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
읽은 기간: 20.08.02~06 / 5일
너무 기대를 했나. 겁나 빠르게 읽히긴 했다. 자리잡고 앉아 집중하고 읽었으면 몇 시간이면 읽었을 듯? 하지만 다 읽고나니 내가 중학생 때 왜 일본소설을 싫어했었는지가 다시 생각났다. 그 일본소설 특유의 간결하면서 무심한, 근데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느낌 나만 알아...? 역시 일본 연애소설이나 그런 방면은 진짜 내 스타일 아니다. (이게 그렇다고 연애소설은 또 아니지만) 근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역대급이랄까. 대체 무슨 맥락이야...? 나만 이해 못했어? 하고싶은 말은 뭔데? 아니지, 모든 소설이 꼭 하고싶은 말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교훈을 찾지 말자. 교훈 안 찾을게, 근데 이거 무슨 내용인데...? 뭐 전반적으로 느낌점은 이 정도겠다.
방에서는 별로 손이 안가서 주로 회사 휴게실에서 후다닥 읽었는데 한 1/3 정도 읽었을 때 회사 동생이 물어봤다. "그거 재밌어요? 무슨 내용이에요?" 거기서 내 대답은 "몰라." 였고 한 2/3 정도 읽었을 때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다 결국 책의 마지막 장도 동생 앞에서 덮었고 이제 대답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같은 질문을 한 동생에게 난 또 모른다고 대답해버렸다. 몰라... 이거 대체 무슨 내용이야...?
책 소개는 거의 안 보고 골랐다. 그냥 책 표지에도 써있듯 러브레터, 하나와 앨리스의 감독이 썼다는 것 정도? 러브레터야 워낙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영화고 (오겡끼데쓰까-) 하나와 앨리스는 학창시절에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영화였다. 세세한 줄거리까진 기억나지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인상 깊거나 재미있었던 영화라고 기억되지 않지만 뭔가 그 특유의 영상미가 있었던 건 확실히 생각난다. 그래서 엄청 재밌지는 않아도 평타는 치겠거니 하고 시작한건데 이건 뭐... 그래,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라는 걸 배운 셈 쳐야겠다.
20대 초반의 나나미는 파견 교사로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혼자 살고 있다. 나나미의 집은 가업을 물려받아 큰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나나미가 고등학생 때 노로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체인점을 다 정리하고 가까스로 본점만 살아남았다. 그 시기에 엄마는 체인점 젊은 점주와 바람이 나 떠났고 그런 환경에서 마음을 잡고 공부한 덕에 나나미는 성적이 쑥쑥 올라 생각하지 않았던 수준의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덕분에 파견이긴 하지만 교사로 일할 수 있던 거고. 나나미는 대학생 때 방학에 본가를 찾았다가 가게에 드나들던 동네 아주머니의 '아빠가 네가 술집에 다닐까 걱정하더라.' 하는 말에 상처를 받아 집을 멀리 하게 됐고 그 후 아빠가 그 아주머니와 결혼까지 하게 되자 영영 집과는 연을 끊는다시피 하며 살게 된다. (이 부분도 사실 크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그 말 한마디 들었다고 바로 돌아서서 아버지랑 연락을 끊을 정도인가 싶었다.)
연애란 무엇인지, 남녀 관계라는 것은 또 무엇인지, 생각이 많고 사뭇 마이너한 감성을 가진 까닭에 20대가 되도록 연애 한 번 안했던 나나미는 플래닛이라는 SNS의 주선 프로그램을 통해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남자친구 데쓰야는 나나미에게 플래닛 친구를 맺자고 하고 나나미는 자신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는 클램본이라는 아이디가 아닌 미나미라는 아이디를 알려준다. 연애를 하면서 나나미는 랜선 친구가 많은 클램본 계정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써나간다.
나나미는 그로부터 얼마 후 계약직으로 있던 학교에서 잘리게 되고 딱 하나 남은 인터넷 제자 외엔 수입이 없는 상황이 되자 집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데쓰야와도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인기있는 음식점을 몇 달 전 예약해놓은 데쓰야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고 드디어 가게 된 그 레스토랑에서 데쓰야에게 청혼을 받게 되자 나나미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프로포즈에 감격해 행복에 겨워서가 아니라 드디어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에.
나나미는 데쓰야와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고 마는데 데쓰야가 나나미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결혼식에 새 엄마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던 나나미는 결국 부모님의 이혼을 숨기고 상견례까지 하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결혼식에 참석한 친지들이 몇 되지 않자 친척들도 필요했고 아직 학교를 그만뒀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던지라 학교 동료 선생님들까지 필요했던 나나미는 클램본 계정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아무로 라는 남자에게 결혼식 하객 대행 서비스를 의뢰하게 된다. 이혼한 적 없는 척 연기하는 이혼한 부모님과 가짜 하객들 사이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주인공이 된 나나미는 결혼식 날 뭔가를 눈치챈 듯 클램본이라는 사람의 글을 읽었다고 말하는 데쓰야에게 거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클램본 계정도 없애버린다. 다행히 나나미는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학교를 그만둔 것처럼 하며 주부의 삶을 살게 된다.
출퇴근하는 데쓰야를 보필하는 삶... 이런 게 행복일까. 아니 적어도 안정감은 있겠지. 나나미는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어느 날 신혼집에서 처음 보는 귀걸이를 발견하면서 그 미약한 안정감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나미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해주는 아무로에게 데쓰야의 외도 조사를 의뢰한다.
어느 날 낮 시간에 혼자 집을 보던 나나미의 집에 한 남자가 찾아와 데쓰야가 과거 데쓰야의 제자였던 본인의 여자친구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전하자 의심은 확신이 되고 나나미는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자는 얼마 뒤 그 문제로 할 말이 있다며 호텔로 나나미를 불러내고 나나미에게 몸으로 배상하라며 그게 아니면 데쓰야의 학교에 모든 걸 퍼뜨리겠다고 협박한다. 호텔방에서 위협을 받던 나나미는 잠시 화장실에 가겠다며 몸을 피했고 아무로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한다. 나나미는 아무로의 지시대로 샤워를 한다며 시간을 끌고 그 사이 도착한 아무로가 남자를 처리하고 나나미를 구해준다.
데쓰야의 할아버지 제사로 데쓰야의 고향집을 찾은 날, 데쓰야의 엄마는 나나미를 따로 불러 사진을 보여주는데 사진 속에는 나나미가 호텔에 갔던 날 그 남자와 호텔에 있는 모습이 찍혀있다. 시어머니는 나나미에게 조용히 떠나라고 지시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나나미는 다음 날 엄마에게 모든 걸 듣고 전화한 데쓰야에게 오해를 풀고자 해명을 하지만 그 때 그 남자가 보여준 졸업앨범과 같은 졸업앨범을 펼쳤을 땐 데쓰야와 바람났다던 남자의 여자친구 사진은 온데간데없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 이혼하게 된 나나미는 모든 걸 잃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처음 보는 동네의 작은 호텔에 투숙하게 되고 뜻밖의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부족한 수입 때문에 일거리를 찾기 위해 연락하던 아무로를 통해 나나미는 신부에게 모든 걸 숨기고 있는 한 신랑의 결혼식 하객으로 자신의 결혼식에서 했던 것처럼 대행 일을 하게 된다. 그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가족인 척 연기를 하게 되고 거기서 만난 무명 여배우라는 마시로와는 저녁까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나미에게 어느 날 아무로가 좋은 일자리가 있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아무로가 제시한 일자리는 숲 속의 한 별장에서 가정부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월급이 백만엔으로 나나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수입 일이었다. 하던 일도 있기에 고민하던 나나미에게 아무로는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며 호텔로 들어가 도망친 아내를 찾으러 온 남편을 연기하며 나나미를 호텔에서 빼주고 곧바로 별장으로 안내한다. 별장은 오래된 서양식 레스토랑을 개조해 만든 호화스러운 집이었는데 집은 매우 지저분했고 방에는 온갖 독을 가진 동물들이 사육되고 있었다. 아무로는 나나미 말고도 가정부가 한 사람 더 있다며 나나미를 안심시키고 해야 할 일들을 대강 알려주고 떠난다.
나나미는 지저분한 집을 정신없이 치우는데 뒤늦게 만나게 된 또 다른 입주 가정부는 마시로였다. 마시로는 집주인이 이 곳에 오지 않는다며 일을 전혀 하려 들지 않고 낮에는 촬영이 있다며 집을 비워 밤에야 귀가한다. 나나미는 그런 마시로를 이해하고 혼자 집을 깔끔하게 치우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주로 취해서 돌아오는 마시로는 늘 잠든 나나미의 침대로 찾아와 나나미의 등을 인형처럼 꼭 안고 잠이 든다.
어느 날 잠에서 깬 나나미는 평소라면 아침 일찍 나갔어야 하는 마시로가 옆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는 걸 발견하고 마시로에게 열이 난다는 걸 발견한다. 나나미는 급하게 마시로의 휴대폰으로 마시로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고 빠르게 마시로를 데리러 온 마시로의 여자 매니저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지만 마시로가 촬영하면 다 낫는다며 고집을 부려 촬영장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나나미는 마시로가 AV 배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을 고용한 집주인은 없었고 그 별장은 마시로가 촬영하러 갔다가 반해서 얻은 곳이었으며 사실 마시로의 수익으로는 이 모든 걸 감당해내지 못하고 언젠가는 파산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마시로의 모든 걸 알게 된 나나미는 마시로에게 이렇게 호화스럽게 살지 말고 작은 집을 얻어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몸이 좀 나아진 마시로는 나나미의 말을 듣고 함께 집을 구하러 다니고 나간 김에 둘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날 밤 나나미는 사라진 마시로를 찾으러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생물들이 있는 방에서 마시로를 발견한다. 마시로는 나나미에게 함께 죽어줄 수 있느냐고 묻고 나나미는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다음 날 아무로가 장의업자와 함께 이 집을 찾아온다. 방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마시로와 나나미를 발견한 아무로는 장의업자에게 진실을 고백한다. 사실 마시로는 말기 암 환자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고 아무로에게 큰 돈을 주며 함께 죽어줄 친구를 구해달라고 의뢰한 것이었다. 아무로는 나나미가 적임자라고 판단해 일부러 모든 걸 조작해 데쓰야의 엄마에게 사진을 팔았던 것이고 그렇게 이혼하게 된 나나미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어 마시로의 친구가 될 수 있게 이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나미는 아무로만 아니었다면 데쓰야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마시로는 청자고둥을 손에 쥐고 죽었고 나나미는 그저 잠든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나미는 영문을 모르고 아무로는 빠르게 마시로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마시로의 장례식이 끝난 후 아무로는 마시로의 유골과 마시로가 남긴 유산을 넘기기 위해 마시로의 어머니를 찾는다. 마시로의 어머니는 딸의 유골은 필요없다며 유산만 받겠다고 하고 아무로는 나나미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마시로의 엄마는 딸이 AV배우가 된 후 연을 끊었다고 하며 유골을 왜 가져왔냐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술에 취하자 옷을 벗으며 옷을 벗어도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오열하고 아무로와 나나미 역시 함께 울며 마무리 된다. (아주 마음에 안드는 결말...)
오늘도 아주 줄거리를 줄줄 늘여서 써버렸네. 이거 읽느니 차라리 책 읽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다시는 안 읽을 것이므로... 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그런 수동적인 인간상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건 착하다기보단 멍청한 느낌? 그냥 다른 세상 이야기를 보고 있는 기분이라 이거 뭐 판타지야? 싶기도 하고 그랬다. 나나미의 학창시절 설명과 데쓰야와의 만남, 그리고 결혼이 책의 1/3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무언가 이야기가 제대로 전개되겠지, 진짜는 뒤에 나오나보다, 하고 기다리게 됐다. 물론 그런 건 없었지만.
아직 어린 나나미가 청혼을 받는거나 결혼을 결심하는 거나 요즘 세상과 맞지 않아서 이상했다. 이 책 시대 설정이 80~90년대인가...? 안 찾아봐서 모르겠네. 누가 봐도 좋은 남자는 아닌 데쓰야의 모습들이 마치 조상신이 도우신 듯 자주 모습을 드러냈지만 나나미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러기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건지 끝까지 무시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진짜 그 부분에서 복장이 터졌다.
다소 어중간한 입지의 AV배우로 살다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혼자 죽기 외로워 함께 떠날 저승길 동료를 찾아달라 의뢰한 마시로의 삶은 짐작이 되지 않아서 더더욱 공감이 되지 않았고 죽음이 무섭다는 건 이해는 됐다. 나따위를 위해 물건을 담아주는 가게 점원의 손에 대해 이야기 하는 마시로, 불안함에 자신이 번 모든 돈을 탕진하는 마시로, 나나미에게 의지하는 마시로. 그렇담 아무로는 어떨까. 돈만 주면 뭐든지 해주는 아무로. 관계를 망치고 한 사람을 불행 속으로 몰아넣는 것도 서슴지 않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의뢰도 돈이면 다 받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같지 않던 그도 마시로 엄마 앞에선 오열했다. 아 몰라 다 이해 안돼... 이상한 사람들만 나오는 이상한 책이었다.
뭔가 후기를 쓰기 위해 포장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SNS세상과 현실세상에 대해, 진실과 거짓에 대해,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 대해 주절주절 쓰면 어느 정도 멋진 후기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난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