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손님」
「그해, 여름 손님」
안드레 애치먼
★★★☆☆
읽은 기간: 19.05.24~06.03 / 11일
제목만 보고 빌렸는데 퀴어소설이었다. 심지어 80년대 이탈리아 배경... 완전 생소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다 읽긴 했는데 이해 못하고 넘어간 구절도 좀 있다. 소설 읽고 영화로도 나왔다기에 봤더니 평점이 높아서 마지막장 덮자마자 영화도 봤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책 리뷰 겸 영화 리뷰가 될 것 같기도...?
그냥 짧게 요약하면 소년과 청년의 사랑이야기이다. 책은 소년인 엘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교수의 아들인 열일곱살 엘리오의 집에는 여름마다 다른 학자들이 머물며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자신의 일을 하다가 간다. 올해의 여름 손님은 미국에서 온 스물넷의 청년인 올리버인데 올리버는 등장과 동시에 영화배우같은 외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려 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마르지아와 관계를 이어간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생각하며 성적 망상에 사로잡히는 한 편 자신의 이런 감정을 누군가가 알아챌까 전전긍긍해한다.
몇 주의 시간동안 그렇게 엘리오는 자신의 마음은 숨기지만 어느 날 올리버와 함께 시내에 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그 자리에서 거절당한 엘리오는 올리버를 잊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올리버를 보기가 너무 괴롭던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쪽지를 남기고 올리버에게서 자정에 보자는 답장이 온다.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한 두 남자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고 알게 된다. 사실 올리버 또한 엘리오를 보는 순간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거절 당할까 두려운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감췄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한 후 사랑을 나누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서로에게 쏟으며 보낸다.
여기서 좀 특이한 것은 엘리오가 올리버의 마음을 확인하고도 마르지아를 끊어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처음 사랑을 나누기 전, 엘리오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자신에게 수없이 묻는다. 정말 이러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올리버와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도 엘리오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그런 것들의 묘사가 아주 잘 되어있는 게 사람의 마음에 대해 잘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름은 빠르게 지나가고 올리버는 예정보다 며칠 빨리 로마에 들러 퇴고작업을 해야 하고 엘리오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올리버를 따라간다. 둘은 로마에서 북파티에도 참석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여행을 한다. 짧은 여행을 끝이 나고 올리버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엘리오 역시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겨울이 다가오고 엘리오의 집에 전화 한 통이 오고 올리버는 내년 봄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몇 년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여자라고 설명하며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잘 지내라고 하고 엘리오 역시 그의 선택을 축복해준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이를 눈치채지만 아들의 사랑을 막지 않았고 오히려 올리버와 헤어지고 슬퍼하는 아들에게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라고 말해준다.
이 후 크리스마스에 올리버는 다시 한 번 엘리오의 집을 방문하고 그 후로는 가정에 충실하며 둘은 만나지 않고 살아간다. 몇 해 뒤, 엘리오가 집에서 독립한 뒤 올리버는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엘리오의 집을 찾고 통화로나마 서로의 마음을 전한다. 둘이 사랑한지 15년 뒤 엘리오는 올리버가 교수로 재직중인 학교로 올리버를 찾아가고 올리버는 집으로 초대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거절한다. 그로부터 5년 뒤 두 사람은 엘리오의 집에서 재회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책은 끝이 난다.
사실 난 가독성이 그다지 좋다고는 못느꼈다. 번역이 문제인건지 원래 작가가 그렇게 쓴건지 아니면 그냥 내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지 잘 이해가 안가는 구절들이 조금 있었다. 특히 엘리오의 아버지가 슬픔에 빠진 엘리오에게 해주는 말은 감명 깊으면서도 완벽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달까.
배경 묘사가 꽤 잘 돼있어서 유럽 시골 저택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서 뭔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엘리오의 감정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듯 하면서도 또 십대 소년의 치기어린 사랑이 너무 잘 표현돼서 반전의 느낌도 주었고 그 감정이 격하게 표현된 부분이 많아서 살짝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책보다 영화가 좋았던 적은 단연코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영화가 조금 더 괜찮았던 것 같다. 다만 살짝 불만은 원작에 나왔던 올리버의 친구 열살짜리 백혈병소녀 비미니가 안나온다는 것? 뭐 큰 비중이 있었던 역할이 아니어서 빠진 거겠지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그리고 올리버도 내가 상상했던 올리버와 너무 달라서 좀 실망했다. 어딜봐서 영화 속 올리버가 스물넷이란 말인가 싶으면서도 원래 서양 사람들은 빨리 늙으니까 우리나라 스물넷을 생각하면 안되겠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소년과 청년의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보여서 좀 그랬다. 아디다스 수영복, 라코스테 티셔츠, 일리 커피통 같이 지금도 유명한 역사 깊은 브랜드들을 80년대 유럽이 배경인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꽤 인상깊었다. 내용과는 별개지만 엘리오의 패션도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줬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엘리오를 끄집어내 우리나라에 갖다놔도 아무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옷이 예뻤다.
어쨌든 책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영화를 괜찮았다.