해류라는 이름의 여자는 다음 날 이른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강에 들어갔다 나온 뒤 귀가하던 곤에게 동네 가이드를 부탁한다. 소개할만한 게 전혀 없는 지역이었지만 곤은 해류를 데리고 나가 동네를 한바퀴 돌며 산책 비슷한 것을 하게 되고 해류는 곤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오랫동안 입밖으로 꺼낸 적 없는 낯익은 이름이 해류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강하.
 해류는 자신이 만났던 강하에 대한 이야기를 곤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제까지 곤을 찾아다녔는지에 대해서도. 해류의 이야기를 통해 곤은 강하가 자신을 증오하거나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해류는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겨 페이스북에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적어 올린다. 자신이 한강에 빠졌을 때 어떤 신비로운 존재, 어쩌면 인어일지도 모르는 존재가 어떻게 자기를 구해줬는지에 대한 경험담을, 허구고 소설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를 가볍게 적었을 뿐인데 수많은 연락들이 쇄도했고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어디로든 떠나려했던 상황이기에 해류는 그 메시지를 통해 강하를 만나게 된다. 강하는 가게를 하며 노쇠해진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다. 강하를 통해 들은 곤에 대한 이야기로 해류는 한강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을 구해준 존재가 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류는 곤의 이름을 지어준 것이 할아버지가 아니라 강하라는 것을 알려주며 장자에 나온 북쪽 바다의 커다른 물고기의 이름이 곤이었기에 그렇게 지어준 것이었고 정작 지어줘놓고 부르지 못한 이유는 그 물고기가 변해 붕이라는 새가 되어 구만 리를 날아간다기에, 언제 어떤 일로 떠날지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되어 차마 부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하가 곤을 막역하게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고, 그의 감정은 너무도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거라고 설명해준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거기서 오는 질투, 성격적인 반항심에서 오는 못된 언행도 한 몫 했겠지만 적어도 강하는 곤을 싫어한 건 아니었다. 애정의 한 종류였지만 표현 방법이 잘못됐을 뿐.
 강하가 해류가 묵고있는 여관방으로 찾아온 날, 해류는 강하를 위로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강하를 방에 밤새 붙잡아둔다. 그 사이 바깥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고 다음 날이 됐을 땐 이미 여관의 1층은 물에 잠긴 상태였다. 강하는 집에 혼자 계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찾으러 물길을 뚫고 나가고 해류는 차마 만류하지 못한 채 창문을 통해 강하가 건너편 가게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봤을 뿐이었다. 비가 그치고 구조작업이 시작되었을 때도, 수색이 한창 이루어지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실종자 명단에서는 강하와 할아버지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았다. 해류는 몇 달 동안 그 동네를 떠나지 못하다가 결과를 보지 않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곤을 찾으러 떠난다. 곤이 분명 물 근처에 있을 거고 사람이 많이 북적이지 않고 후미진 동네에 있을 거라고 추리하며 조금씩 범위를 좁혀나가다가 결국에는 곤을 발견하게 됐고 그렇게 강하의 소식을, 곤에 대한 강하의 진심을 전해준 것이다. 곤은 그 후 바다로 나간다. 사라진 강하와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분명하게 서술된 게 없다는 점에서 해석이 갈릴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곤의 아가미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걸까, 아니면 죽음의 목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갑자기 생긴 것일까. 강하는 정말 곤을 싫어한 게 아닐까. 어쩌면 강하는 사랑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저 해류의 해석이 강하의 마음을 왜곡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하가 곤을 위해 더 열심히 돈을 번 건 사실이지 않을까. 곤은 새 신분을 보장하며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해류의 제안을 거절하고 강하와 할아버지를 찾는 길을 택한다. 그것만으로도 곤에게 그들 가족이 진정한 가족이었다는 게 증명된 것 같기도 하다. 강하를 찾기 위해, 가족을 찾기 위해 곤은 자신이 정말 있어야 할 곳으로 간 게 아닐까. 아가미를 가진 인간이 살아야 할 곳은 사실 뭍보다는 물일 테니까.
 이야기는 아가미를 가지고 물 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진행되지만 그의 인생은 전혀 신비롭지도 행복하지도 판타스틱하지도 않다. 오히려 철저하게 숨겨져있고 둘러싼 관계도 좁았으며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삶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사회가 얼마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를 작가는 강하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강하는 곤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곤을 더 꽁꽁 숨겨둔다. 비록 그 방법이 좀 잘못되긴 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르는 단어를 열심히 찾아가며 읽었다. 살면서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은 축이라 생각했는데 한국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좌절감을 맛본다. 왜 이렇게 어려운 단어들이 많으며, 분명 예전에 검색해봤던 단어인데도 다시 보면 기억이 안날까. 어차피 영어단어도 안외우는데 국어사전이나 외워볼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별로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던 소설, 아가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