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
읽은 기간: 20.03.14~16 / 3일
6년 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했었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와서 영화관에서 봤던 것 같은데 그 때는 원작 소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인 줄 모르고 봤었다. 화차 처럼 일본 소설이 원작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었나...?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좀 다른 얘기지만 화차도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이것도 꽤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같은 제목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딱히 찾아 읽을 생각까지는 안했던 것 같다. 어차피 재밌는 소설은 많고 히가시노 게이고에 빠져을 때도 아직 안 읽은 책들이 많았으니까. 뭐 아직도 안 읽은 책은 많겠지만 도서목록에 이게 있기에 고민없이 바로 골랐다. 이미 영화로 봤던 내용이지만 시간이 흘러 스토리가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면 지루하진 않겠다 싶었다. 마친 또 쉬는 날이었고 요새 코로나다 뭐다 해서 나가기도 좀 그렇고 (어차피 본체가 집처돌이이긴 하지만) 뭔 놈의 집이 내 방까진 난방이 잘 돌지를 않아 전기장판 깔아놓은 침대와 물아일체처럼 있었더니 노트북도 영 재미가 없어서 그냥 단숨에 읽어버렸다.
큰 틀을 알고 봤음에도 역시 소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영화로 만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잘라낼 수밖에 없으니 뭐 어찌보면 당연한건데 그 와중에 영화를 완성도 높게 만들었다는 게 더 신기했다. 한국 영화 아주 칭찬해! 그래도 역시 내가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면 아무래도 좀 실망했겠지?
몇 년 전 아내를 병으로 잃고 사랑하는 딸 에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나가미네는 평범한 중년의 남성이다. 친구들과 불꽃놀이 구경을 간다며 백화점에서 나가미네가 사준 유카타를 입고 나간 에마는 약속한 귀가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빠의 관심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며 다소 귀찮아하는 것을 느꼈기에 나가미네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자 결국 에마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건다. 하지만 에마는 전화를 받지 않고 한숨도 자지 못한 나가미네는 경찰에 신고를 한다.
마코토에게는 가이지와 아쓰야라는 친구가 있다. 그들은 소위 양아치라고 불리는 질 나쁜 소년들인데 걸핏하면 마코토를 시켜 아버지의 오래된 자동차를 끌고 나오게 한다. 가이지와 아쓰야가 심심하면 거리로 나가 여자애들을 꼬시거나 납치한 후 성폭행을 한다는 걸 마코토는 잘 알고 있었지만 성격 더럽고 모든 걸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가이지가 무서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곤 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운전기사처럼 가이지와 아쓰야에게 끌려나와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가이지는 불꽃놀이 후 혼자 귀가하는 여학생을 노리고 있었고 때마침 유카타를 입은 미소녀가 인적이 드문 길로 접어들자마자 아쓰야와 함께 약물을 묻힌 손수건으로 기절시켜 납치를 했는데 그 소녀가 바로 불꽃놀이에서 돌아와 혼자 귀가를 하던 에마였다.
가이지는 어떤 경로를 통해 구입한 약을 소녀에게 써먹을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서워 마코토는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다가 대외적으로는 입시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집에서 얻어준 아파트가 있는 아쓰야의 집이 주된 범행 장소였다. 소녀를 아쓰야의 집으로 옮겼을 때 마코토의 전화기가 울렸다. 또 말없이 차를 가지고 나갔냐며 당장 차를 가지고 오라고 호통치는 아버지의 전화가 마코토는 너무도 반갑다. 가이지와 아쓰야의 쓴 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마코토는 며칠 뒤 그들에게 다시 불려 나간다.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조급해 보이는 둘은 마코토에게 차를 빌리는데 차를 갖다주러 아쓰야의 아파트로 갔다가 베란다를 통해 축 늘어진 소녀의 팔을 본 마코토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며칠 뒤 뉴스를 통해 에마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마코토는 이 사건 때문에 자신에게까지 피해가 올까 두려움에 떨다가 아직 범인을 추려내지 못한 경찰을 보며 불안감이 범인을 제보해야 된다는 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바로 전화를 집어든다.
돌아오지 않는 에마를 찾아다니며 잠도 거의 못잔 채 지내던 나가미네는 며칠 뒤 경찰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고 강에서 발견된 시신의 사체를 확인하러 오라는 말에 에마의 시신을 확인한 나가미네는 반쯤 정신이 나가버린다. 경찰은 경찰대로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대를 꾸리고 목격자를 찾으려 노력한다.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집을 샀는지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며 자신을 탓하던 나가미네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누군가가 범인이 아쓰야라는 사람이라며 집 주소까지 알려주고 끊은 것이다.
나가미네는 알 수 없는 제보자가 알려준 그 주소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가고 제보자의 말대로 우편함에서 열쇠를 찾아낸다. 집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나가미네는 집으로 들어가고 이것저것 뒤지다가 웬 이상한 제목이 쓰여있는 비디오 테이프들을 발견한다. 그 중 하나를 켜보려던 나가미네는 이미 한 테이프가 들어가 있는 걸 보고 그대로 재생을 시키고 티비 화면을 통해 에마가 웬 남자 둘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가미네가 분노에 가득 찬 그 때 외출했던 아쓰야가 집으로 돌아오고 원래 집주인이 들어오면 그대로 베란다를 통해 도망가려했던 나가미네는 그대로 아쓰야를 기다렸다가 처참하게 살해한다. 아쓰야의 성기까지 도려내며 끔찍하게 그를 죽인 나가미네는 바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소행인지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빠져 나간다.
며칠 뒤 아쓰야를 찾아왔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쓰야의 시신을 발견한 아쓰야의 친구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그 곳을 조사하던 경찰에 의해 수많은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고 테이프는 사라졌지만 캠코더에 남아있던 에마의 비지오까지 발견되면서 경찰은 범인이 나가미네인 것을 알아낸다. 다만 경찰도 알아내지 못한 에마 사건의 범인을 나가미네가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가 의문일 뿐이다.
형사 오리베는 선배 형사 마노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는데 그 과정에서 밝혀진 아쓰야와 가이지의 충격적인 만행에 혀를 차면서도 나가미네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자신의 범행을 은닉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춘 나가미네에게 총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자마자 그가 가이지를 찾으러 갔다는 걸 알고 경찰은 나가미네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가이지는 에마 사건 이후로 잠적한 상태였는데 가이지의 엄마는 원래 아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고 친구들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한 상황이라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한편 나가미네는 아쓰야가 죽기 직전 가이지가 간 곳에 대해 털어놓은 지역명과 펜션이라는 단어만을 가지고 가이지를 찾아나선다. 한 작은 펜션에 숙박을 하며 주변 펜션들을 뒤지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미 공개적으로 수배가 된 상황이라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며 자신을 숨긴다. 또한 경찰에 절절한 편지를 써 가이지에게 복수만 하면 자수하겠다고 하며 일부러 자신이 있지 않은 다른 지역 소인으로 편지를 보내 위치를 숨기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것은 언론에 편지가 공개될 상황을 고려해 가이지에게 자신은 네가 있는 곳을 모르니 자수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나가미네가 묵는 펜션 주인의 딸 와카코는 사람들이 없을만한 시간에만 나타나는 혼자 숙박온 중년의 남성이 신경쓰인다. 과거 어린 아들을 잃고 결국 이혼한 과거가 있는 그녀는 아들과 찍은 오래된 사진을 스캔하고 있다가 나가미네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노트북을 챙겨온 나가미네가 밤새 사진을 보정해 원본처럼 복구해주면서 조금 더 신경 써서 바라보다가 어느 날 나가미네가 씻고 나와서 머리에 수건을 올린 모습을 보고 그가 뉴스에서 수배중인 살해범이며 이제까지 가명을 써왔다는 걸 알아챈다. 언론을 통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던 그녀는 응당신고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신고하지 못하고 나가미네에게 자신이 나가미네의 정체를 알며 돕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는 가이지를 찾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막겠노라 결심한 상태였지만 어찌됐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 그를 돕는다.
펜션이 많은 지역에서 가이지를 찾는 숲에서 나무 찾기 같은 무모한 행동을 하던 나가미네에게 또 다시 알 수 없는 제보자의 전화가 걸려오고 나가미네는 가이지가 큰 도로 근처에 있는 영업을 안하는 펜션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한 차례 제보자의 덕을 봤던 그인지라 사실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어쩌면 경찰의 덫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 말을 믿고 버려진 펜션들을 조사한다. 와카코는 나가미네가 너무 오래 묵게 되면 꼬리를 밟힐 것이라 판단해 그를 자신이 소유한 아무도 살지 않는 빌라에 숨겨준다.
가이지와 아쓰야의 비디오를 분석하던 경찰은 비디오 속에서 가이지가 숨어있는 곳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그를 추적해 나가미네가 숨어있는 지역까지 찾아낸다. 나가미네가 와카코 아버지의 펜션에서 묵었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그들에게 나가미네에 대해 묻고 와카코가 나가미네와 대화하는 걸 본 적 있는 와카코의 아버지는 와카코가 경찰에게 나가미네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이상함을 감지한다. 나가미네가 가이지의 위치를 짐작하고 찾아가려는데 와카코는 혼자 가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를 태워다 주고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와카코의 아버지가 등장하며 그들을 막아선다. 나가미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딸이 범죄자를 돕는 걸 볼 수 없었던 그는 와카코를 말리고 더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나가미네는 그 때부터 혼자 가기로 한다.
하지만 나가미네가 가이지를 찾기 전 경찰이 먼저 가이지가 숨어있는 펜션에 도착했고 어두운 펜션을 수색해 누군가를 잡지만 그건 가이지가 아니라 가이지와 함께 도망 중이었던 소녀였다. 소녀는 가이지에게 전화가 오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라는 경찰의 말을 무시하고 힘껏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그 소리를 들은 가이지는 그 길로 도망을 간다. 오리베는 소녀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다고 생각하는데 알고보니 그 소녀는 그 펜션에서 성폭행을 당한 소녀 유카였다. 에마가 죽고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가이지는 마음의 안정을 위해 동행자가 필요했고 비디오로 그녀를 협박해 나오게 한 것이다. 경찰이 왜 이런 상황에 가이지를 도와줬냐고 묻자 유카는 이 편이 더 나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하고 경찰은 어이가 없다.
어머니의 카드도 막히고 더이상 돈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가이지는 마코토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이미 마코토의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달아놓은 경찰은 마코토를 이용해 약속장소를 잡는다. 가이지를 놓친 나가미네는 더이상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때 다시 의문의 제보자가 가이지가 마코토를 만나러 오는 장소를 알려주고 바로 그 곳으로 향한다. 마코토는 겁에 질린 채 가이지를 만나러 가고 그들이 만났을 때 나가미네도 나타나 총으로 가이지를 겨눈다. 하지만 그 곳엔 이미 많은 경찰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가이지를 향해 총을 쏘려는 순간 가이지를 구하려는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경찰은 아직도 나가미네가 어떻게 경찰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일 수 있었는지 오리무중인데 사실 그것은 히사쓰카 반장의 행동이었다. 마코토를 통해 정보를 접수한 히사쓰카는 형사로써 가지면 안되는 마음을 품고 남몰래 나가미네를 도왔던 것이다.
영화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참 기분이 드으럽고 현실 반영이 잘 된 영화였다. 작가는 이 책으로 소년법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은 독자에게 맡긴다. 죄를 저지른 소년에 대해 적용하는 법인 소년법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고 그 처벌수위가 성인에 비해 매우 낮다. 이 사실은 청소년들도 잘 알고 있고 때문에 이것을 악용하려는 질 나쁜 청소녀들이 매우 많다. 소년법이란 게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들이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그것을 고려해 그들을 교화하고 사회로 돌아가 건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인데 사실 진짜 죄를 지은 청소년들 가운데 저 좋은 취지에 적용되는 게 얼마나 될까? 분명 소년법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 청소년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내 중학교 시절만 돌이켜봐도 그 당시 소위 일진이라 불리던 아이들이 얼마나 막나갔었는지... 그 애들은 오토바이를 훔치고 친구들을 때리고 욕을 해도 큰 벌을 받지 않았었다. 아마 걔네들도 그걸 알고 그렇게 행동한 것일 것이다. 책 속에서 가이지와 아쓰야는 그 친구들과 비교도 안되게 악질인 인간 쓰레기들이었는데 이런 쓰레기들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대충의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나가미네를 응원하게 된 것 같다. 어째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그것도 딸을 처참하게 유린당한 채로 살해된 모습을 보게 된 아버지가 자신의 마음을 추스려야 할 시간에 나라 대신 범인에게 복수를 하러 가야 하는 세상이 된걸까. 국가는 또 왜 그런 쓰레기들을 보호하고 당연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막아야 하는 걸까.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영화였다. 가해자를 지켜야하는 오리베 형사의 허무함을 나도 함께 느껴야 했다. 대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치유가 먼저인가 청소년 갱생이 먼저인가. 당연히 전자가 먼저인 상황에서도 법이라는 것은 그렇지가 못하다. 아 답답해...
그 와중에도 가이지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차라리 아쓰야처럼 가이지가 죽기를 바라는 마코토의 모습도 참... 그랬다. 아무리 두려워서라지만 작은 범죄에는 함께 가담해놓고 친구가 죽길 바라는 모습이라니. 그럼에도 어떤 점에서는 마코토도 피해자이기에 그렇게 대놓고 욕할 수는 없어 기분이 참 그랬다.
자수를 권하는 마코토에게 조금 더 놀다가 라고 말하는 가이지의 모습에서 또 얼마나 분노가 차올랐는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자신은 어차피 큰 벌은 피할 수 없다고 확신하며 그런데 대체 왜 결국 잡힐 걸 알면서 도망칠까 하는 의문에 아주 쌍펀치를 날리는 대답이었다.
별 네 개 주려고 했는데 초장부터 기분이 너무 안 좋아져서 별 하나 뺐다. 너무 초반부터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나온데다 또 그런 것들을 너무 제대로 묘사를 해놔서 비위가 팍 상해버렸고 그게 생각보다 오래 가서 미간에 주름이 잡혀버려서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해 안녕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