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링 미 백」
「브링 미 백」
B. A. 패리스
★★★★☆
읽은 기간: 19.09.05~09.07 / 3일
「비하인드 도어」로 B. A. 패리스를 알게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자 이번엔 이걸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비하인드도어가 재밌었으니까 이것도 재밌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확실히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일품이었다. 또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죄로 엄청난 재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뒷 내용이 궁금해 계속 책을 붙잡고 있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실종사건이 베이스로 깔린 이야기의 특징이랄까. 뭐 그게 아니어도 확실이 이 작가의 화풍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잡고 끌고가는 어떤 마력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주인공 핀은 14년 전인 2004년 마지막날 런던의 지하철역에서 천편일률적인 런던 여자들 사이에 방황하는 매력적인 여자 레일라에게 첫눈에 반한 핀은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18살인 그녀와 27살인 핀을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2년 뒤 핀은 레일라의 스무번째 생일에 청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전 달인 3월 므제브로 여행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 파리에서 잠시 화장실을 가기 위해 휴게소에 차를 세운 핀은 화장실에 다녀오자마자 차에서 곤히 자고 있던 레일라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핀은 곧장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레일라의 행방은 찾을 수 없고 설상가상으로 살해 누명까지 쓸 뻔 하다가 친형이나 다름없는 해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경찰 진술에는 여행 중 청혼을 했고 레일라가 받아들인 뒤 귀가하는 중이라 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그날 밤 휴게소에서 레일라는 여행 전 런던에 가서 친구들과 놀던 중 다른 남자와의 잠자리가 어떨지 궁금했다는 이유로 모르는 남자와 잤고 그걸 죄책감을 못 이기고 핀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충격에 이성을 잃은 핀은 레일라를 차에서 끌어내 흔들어대다가 화를 식히기 위해 화장실에 갔던 것이고 돌아왔을 때 레일라가 사라졌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핀은 자신의 중간 기억이 끊겼기에 혹시 자신이 레일라를 어떻게 한 것이 아닐까 하며 자기 자신도 의심하고 레일라가 자신을 피해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며 함께 살던 집에 편지를 놓아두고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레일라는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핀은 오랜 시간을 방황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레일라가 납치돼 어딘가에서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보단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게 되면서 레일라의 추모식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레일라의 언니인 앨런을 만나게 된다. 이미 루비라는 여자친구가 생긴 핀이었지만 조금씩 앨런에게 빠져들고 결국 앨런과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져 결국 앨런과 결혼까지 앞두게 된다. 그렇게 순탄하게 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 날 핀에게 레일라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난다. 바로 레일라와 앨런 자매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마트료시카 속 가장 작은 인형이 핀과 앨런의 집 담장에 놓여있던 것. 처음에 핀은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치부하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놓고 가 듯 인형이 하나씩 다른 곳에서 나타나면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레일라라고 주장하는 의문의 메일을 받게 되고 상대방이 레일라와 핀밖에 모르는 곳으로 핀을 인도하면서 레일라가 살아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 이 과정에서 핀은 수없이 주변인들을 의심하고 과거를 반추한다. 무엇보다 핀을 괴롭힌 건 현재 자신이 앨런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 하지만 레일라의 등장 후에 레일라를 잃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앨런을 버려야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며 끝없이 핀을 닥달하던 레일라는 어느 날 핀에게 함께 살던 오두막으로 오라고 하고 핀은 앨런을 버려두고 몇시간을 달려 오두막으로 간다. 하지만 오두막에는 레일라가 없고 어디있냐고 메일을 보내자 레일라는 앨런이 혼자 남겨진 집에 있다고 답장을 보낸다.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온 핀을 기다리는 것은 앨런도 레일라도, 그리고 더없이 사랑하는 개 페기도 없는 텅 빈 집이었다. 핀은 레일라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신호를 보고 다락방에서 엄청나게 많은 마트료시카들을 발견하고 무엇도 혼자 해결할 수 없어져 해리와 루비, 레일라 사건의 담당 형사였던 토니를 부른다. 그들은 핀의 이야기를 다 듣고 애초에 레일라는 돌아온 적이 없으며 모든 게 앨런이 꾸민 짓인 거 같다며 앨런을 의심하고 핀은 비행기를 타고 앨런이 갔을 것으로 짐작되는 앨런의 고향인 루이스섬으로 향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루이스섬 외진 곳에 위치한 앨런의 고향집을 찾은 핀은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페기를 보고 앨런이 이 곳에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 앨런이 핀을 맞이한다. 앨런은 핀에게 자신을 레일라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묻고 레일라의 대체품으로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냐며 닥달한다. 레일라가 없다는 걸 알게 된 핀은 이성을 잃고 앨런과 다투다가 앨런을 쓰러뜨리고 제정신을 차린 핀은 그대로 앨런을 안고 병원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 사이 결국 앨런은 숨을 거두고 뒤늦게 해리에게 온 메세지를 읽은 핀은 앨런과 레일라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사실 레일라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왔고 심지어 언니인 앨런이 아버지의 손에 죽는 모습을 목격한 과거가 있는 레일라는 사건 당일 돌변한 핀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언니를 죽이고 자신을 때리던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던 레일라는 루이스섬으로 돌아가고 그 곳에서 늙고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아버지를 마주한다. 아버지는 레일라를 알아보지 못하고 앨런이 죽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레일라를 앨런으로 인지하고 그 순간부터 레일라는 언니인 앨런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어려운 형편에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고 붉고 긴 머리는 염색을 하고 어깨 길이로 잘라 살아 생전 언니의 모습으로 서서히 바꿔간 것이다. 단 한가지 바꾸지 못한 건 녹갈색의 눈 뿐이었다. 그렇게 앨런이 되어 살던 레일라는 핀의 소식을 간간히 듣게 되고 레일라를 버리고 정말 앨런이 된 기분으로 살아가던 중 레일라의 추모식에 참석해 핀을 만나게 된다. 결국 핀과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청혼을 받지만 레일라가 자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핀과 살았던 오두막에 갔다가 오래 전 핀이 남긴 편지를 읽게 된다. 편지 속에서 핀이 자신에게 왜 그랬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했으며 청혼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앨런 속의 레알라는 점점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핀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고 앨런 속에서 나오려 했던 것이다. 운명의 사랑이라 여기며 평생 마음 속에서 놓아주지 못했던 레일라가 사실은 자신이 다시 만나 결혼하려 했던 앨런과 동일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핀은 망연자실한다. 핀이 가장 괴로웠던 건 레일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녀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그녀를 알아봤어야 했다는 것... 이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복선이었다. 앨런이 레일라의 과거에 대해 말할 때 엄마가 죽은 뒤 레일라가 엄마 흉내를 냇었다는 것이며, 앨런이 3주마다 미용실에 가고 관리받으러 가던 것들이 말이다. 선천적인 빨간 머리를 앨런의 머리 색으로 바꿔야 했을 것이고 앨런과는 달랐던 레일라의 피부를 앨런처럼 만들어야 했을 것이며 육감적이던 몸매가 앨런의 여리여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어야 했던 것 등 모든 것이 앨런이 레일라임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 명이나 잃고 끊임없이 가정폭력을 당했던 레일라의 불행한 과거는 결국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레일라와 앨런을 모두 사랑했지만 레일라를 결국 잊지 못했던 핀과 역시 그를 사랑해 언니의 모습으로 다시 사랑을 시작했던 레일라의 비극적인 사랑은 과거와 교차 진행되며 열차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그걸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급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역시 패리스 소설은 가독성 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