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셍셍칩 2020. 6. 2. 15:41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

읽은 기간: 20.05.09~06.02 / 25일

 


 마지막으로 시를 읽었던 게 언제였더라... 학교 스탠드에 앉아 시집을 읽었다던지, 서점에 가서 시집을 찾아 읽었다던가 하는 문학소녀 감성의 고등학생은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면 극사실주의 고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땐 나름 시를 좋아했고 문학 수업 시간에는 잠들지 않았고 심지어 감성 최고치에 다다랐을 땐 시를 썼던 기억까진 있다. 재수라고 말하기 뭐한 재수시절에도 간간이 읽긴 했겠지. 물론 자의적은 아니고 어쩔 수 없이였지만. 그러고서는 아마 한 번도시를 읽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힌 시 말고는...? 그래서인지 시집은 좀 부담스러웠고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아 이거구나, 싶었다.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라는 타이틀을 본 순간 그래 나도 감성만은 공대생이 뭐야 아주 아몬드 수준으로 메말랐지 하면서 이걸 읽어야겠다- 했다.
 했는데... 이렇게 읽는 게 오래 걸릴 줄이야... 진짜 나 요새 좀 심각하긴 한가보다. 책 한 권 잡으면 뭐 거의 한 달을 한 권만 붙잡고 있으니...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술술 읽었다. 그 이후가 문제여서 그렇지. 내 망할 집중력과 지고지순하게 켜켜이 쌓여온 귀차니즘이 중반 부터는 아무것도 안하고 침대에만 누워있게 만들었으니... 그래도 야금야금 어떻게 다 읽긴 했다. 줄거리로 쓸만한 게 있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만에 줄거리를 생략해야겠다. 줄거리 빼면 또 엄청 짧동?하게 확 줄여지겠지.
 시에 대한 책이지만 시는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진 않는다. 시와 시인에 대해, 시를 쓰게 된 배경이라던지 시인의 사생활과 사랑, 뒷이야기들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더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많은 시와 그 설명을 기대하고 책장을 넘긴 사람이 있다면 또 감흥이 다르겠지만...?
 황동규 시인이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이라는 것이나 시인 유치환과 시조시인 이영도의 불륜 스토리, 김소월 시인의 가정사 등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그들의 사생활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시인들의 시가 더 잘 이해되고 주관적이나마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방대한 사전지식으로 시인과 시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내재적 의미, 시적 허용, 기타 블라블라 용어를 써가며 설명하고 공부한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그에 반해 영화나 광고, 음악 등과 연결지어 더 이해감을 높인 것이 흥미로웠다. 이런 식으로 강의를 하면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강신청을 했던 공대생들이 있다면 의외로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시들이 꽤 많이 등장해서 정겨웠다. 그 시절 그 시를 통해 (주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고 그 시절의 감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로 인해 추억이 잠기게 되는 구간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눈물은 왜 짠가'를 배우던 시절 문학 선생님 목소리가 좀 특이하셨었는데 선생님이 그 특이한 목소리로 웅변을 하듯이 눈물은... 왜~ 짜안가아~ 하던 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어버렸다. 그 시절 친구랑 선생님 성대모사를 하며 깔깔대던 하교길이 생각나서 그 때는 참 아무것도 아닌 거에 즐거워하고 웃었었구나 싶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애초에 시라는 게 정해진 해석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고등학교 때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에서 이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이 구절은 무슨 의도로 쓴 말인지 이런 것들이 과연 정해질 수 있는 걸까? 시인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썼다 한들 독자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면 원래의 의미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 시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뭐 어쨌든, 그래도 유치환, 이영도 불륜은... 몇 십년을 그렇게 매일 편지하고 절절하게 서로를 사랑했다 해도 결국 불륜은 불륜인 거 아닌가? 두 사람의 사랑으로 그 아무리 좋은 시들이 만들어졌다 한들 불륜은 미화되어서는 안되겠다. 나 그 구간에 좀 기분 나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