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속죄」
미나토 가나에
★★★☆☆
읽은 기간: 18.08.04~05 / 2일
이 책으로 말할 거 같으면 혹시라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다 읽었는데 주말이 껴있거나 도서관에 갈 상황이 아닐 때를 대비해 미리 구비해놓은 비상식량 같은 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찍이 서점에서 사서 책장에 꽂아놓고 웬만해선 손을 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달쨰 방치하다가 예상과는 달리 연애의 행방을 더 빠르게 읽게 되면서 도서관 갈 타이밍과 엇갈려서 결국 펼쳐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스가 미나토 가나에 답게 엄청 빠르게 읽어버렸다. 인간의 본성과 결합한 추리소설이라...
속죄. 제목이 내용에 아주 찰떡이었다. 초등학생인 네 명의 소녀는 함께 놀던 한 친구가 낯선 남자를 따라갔다가 살해 당한 사건을 목격하게 됐는데 범인의 인상착의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죽은 소녀의 엄마는 네 소녀를 불러서 저주의 말을 쏟아붓는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그렇게 못하겠으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속죄를 하라고.- 네 소녀는 사건 후 자연스럽게 서로 멀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데 넷은 모두 각기 다른, 하지만 상당히 유사한 느낌의 삶을 살게 된다. 네 소녀는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 사건에 대한 속죄라는 명목하에 모든 걸 감당하게 되는데...
살해된 친구 에미리를 발견한 후 그 곁을 지키던 사에는 다섯명의 아이들 중 범인이 에미리를 선택한 것이 그 중 에미리만이 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20대가 되어서도 초경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게 된다. 성인이 되어 취직한 후 과거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서 자신에게 반했다던 남자와 사귀게 되고 결혼하게 되지만 알고보니 그 남자는 성기호증 환자였고 그 끝에 사에는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
또래에 비해 똑똑하고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온 마키는 죽은 에미리를 위해 선생님들을 부르러 가다가 선생님들이 보이지 않자 문득 범인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으로 도망가게 되고 평생을 그 죄책감과 중압감에 빠져 더욱 더 책임감이라는 그늘을 느끼며 살아간다. 선생님이 된 마키는 학교 풀장에서 아이들을 인솔하던 중 풀장에 난입해 아이들을 공격한 남자를 막다가 죽이게 된다.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는 아키코는 예쁘고 친절한 에미리에게 감히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에미리가 그렇게 된 거라는 트라우마에 갇혀 학교도 나가지 않고 그렇게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 날 오빠가 딸이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초등학생 조카가 생기고 그 귀엽고 어여쁜 아이와 친해져 조금씩 집 밖으로도 나가고 하던 중 오빠의 집에 물건을 가져다 주러 갔다가 조카를 범하고 있는 오빠를 발견하고 조카가 에미리로 보이면서 오빠를 살해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온통 언니에게 빼앗기고 애정결핍으로 자라던 유카는 사건 후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면서 도벽이 생긴다. 질 안 좋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에미리의 엄마에게 불려가 협박을 받은 유카는 그 날 부로 도둑질에서 손을 뗀다. 성장한 유카는 형부에게서 어린 시절 사건 이후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경찰 아저씨 손의 감촉을 느끼고 형부를 짝사랑 하게 된다. 하지만 언니만을 사랑하는 형부를 빼앗을 기회는 없었고 그러던 중 형부가 징계를 받을 만큼 회사에서 큰 잘못을 한 날 언니가 형부를 두고 여행을 떠나자 하룻밤 형부를 차지하고 형부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유카는 옛 친구들의 소식과 이런 저런 정황, 자신이 기억을 결합해 에미리 살해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눈치채게 되고 그걸 형부에게 형부를 집으로 부른다. 형부는 유카를 보자마자 그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유카는 이런 사람에게 그 진실을 알려줄 가치가 없다 판단해 그를 지나쳐 간다. 형부는 뒤에서 유카를 붙잡고 실랑이를 하다가 계단에서 떨어진 형부는 사망하게 된다.
이것이 사건을 목격한 네 아이의 인생이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과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 등이 결합돼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난 좀 답답함을 느꼈다. 물론 힘든 경험이고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 어렵고 극복하기 힘들었겠지만 왜 네 소녀는 하나같이 이렇게 자랐을까. 왜 자신의 탓을 할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고 또 한없이 답답하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역자 후기에서 이런 문장을 읽고 동감이 되면서 답답하면서도 이해가 됐던 이유를 알았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성장 배경과 역사, 내면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심각헤 보이지 않는 경험이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트라우마가 되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단순히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로 치부해 버릴 수만은 없습니다. 언제든 나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에 에미리의 엄마인 아사코의 속죄가 나오면서 이야기를 급물살을 타게 된다. 나도 이 편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쭉 읽었던 것 같다. 부유한 환경에서 똑같은 환경의 친구들 속에 자라온 아사코는 대학에 들어가 처음 듣는 시골 출신의 아키에와 친구가 된다. 아사코는 아키에를 데리고 자신의 남자친구들도 소개해주고 쇼핑도 데려가며 마음과 시간을 쏟지만 선의로 선물한 비싼 선물을 아키에가 받지 않자 점점 화가 치민다. 자신처럼 아키에의 남자친구들도 소개해달라고. 그렇게 만나게 된 아키에의 남자친구들 중 뭔가 다른 한 남자에게 빠져들게 된다. 아키에에게는 자신의 남자친구들 중 아키에를 마음에 들어한 남자와 붙여주고 그 남자와 사귀게 된 아사코는 자연스럽게 아키에와 멀어지게 되고 그와의 미래를 그리며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교사가 된 그가 출근한 사이 청소 중에 우연히 그의 숨겨진 노트를 발견한 아사코는 그에게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고 아직도 미련에 허덕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여자의 존재가 궁금해진 아사코는 아키에에게 연락해 그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아키에는 아사코를 집으로 초대한다. 아사코는 바로 아키에의 집으로 가는데 집에 들어가자 아키에는 자살을 해 죽어있었다. 아사코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바로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아키에가 죽었다며 도와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아키에의 옆에서 한 장의 편지를 발견한다. -히로아키씨, 영원히 사랑합니다.- 히로아키, 즉 아사코의 현 연인은 아키에와 사랑하는 사이었던 것이다. 아키에의 집으로 달려오던 히로아키는 술 취한 채 운전을 해 오다가 접촉사고를 내고 음주운전으로 교사 징계면직을 당한다. 아사코는 모든 것이 두려워 그대로 도망치고 다시 부유한 환경으로 돌아가 부유한 남자를 소개받고 결혼해 에미리를 낳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에미리가 초등학생이 되어 시골마을로 갔을 때, 에미리가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아사코가 숨겨둔 아키에의 유서와 아사코의 반지를 빈 저택에 숨기는데 그걸 대안학교 자리를 알아보던 히로아키가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를 망친,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를 자살로 내몬 것이 아사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히로아키는 아사코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생각을 하고 그렇게 아사코의 하나뿐인 아이 에미리를 범하고 죽인 것이다. 자신의 아이라는 것도 모른 채. 사건이 일어난지 오랜 시간이 지나 겨우 잡힌 범인에게 아사코는 면회를 가서 또박또박 말한다. 에미리는 당신의 아이에요. 그 후 아사코는 자신의 돈과 인맥을 이용해 장성해 범죄를 저지른 네 소녀에게 변호사를 붙이고 사회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책은 끝난다.
끔찍한 기억이 네 아이들의 기억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삶을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건 그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범인은 네 아이 중 한 아이를 고르는 것처럼 굴었지만 처음부터 범인의 타겟은 에미리였던 것이다. 그로인해 아이들은 자신이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어디선가 자신을 해코지 할지도 모른다는 망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거기에 각자의 환경과 성격 등이 결합해 서로 다르지만 일관되게 어두운 쪽으로 삶을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혀 왔던 갑갑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역시 일본 추리소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