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이」
「다른 아이」
샤를로테 링크
★★★★☆
읽은 기간: 19.04.25~05.04 / 10일
이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없게 돼서 알아보던 중 회사에서도 도서를 대여해준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가서 빌리긴 좀 번거로워서 (사실 그냥 귀찮은 거지만) 신청해서 받아보는 걸로 처음 도전해봤는데 책이 그렇게 많지 않고 설명도 부족해서 고민하던 차에 표지가 알록달록하고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살짝 시험삼아랄까 이 책을 빌려보았다. 다음 날 바로 수령했는데 두께가 꽤 돼서 조금 놀랐다. 그렇게 첫 페이지를 펼치고 읽기 시작하는데 이 몰입감 무엇...?
내가 뭔가에 적응하는데 원래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처음에는 진도가 팍팍 나가진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으면서 삽시간에 읽어버렸다. 김포공항가는 지하철에서 쉬지않고 읽고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저 읽었더니 이내 마지막장이었다. 뒷부분에서는 범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졸려도 집중해서 읽게 됐다. 일본 범죄소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가까운 나라 일본이 아닌 가본적도 없는 나라에 경험해본 적 없는 시대, 문화를 배경으로 하니 그 생소함이 오히려 자극이 되고 호기심이 된 것 같다.
「다른 아이」는 과거 한 여성이 외지고 음산한 농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뒤 도망쳐나오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현재로 돌아온 시간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여러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진행된다.
고즈넉한 해안가에 위치한 스카보로 마을에 살고있는 피오나는 최근 가끔씩 걸려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화에 마음이 불안하다. 숨소리만 들리다 끊기는 전화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데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불안하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과거를 공유한 채드에게 과거에 대한 내용을 이메일로 써서 보낸 것이 못내 후회스럽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베켓농장에 살고있는 늙은 채드에게는 노처녀인 그웬이라는 딸이 있는데 누가 봐도 매력이라곤 없는 그녀는 얼마 전 자신감을 갖기 위한 강좌를 듣다가 돌아가는 길 폭우를 만나 곤경에 처했다가 데이브를 알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다. 데이브는 수려한 외모와 매력적인 언행의 40대 남성인데 그웬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웬이 훗날 물려받을 농장을 탐내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웬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웬과 데이브의 약혼식이 있던 날, 약혼식에는 채드와 피오나, 베켓농장에 휴가를 보내러 온 콜린과 제니퍼 브랭클른 부부와 피오나의 손녀이자 그웬의 친구 래슬리가 초대된다. 불안불안하게 흘러가던 약혼식에서 피오나는 그웬을 딸처럼 생각한다는 이유로 데이브를 몰아붙이며 모욕을 주고 데이브는 모욕감에 약혼식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엉망이 된 약혼식이 그렇게 마무리 되고 할머니에게 실망한 래슬리는 피오나를 두고 집으로 가고 피오나는 채드와 함께 있다가 산책을 하다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간다며 나간다.
다음날 숙취를 호소하며 잠에서 깨어난 래슬리는 집에 피오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난 밤 베켓농장에서 나온 뒤 피오나가 실종됐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경찰에 신고한다. 피오나는 결국 산 속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그 방식이 얼마 전 마을에서 한 여대생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과 매우 유사해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경찰은 사건을 수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현재의 이러한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피오나가 채드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과거 피오나가 저지른 은밀한 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피오나는 메일에서 40년대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당시 10대 소녀였던 자신이 전쟁을 피해 베켓농장으로 위탁되면서 얼떨결에 함께 딸려간 정신지체아 브라이언 소머빌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당시 자신이 채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브라이언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그들이 브라이언을 노바디라 부르며 어떻게 따돌렸는지, 그럼에도 브라이언이 피오나를 얼마나 끔찍하게 따르고 사랑했는지에 대해 말이다. 상황이 나아지자 피오나는 다시 엄마가 있는 런던으로 돌아가지만 베켓농장을 잊지 못해 돌아간다. 하지만 베켓농장의 살림을 열심히 꾸려가던 채드의 엄마는 죽고 없고 채드는 전쟁에 나가 없고 채드의 아빠와 브라이언만이 쇠락한 농장에 남아있다. 피오나는 어쩔 수 없이 런던으로 돌아갔다가 후에 다시 한 번 돌아오는데 전쟁 후유증을 겪고있는 채드와 재회했을 때 문득 브라이언이 보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채드를 독촉한 피오나는 채드가 이미 10대 청년이 된 브라이언을 어느 악명높은 농부에게 보내버렸다는 걸 알게 되고 브라이언을 찾으러 가지만 두려움에 돌아나와 브라이언이라는 존재를 외면한다.
소머빌 일가는 전쟁 중에 전원 사망한 걸로 기록되어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브라이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은 한평생 피오나를 따라다녔지만 그 뿐이었고 브라이언 때문에 자신의 일생일대의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결혼 후 다시 스카보로로 이사온 피오나는 친구라는 이유로 채드의 집에 드나들며 농장생활을 돌봤고 늦은 나이에 채드 또한 결혼했지만 그의 삶의 울타리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후에 젊은 채드의 아내가 죽고 딸만 남겨졌을 때에도 그웬의 엄마 역할을 자처하며 살아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경찰은 모든 참석자들을 용의 선상에 올려둔 채 수사하지만 모두 각각의 이유만 있을 뿐 확실한 알리바이는 없다. 자신의 비참한 삶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랑없는 결혼을 하려는 데이브와 한평생 농장에서만 살아와 꾸미는 법도 연애하는 법도 모르는 매력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그웬, 남편과 이혼 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고향으로 내려온 래슬리와 거동이 불편할만큼 노쇠한데다가 딸의 일 뿐만아니라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채드, 과거 한 사건에 연루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헬퍼신드롬의 제니퍼와 그의 남편 콜린. 경찰은 이들 모두를 조사하며 용의자를 추리다 데이브와 제니퍼에게 초점을 맞춘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향한 시선과 감정이 드러나는데 그게 꽤 흥미로웠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어렴풋하게나마도 짐작하지 못할 만큼의 모습이 숨어있기도 했다. 어련히 이런 사이겠지, 이런 감정이겠지 했던 것들도 사실은 전혀 다른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모를 거라 생각했던 것을 알고 있기도 하고 알 거라 생각했던 것을 모르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족같은 사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행동들은 서로에게 그렇다고 용인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피오나 살인사건은 근방에서 일어났던 대학생 살인사건과는 무방했다. 그저 피오나를 죽이려고 계획하던 그웬이 경찰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을 뿐이었다. 그웬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집에 제집 드나들듯 오던 피오나를 엄마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친모가 드센 피오나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암에 걸려 죽은 것을 피오나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웬은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 것 또한 피오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웬은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남자를 만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남자에게 어필되는 외모도 성격도 아닌 그녀에게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다가와준 데이브가 동앗줄이었던 것인데 데이브의 의도 따위 상관없이 그냥 데이브와의 시간이 너무 행복했던 것이다. 그런 데이브와의 결혼까지 피오나가 망치려 하자 그웬은 피오나를 죽인다. 마지막에 데이브가 그웬을 떠나려하자 데이브까지 죽이려 했고 채드마저 죽인다.
관계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인간관계'에서 퍼즐이 맞듯 쌍방향으로 딱 들어맞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가족이라고 해서 꼭 유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웬은 그보다 더 나아가서 그들을 증오했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을 제대로 반영한 책이었다.
그래도 다른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은 범인에 대한 예측이 조금은 가능한데 이 책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영 쌩뚱맞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또 재밌는 작가를 찾아냈으니 다음 책도 샤를로테 링크 작품으로 읽어야겠다.
그웬이 그런 결혼을 하는 걸 보고 모두가 걱정은 하면서도 그웬에게 조언을 한다던가 심하게 말리던가 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나라였더라면 친구가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연애나 결혼을 하려고 한다면 발벗고 나서서 말리지 않나? 모두 말리고 싶은 마음만 가진 채 그웬의 인생이니까, 성인이니까 본인 인생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라며 존중(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려나)을 하는 걸 보고 확실히 우리와는 문화가 많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통에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피난시키며 안전한 지역에 위탁가정을 선정해 아이들을 보내는 것도 신기했다. 배경이 40년대 세계 제 2차대전이던데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50년에 일어난 6.25전쟁에서도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