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맛」
로알드 달
★★★★☆
읽은 기간: 19.01.26~31 / 6일
단편인 줄 알았으면 안 읽었을텐데 모르고 읽어버려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나름 재미있었다. 신간도서에 손이 가는 책이 없어서 한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서 충동적으로 집은 거였는데 책 표지에 딱히 단편이란 말이 안 쓰여있어서 생각도 못했다.
「맛」은 총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인데 내용들이 하나같이 약간의 반전과 께름칙함을 동반하고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 '목사의 기쁨'을 읽으면서 살짝 불편해지던 마음이 두번째 에피소드 '손님'에서 확실히 불쾌함으로 바뀌었고 세번째 에피소드 '맛'의 중간부분까지 읽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진짜 기분 나빴을 때 나오는 외마디 아- 까지 육성으로 내뱉어버렸다.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어봐서 그제야 내 미간이 있는대로 구겨져 있다는 걸 인식했으니까 기분이 진짜 나쁘긴 나빴나보다. 다행히도 이 책 자체가 반전의 작품이라 나의 불쾌는 끝부분에서 사라졌지만 그 후로도 나머지 에피소드를 읽는 중간 중간 조금씩 느껴지는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딱히 평화주의자도 아니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이 곤경에 처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에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서 그런가 역시 소설 속 인물이 그런 걸 겪는 것 또한 내 기분을 꽤 나쁘게 만들었다.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야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걸 보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맛'편에서 이 망할 50대 미식가가 내기에서 이겨서 스무살도 안된 소녀를 가로채려 했을 땐 진짜... 짜증이 저 밑바닥부터 치솟아서 책 덮을 뻔 했다. 그래도 세 번째 이야기에서 기분 최악을 찍어서 그런지 그 이후 에피소드들은 짐짓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애시당초 감상문 목적이 아닌 줄거리 기록 목적으로 시작한 리뷰였어서 줄거리를 써야하지 싶긴 한데 열 개를 다 쓰자니 좀 귀찮네... 기억 안나면 그냥 다시 읽어야겠다. 어차피 짧은 단편이니까.
하나같이 시대의 배경이 현대가 아니었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작가가 이미 1990년에 사망한 아주 옛날 사람이었다. 알고보니 찰리와 초콜릿 공장 작가... 상식을 좀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여실히 절감했던 대목이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유명했다던데 이 책만 읽어도 그것만은 확실히 인정할 수 있겠다. 다른 유명한 작가들처럼 왕궁이나 은둔처에서 보이던 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우글대는 술집이나 저잣거리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던 작가라고 설명되어있다. 그런 곳에서 로알드 달은 영감을 얻었던 게 아닐까. 가만보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물들에 대한 묘사가 특출나게 세세하게 서술되어 마치 눈에 보이듯 느껴지는데 나라도 다르고 시대도 달라 어떻게 생긴 건지 전혀 모르겠는 상황에서도 아 대충 이런 건가보다- 하고 생각이 들게끔 기술되어있는 게 참 신기하다. 이게 아마 이 작가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아니 더 큰 매력은 아무래도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끝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 이 이야기의 맛이겠지. 원래는 동화작가라고 하던데 다른 책은 이렇게 불편하진 않길 바라며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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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기쁨
손님
맛
항해 거리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남쪽 남자
정복왕 에드워드
하늘로 가는 길
피부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