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
읽은 기간: 18.10.16~20 / 5일
이런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던 걸 기억한다.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벌써 1년이나 된 일이었다. 제목이 좀 불쾌한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해 포스터는 화사해서 뭐 관심끌기용 제목인가 싶었는데 주변 평이 나쁘지 않아 볼까 하다가 어쩌다보니 보지 않았던 영화였다. 뭐 내가 일본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쨌든. 제목이 특이하다는 것 외엔 별 관심이 없어서 원작인 책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을 땐 살짝 의외였다. 통상적으로 영화는 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인데 영화 평이 좋았으니 책은 확실히 재미있겠군, 이라는 막연한 마음에 꺼내든 책 표지는 살짝 인터넷소설 느낌을 풍겼다. 이게 뭐야... 싶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오히려 딱 어울리는 표지구나 싶다. 나쁜 뜻이 아니고 정말 딱 이 소설이 풍기는 느낌과 정말로 딱 맞는다는 얘기다.
제목과는 맞지 않지만 소녀풍 표지와는 딱 알맞게 두 청춘남녀의 사랑...뭐라고 할까 뭐 우정이라고 해두자. 우정 이야기다. 학급 친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의 소녀 사쿠라와 가족 이외의 남과는 소통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는 자발적 왕따(라는 표현은 좀 그런가) 하루키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고 혼자 다니는 하루키는 맹장수술 후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책 한 권을 줍게 된다. 평소 학교 도서위원을 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하루키는 자신도 모르게 책을 집어들고 그것이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트의 제목은 '공병일기'로 췌장이 망가진 일기의 주인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하겠다는 내용의 첫 장을 읽었을 때 누군가가 하루키에게 말을 건다. 자신이 노트의 주인이라고 밝힌 소녀는 하루키와 동급생으로 반에서도 인기가 많은 사쿠라였다. 그렇게 우연히 사쿠라의 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키는 사쿠라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죽기 전까지 병을 밝힐 생각이 없다는 사쿠라의 병을 알게 됐지만 딱히 누군가에게 발설할 생각도, 발설할 누군가도 없는 하루키는 그렇게 사쿠라와는 대면대면하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사쿠라 쪽에서 그렇게 두지 않았다. 사쿠라는 하루키를 따라 도서부에 들어오고 쉬는 날 하루키를 불러내 고기를 먹고 여자애들끼리 가는 아기자기한 디저트 뷔페에 데려가는 등 남들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하루키와의 일상을 즐긴다. 인기녀인 사쿠라 덕에 금방 학교에 소문이 퍼져 친구들이 쑥덕대고 하루키는 사쿠라의 절친인 교코의 미움을 사고 심지어는 하루키가 사쿠라의 스토커라는 악소문까지 퍼지지만 하루키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단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아할 뿐. 그에 대해 사쿠라에게 말하자 사쿠라는 호탕하게 웃더니 하루키가 반 친구들과 너무 대화를 하지 않아 편견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친구들과 친해져 보라고 조언한다. 뭐 하루키는 납득하지 않지만. 어쨌든 혼자가 좋고 혼자의 시간에 만족하던 모습에서 조금씩 사쿠라와의 일상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키는 그렇게 사쿠라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이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사쿠라의 긴 긴 입원이 끝나는 날, 둘은 여행을 가기로 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하루키는 카페에 앉아 사쿠라를 기다리며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는데 네가 되고싶은, 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고싶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문장을 찾다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고 보낸다. 그렇게 약속 시간이 지나고도 사쿠라는 나타나지 않는다. 저녁까지 기다리던 하루키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는데 뉴스를 보다가 사쿠라가 묻지마 살인사건에 피해자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인범에 의해 빼앗긴 것이다. 언젠가 너도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했던 사쿠라의 말처럼 그녀는 그렇게 죽어버렸다.
하루키는 장례식에도 가지 않고 방에 처박힌 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공병문고를 읽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며칠만에 집에서 나와 사쿠라의 집으로 찾아간 하루키는 불단 앞에서 사쿠라에게 인사를 하고 사쿠라의 어머니에게 공병일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쿠라의 엄마는 사쿠라가 죽기 전 자신이 죽으면 공병문고에 대해 알고 있는 친구에게 공병문고를 전해달라고 했었다며 울면서 공병문고를 건넨다. 공병문고에는 사쿠라의 일기와 유서가 있었다. 하루키는 사쿠라의 마음이 담긴 유서를 읽고 오열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보냈던 문자를 사쿠라가 읽었는지를 확인한다. 이후 하루키는 교코에게 연락해 사쿠라의 유서를 보여주고 사쿠라의 유언대로, 하지만 그거보다는 자신의 의지로 교코와 친구가 되고싶다는 의사를 전한다.
사실 책을 다 읽고 좀 실망스러웠다. 내용이 유치한 건 그렇다 쳐도 문장도 영... 약간 인터넷 소설 보는 기분? 15년 전쯤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평범한 여고생이 일진 남학생과 연애하는 판에 박힌 내용의 인소들처럼 이것도 겉도는 남학생이 인기 많은 시한부 여학생과 사랑인 듯 사랑 아닌 사랑 같은 우정을 쌓는 것이 약간 비슷했다. 내용보다는 문장에 많이 실망한 것 같다. 오글거리고 유치한... 읽으면서도 대체 왜 난 이걸 읽고 있는가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까. 그래도 후다닥 읽히는 건 좋았다. 사쿠라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누구와도 엮이지 않고 오로지 홀로 살아가는 하루키의 모습에서 강함을 느꼈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때마침 하루키가 자신의 노트를 주운 것을 보고 숨기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 모든 면에서 정 반대인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모습은 살짝 어색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러웠다. 내용 자체는 괜찮았지만 조금 더 덜 유치하게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 리뷰의 첫 문장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영화를 봤다. 영화 내용은 살짝 달랐지만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내용은 다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답게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해 어른이 된 하루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전개되는 것이며 사쿠라의 유서를 15년이 흐른 뒤에야 발견하는 것 등이 좀 달랐지만 큰 틀은 같았다. 하지만 역시 누가 이걸 재밌다고 했는지는 의문. 일본 연애물 영화는 어째 다 똑같은 것 같다... 뜬금없이 하루키는 또 왜 이렇게 잘생긴 배우로 캐스팅 해놔서 원작 느낌이 더 안 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