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
최은영
★★★★★
읽은 기간: 19.02.16~03.04 / 17일
왜 진작 이 책을 고르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제목때문에 일본 소설인 줄 알았었고 후에 작가 이름을 보고 나서는 그냥 왠지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나쳤었다. 그리고 결국 이걸 빌리고 읽기 시작했을 땐 좋아하는 한국작가가 한 명 생기겠구나 라는 예감이 들었다. 단편이고 심지어 옴니버스처럼 연결되는 구조도 아닌데 이렇게 만족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한 편 한 편이 한 권의 장편소설만한 값어치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담담한 어조로 그런 문장과 표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어쩜 그리도 뻔할 수 있는 대목을 뻔하지 않게 그릴 수 있는지 대단하게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교없이 조곤조곤 너무도 평범한 문장에서 몇 번 울컥했을 때 진짜 오랜만에 내 일이 아닌 일에 동요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없겠지- 라는 허탈함과 진빠지는 느낌까지 살짝 들기도 했다.
「쇼코의 미소」는 쇼코의 미소로 시작해 총 일곱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등장인물이며 내용이 전혀 연관이 없는 듯 보이지만 무언가 어렴풋이 동일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콕 집어내지 못했는데 평론글에 적혀있었다. 일곱편의 소설 모두가 공감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유대의 풍경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사실 저 말을 오롯이 이해하진 못했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 모든 이야기들 속에 공감이 됐고 모든 이야기 안에 유대관계가 존재하니까. 책을 읽을 때 습관적으로 뒤에 붙어있는 평론글이나 작가의 말을 읽긴 했지만 늘 설렁설렁 읽었었는데 이 책은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읽게 됐다.
가장 신기한 것은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내용들임에도 그게 그렇게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거다. 이야기마다 주인공 혹은 주인공의 가까운 누군가가 감정이 온전치 못하다고 해야할까 무언가 결핍되어있다고 해야할까. 우울한 상황이거나 우울한 상태인데 주로 그런 경우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 내 감정도 함께 나락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종종 들곤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요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동요하고 공감하고 어떤 부분은 동감했지만 함께 우울해지지는 않았다. 평론글에서 그런 글임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적혀있었는데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래서 신기했다. 평론글에서 너무 공감되고 그러나 나에게 말해보라 하면 표현하지 못할 거 같은 문장이 있었다. '절망도 우울도 사람의 삶인 한 불가피한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부분을 족집게처럼 평론가님이 적어주셔서 인용한다.
평론글이 끝나고 작가의 말을 읽는데 최은영 작가님이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아주 살짝 알게 됐다. 내 이야기를 하듯 쉽게 써내려간 듯한 느낌의 이 문장들이, 한땀 한땀 얼마나 공들여 쓰여진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작가의 등단작이라고 한다. 이 책에 실린 7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곳에 수록된 작가의 소설을 한 데 묶은 것이다. 무엇보다 다 다른 배경에 각기 다른 이야기인 점, 꽤나 전문적인 부분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취재에 놀랐다.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하는가...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이렇게 일곱개의 이야기인데 하나하나 줄거리라도 기록해볼까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면 밤 샐 것 같아서 포기한다. 원래 줄거리 기록용 리뷰였지만 나중에 다시 읽지 뭐. 초등학교 때부터 몇십번은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도 지금 줄거리 말해보라고 하면 바로 안나올텐데. 다시 읽는 게 차라리 빠르다. 이렇게 끝맺긴 아쉬우니까 제일 인상깊게 읽은 게 무엇인지만 적어놔야지.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씬짜오, 씬짜오. 이 정도라고 해야 하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도 좋았다. 아 사실 그냥 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